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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② 국립대구박물관‘흙에서 찾은 영원한 삶 2015’展

2015-10-30

진시황병마용 얼굴 닮은 이사람…당나라 복식 착용하기 이전 신라인 모습

② 국립대구박물관‘흙에서 찾은 영원한 삶 2015’展
① 경주시 교동 재매정 일대에서 출토된 토우(土偶). 위로 찢어진 눈, 오똑한 코, 얇은 입술을 가졌다. ② 의성군 대리리에서 출토된 삼국시대 금동관모.③‘甲山寺’란 명문이 새겨진 기와. ④ 원삼국시대 시루.⑤ ‘天王’이란 한자가 새겨진 접시.⑥ 칠곡 금산리에서 출토된 삼지창.⑦ 빗살무늬토기 이전 신석기인이 사용한 덧무늬토기.⑧ 경주시 모량·방내리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 철제 톱.


대구박물관에서 전시하는 ‘흙에서 찾은 영원한 삶 2015’ 특별전은 내년 2월14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에서는 울진 죽변리 신석기 유적, 의성 대리리를 비롯한 경주 재매정·천관사·모량·방내리 신라시대 유적 등 최근 발굴조사된 대구·경북 유적 20곳에서 출토된 금동관모, 토우, 말머리뼈 토기 등 400여 점을 처음 공개한다. 전시는 1·2부로 나눠 하고 있다.

제1부 ‘생활에 애쓰다’에서는 구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 출토품을 통해 고대인의 생활모습을 조명한다. 안동 가곡리, 예천 삼강리 구석기시대 유적을 비롯해 울진 죽변리(신석기), 영천 해선리(청동기), 경주 모량·방내리(통일신라시대), 대구 신당동, 김천 운수리 등지서 발굴한 사료를 전시한다. 제2부 ‘안식을 꿈꾸다’에선 신라시대와 조선시대의 무덤을 나눠 전시한다. 죽은 이를 위한 다양한 매장의례와 무덤의 특징을 살펴본다. 경주 인왕동, 의성 대리리, 울진 덕천리, 달성 서재리, 상주 아천리 등지에서 발굴한 사료다.

대구박물관은 이어 11월25일 오후 3~6시 ‘경북 동해안지역 신석기시대의 문화와 생활’(김구군 삼한문화재연구원장)과 ‘신라인의 우물활용과 제의’(김창억 세종문화재연구원장)를 주제로 특별강연을 개최한다.

박승규 영남문화재연구원장은 “대구·경북 10개 문화재조사연구기관은 2000년부터 공동으로 최신 발굴 성과물을 전시하고 있다. 이번이 3회째인데, 다른 지역 문화재연구원에선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 고고학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시·도민에게 성과물을 알리려는 의도로 시작했는데 많이 찾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주 모량·방내리 유적에서
‘天王’ 명문 청동접시 발굴

의성 대리리 출토 금동관모
경북북부에선 처음으로 발견

수성못 동쪽 대구 두산동 유적
6C 항아리·병·접시 등 나와

◆울진 죽변리 덧무늬토기

삼한문화재연구원이 울진군 죽변면 죽변리에서 2009~2010년 처음으로 발굴했다. 이때 발굴한 토기 모습과 제작 기법 등이 다른 지역과 구별돼 ‘죽변리식 토기’로 명명했다. 삼한문화재연구원은 재작년 여름 울진 죽변리 15-68번지 일대에서 한 달간 발굴작업을 해 1천여 점에 가까운 신석기시대(기원전 6000~3500년) 토기편과 석기를 출토했다. 죽변리식 토기는 표면이 붉게 채색됐고 바리와 단지의 아가리가 안으로 꺾인 게 특징이다. 바리에는 구멍이 뚫렸고 콩알 모양의 점토를 붙여 장식했다. 강원도 양양 오산리와 부산 동삼동 패총 등지에서도 이와 비슷한 모양의 토기가 출토된 바 있다. 동해안과 남해안지역에 주거하던 고대인이 서로 교류를 했다는 증거가 된다. 융기문토기(隆起文土器)로 불리는 덧무늬토기는 토기의 표면에 점토를 붙여 띠를 이은 문양이 도드라지게 표현됐다. 마치 콩알을 토기에 나란히 붙인 모습이다.

김구군 삼한문화재연구원장은 “덧무늬토기는 신석기시대 전기에 주로 출토되는데 중기 이후에 출토되는 빗살무늬토기보다 앞서 유행한 문양”이라고 말했다.

◆문경 신기동 중도식문화

대동문화재연구원이 2011~2013년 문경시 신기동 74번지 일원에서 발굴한 원삼국시대 생활유적이다. 이 일대는 낙동강 지류 영강변 충적지대에 위치한다. ‘凸’ 또는 ‘呂’ 주거지가 특징이다. 이러한 주거지는 춘천 중도유적(춘천시 의암호 중간에 남북으로 길게 뻗은 선사시대 집터와 무덤)에서 처음 발굴돼 ‘중도식문화’라고 불린다. 중도식문화에서는 ‘凸’ 또는 ‘呂’ 주거지를 비롯해 온돌시설, 경질(輕質)무문토기가 많이 발견된다.

배성혁 대동문화재연구원 조사실장은 “강원도 동해안과 영서지역, 임진강과 한강유역 등지에선 초기 철기시대에서부터 삼국시대에 걸쳐 다양한 생활유적이 발굴되는데 이는 기원후 4세기까지 공통된 사항이다. 하지만 중도식문화 가운데 모루돌과 철파편, 송풍관 유적이 소백산 이남 문경에서 발굴되긴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철기를 직접 제작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경질무문토기 가운데에는 고대인의 찜통용기인 시루가 출토되기도 했다.

◆경주 모량·방내리 유적

영남문화재연구원이 2012~2014년 경주시 건천읍 모량리 562번지 일대에서 발굴한 통일신라시대 생활유적이다. 이 유적은 경주동해남부선 건설구간 내 유적에 위치한다. 모량리는 신라 6부의 하나였던 모량부가 있었던 곳으로 당시 지명이 아직까지 전승되고 있다. 주변은 건천읍 일대로 금척리고분군이 가까이에 있다. 이곳에선 통일신라시대 ‘天王’이란 한자의 명문이 뚜렷이 새겨진 청동접시를 비롯해 수레바퀴 굴대, 철솥, 청동거울, 수막새, 철톱, 자물쇠, 경첩, 두레박 등 총 1천여 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박승규 영남문화재연구원장은 “‘王’이나 ‘大王’이란 명문이 새겨진 유물은 봤지만 ‘天王’이란 명문이 새겨진 청동접시가 발굴되긴 이번이 처음이다. 천신에 제사를 지냈던 제기의 일종이라고 봐야 한다. 또한 철로 만든 톱도 영남지역에서 발굴되긴 두 번째인 듯하다. 모량·방내리 유적은 경주 왕경 서쪽 외곽에 형성된 또 다른 도시유적으로 지금으로 말하면 신도시나 다름없다. 신라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르는 중요한 사료”라고 밝혔다.

◆토우(土偶)

신라인은 흙으로 인형을 만드는 걸 좋아했다. 토우는 사람의 모습을 갖춘 것만이 아니라 동물·생활용구·집 등 모든 표상물을 가리킨다. 고대 토우는 완구용, 주술용 우상(偶像), 또는 무덤에 넣기 위한 부장용(副葬用)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흙이나 동물의 뿔이나 뼈, 나무 등으로 만든 것도 있고 짚이나 풀로 만든 것도 있지만 흙으로 만든 게 가장 많다. 동물 가운데에는 힘이 세거나 빠른 호랑이, 곰, 말, 새 등 다산과 장수, 재생의 의미를 지닌 것이 대부분이다.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경주시 노동동 12번지 일대에서 삼국시대 기마인물형 토우 세 기를 출토했다. 또 경주 재매정 유적지 일대에서 점토로 만든 버선처럼 생긴 모자를 쓴 인물상(얼굴)을 발굴했다.

재매정 일대에서 출토된 토우의 눈과 입은 정밀하게 새겨졌고, 코와 이마, 광대뼈가 입체감 있게 표현됐다. 엷고 굳게 다문 입술, 우뚝 솟은 코, 눈꼬리가 위로 찢어진 눈, 길쭉한 얼굴을 한 모습이 진시황병마용 인물과 비슷하다. 토우가 쓴 모자는 앞에 원형무늬를 새기고 턱끈을 붙였다.

박승규 원장은 “보통 복두건은 윗부분이 뒤로 굽어졌는데 이번에 발굴된 토우는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공양상(供養像)과 마찬가지로 앞으로 굽은 게 특징이다. 이는 649년 당나라 복식을 착용하기 이전 신라인의 모습”이라고 했다.

◆의성 대리리 금동관모

2013~2014년, 성림문화재연구원은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에서 5~6세기 삼국시대 분묘유적지를 발굴했다. 금성면 학미리, 탑리리 일대와 함께 경북도기념물 제128호로 지정된 의성 금성산 고분군의 일부에 해당한다. 이 일대에는 200여 기의 봉토가 있다. 이 가운데 조문국 경덕왕릉이라고 전해지는 무덤도 있다. 연구원은 이곳에서 봉토분 4기, 목곽묘 35기, 석곽묘 24기, 석실묘 3기를 비롯해 토기류, 금동관모, 금제 귀걸이, 은제허리띠, 말안장가리개 등 약 1천500점의 유물을 발굴했다.

김동숙 성림문화재연구원 조사실장은 “대리리에서 금동관모와 관모장식, 은제관식 등과 같은 장식용품이 이처럼 다양하게 출토된 사례는 매우 드물다. 특히 금동관모는 경주와 경산 일대를 제외하고 경북 북부지역에서 출토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또 관모의 정수리 부분에 짧은 봉이 달려있어 신라관모에선 보기 드문 형식이다. 5세기 백제관모에서 정수리 부분에 꽃봉오리장식이 있는데 백제관모라는 설도 있다. 하지만 전체적인 모양과 제작형식이 5~6세기 신라시대 관모 양식을 따르고 있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또 “금동과 은제관식이 다량으로 발굴된 것으로 볼 때 피장자의 신분은 왕의 권력에 버금가는 귀족이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경주 갑산리 명문기와

명문기와는 2012~2013년 한국문화재단이 경주시 안강읍 갑산리 711-4~5번지 일대에서 발굴한 통일신라시대 사원유적에서 출토됐다. 이 유적지는 안강읍 남서쪽에 위치한 마미산 동쪽 구릉 정상부와 등사면에 있다. 예부터 갑산사(甲山寺) 또는 갑산사(岬山寺)라고 새겨진 한자가 있어 갑산사지로 알려진다. 이곳에선 높이 5.4㎝의 금동불상과 벽돌, 기와, 수막새 등이 출토됐다. 이번 발굴작업 때도 갑산사(甲山寺), 갑산사(岬山寺)와 같은 기와가 다수 확인됐다.

◆칠곡 금산리 유적

2013~2014년 한빛문화재연구원이 칠곡군 왜관읍 금산리 516-1번지 일원을 발굴했다. 왜관지방산업단지 남동쪽 금무산 서쪽 능선 끝자락에 위치한다. 삼국시대 석곽묘와 목곽묘, 옹관묘 등에서 토기류와 철검, 삼지창 등이 출토됐다.

◆대구 두산동 유적

2013~2014년, 대동문화재연구원이 대구시 수성구 두산동 625번지 일대를 발굴했다. 이 일대에는 원삼국~삼국시대 분묘유적이 있다. 수성못 동쪽에 위치한 독립된 구릉 남쪽 끝자락엔 삼국시대 고분군이 형성돼 있었다. 옹관묘, 석실묘, 석곽묘 등 총 11기의 유구에서 항아리, 바리, 병, 접시 등이 출토됐다. 유물은 6세기에 사용되던 것이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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