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발간 ‘청구유언’에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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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丘有言’. 청구대 설립자인 야청(也靑) 최해청 선생 기념사업회가 최해청 청구대 설립자의 변과 청구대 교육정신, 그리고 청구대학의 설립에서부터 학교를 강탈당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은 1977년 발간됐다.
이 책에는 청구대가 위기에 처한 과정, 신축건물 공사장 붕괴로 인한 인명사고, 설립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벌어진 청구대의 청와대 헌납과정 등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청구대 운명에 어두운 그림자가 비치기 시작한 때는 공교롭게도 1965년 신학기 이후 불거진 경리 부정의혹이다. 설립자가 학교발전문제로 동분서주하는 사이 발생한 일인데 이후 자금난을 겪고, 설립자가 이사직에서 사임한다. 그런 와중에 신축 공사장이 붕괴되고 이에 두려움을 느낀 당시 이사진이 청구대를 설립자 몰래 청와대에 진상하게 된다. 이후 설립자는 평소 친분이 있던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 사정 설명을 하려 동분서주하지만 끝내 만나지 못하고 학교를 강탈당했다는 것이다.
설립자는 1966년 12월 본의 아니게 사퇴를 하게 되고 1년 뒤인 1967년 12월에 설립자의 뜻과 무관하게 대구대와 합병된 뒤 그 이름마저 없어졌다. 대통령 비서실에 의해 기획돼 이사진이 구성됐다. 설립자의 의사는 무시된 채 관권 개입으로 두 대학(대구대·청구대) 동문의 반대를 무릅쓰고 1967년 12월15일 합병이 강행돼 영남대학이 된 것이다. 이후 설립자는 소위 합동연석회의에 출석해 학교설립 이래 연고자들이 많은 공전(工專)만이라도 환원해 주기를 요구했으나 이후락씨가 반대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후 설립자는 몇년간 이사회 등에 공식, 비공식적으로 계속 요구했으나 결국 그 공전마저 다른 사람에게 매각해 버렸다고 기록하고 있다.
설립자 유족인 최찬식씨는 “광복 후 국가발전을 위해 지역인사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것이 청구대”라면서 “사회정의를 바로잡는 차원에서도 강탈과정은 밝혀져야 하고 그에 따른 후속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종문기자 kpjm@yeongnam.com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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