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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는’…기타리스트의 사인까지 그대로

2017-08-25

■ 미니어처 전문가 이충균

20170825
김광석이 애장하고 있었던 마틴 어쿠스틱 통기타 미니어처. 보디에는 김광석 초상화와 그의 사인까지 부착돼 있다.
20170825
3개월 동안 심혈을 기울여 완성시킨 대구시교육연수원 200대 1 미니어처.

■ 이충균의 기타 미니어처 작품들

20170825
우드 에스프레소는 현재 펜더, 깁슨 등 명품 전기기타는 물론 클래식·어쿠스틱 통기타 등의 미니어처를 특화하고 있다. 이들 미니어처는 짧게는 3일, 더 정교한 건 1주일 정도 걸린다.

내게 기계서각을 가이드 해준 분이 있었다. 알고보니 그는 장인이 아니었다. 그냥 물건을 많이 팔고 싶어하는 장사꾼이었던 것 같다. 그땐 이해가 안됐지만 이젠 그분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와 거래하고 있던 지역 기계서각의 1인자였던 명인당 대표 성준모씨는 좀 달랐다. 내 사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명리학과 작명에도 일가견이 있던 그는 국내 기계서각의 리더격이다. 솔직히 나는 그 어른이 내 사부였으면 싶어서 직접 그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고백했다. 그리고 ‘신의 한수’를 청했다. 오해를 푼 그 어른은 내게 자신의 서각체를 건네주었다. 난 서예가의 체본처럼 받아 흉중에 품었다. 하지만 난 그의 ‘부분집합’이 되고 싶지 않았다. 목표는 그를 뛰어넘는 것. 내 나이 26세 때였다.

국내 기계서각 리더격인 성준모에 사사
20대 후반 독립해 작업장서 잠자며 창작
전국관광기념품 공모전 수상 실력 검증
36세때 中 초저가 공세에 공예인생 기로

백수 1년간 밴드 꾸려 날마다 기타 연주
외삼촌의 문구점 맡은 지 6년째 어느 날
조각도 쥔 나를 발견하곤 다시 이 길로
대구교육연수원 모형 ‘건축사도 엄지 척’

2015년 대구 첫 미니어처 전문 공방 오픈
현재 전세계 유명 기타시리즈 제작 몰두
기타학 공부·관련 에피소드까지 꿰뚫어
개인전과 대구읍성 미니어처 도전 욕심



◆벽조목 장인으로 거듭나다

완전하게 독립을 한다. 불로동의 한 야적장에 컨테이너를 갖다놓고 식음을 전폐하다시피하면서 주문을 받았다. 백팔염주는 물론 달마도, 부적, 가훈 등도 새겼다. 작업 특성상 출퇴근이 일정할 수 없다. 작업장 바로 옆에 소파를 뒀다. 거기가 숙소였다.

경제적으로 독립을 할 무렵 저가의 중국산이 고가의 국내산 수제품의 숨통을 죄어 들어갔다. 아랑곳하지 않고 동구 불로동에서 ‘팔공공예’를 차렸다. 31세때였다. 많을 때는 직원 12명을 데리고 있었다. 휴대전화 액세서리, 자동차 키홀더 등 60여종 제품은 동화사 등 전국 유명 사찰 관광용품점 등으로 팔려나갔다. 이때 내가 몰입한 영역은 ‘벽조목(霹棗木)’ 공예였다. 벽조목이란 ‘벼락맞은 대추나무’. 요사한 기운을 물리치는 ‘제액목(除厄木)’으로 외국 관광객들한테도 크게 사랑을 받았다. 특히 국내 권세가들은 벽조목 도장을 하나 갖고 싶어했다.

대추나무는 왜 벼락을 잘 맞는가? 가장 흔하게 받는 질문이다. 나무 속에 철분이 많이 함유돼 있기 때문이다. 대추나무는 최소 20년 이상된 거라야 물건이 된다. 나무가 오면 좀 더 건조한 다음 유압기로 3시간 정도 30% 더 압착시킨다. 이때 나무는 암갈색으로 압변된다. 외견상 벼락맞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아니다. 상인들은 벼락을 운운하지만 그런 건 거의 기대할 수 없다. 압착된 대추나무는 정말 단단하고 물에 가라앉는다. 그래서 ‘침수목’이라 한다.

내 실력은 어디에 와 있을까 싶었다. 실력을 검증받기 위해 대구관광기념품 공모전에 나갔다. ‘신라 천년의 미소’를 모티브로 한 차량용 투각 액세서리로 대구 예선을 통과했다. 이어 서울에서 열린 전국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난 한국관광공사 산하 한국명품관 인증마크 10년간 사용권도 얻어낼 수 있었다.

36세 되던 해. 이젠 도저히 중국산을 이겨낼 수가 없었다. 국내 기술자가 중국에 가서 초저가 물건을 만들어 갖고 들어와 국내 시장을 초토화시켰다. ‘공예 외길’을 포기할 건가. 반년을 두문불출하면서 번뇌했다. 어느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게 됐다. ‘내가 오래 한 일이라고 해서 결코 잘하는 일이 아니다.’ 너무 미련을 두지 말자. 맘을 내려놓았다. 16년간 이어진 공예인생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우드에스프레소 미니어처 공방

1년간 완전 백수였다. 삶의 에너지가 너무 방전돼 충전이 필요했다. 직장밴드를 만들어 기타를 원없이 쳐댔다. 그때 암에 걸린 외삼촌이 급하게 호출했다. 안동에서 꾸려가고 있던 문구잡화점을 맡아보라고 강권하셨다. 졸지에 난 유통회사 사장이 된다. 1천여 가지 품목을 익히며 일에 심취하던 때 세월호 사건까지 터졌다. 선물용 등으로 팔려나가던 물건 주문이 뚝 끊겨버렸다. 6년차로 접어들 때 가게 구석에서 조각도를 쥐고 나무를 파고 있는 날 발견한다. 난 마법에서 풀려난 사람처럼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서 이렇게 독백했다.

‘역시 내가 잡을 건 나무뿐이다.’

방황 끝에 찾은 내 삶이었다. 그렇게 해서 2015년 46세의 사내가 수성구 만촌동의 한 도로변 건물 지하에 ‘우드에스프레소’란 대구 첫 미니어처 전문 공방을 차린다. 상호를 보고 이런 질문을 한다. 나무 옆에 왜 에스프레소냐고. 에스프레소란 ‘커피의 심장’이란 뜻. ‘사물의 실체를 나무로 표현해보겠다는 공방’이란 뜻이다. 미니어처 세계는 아직 시장도 없고 고객층도 지극히 얇다. 사업시계는 제로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온갖 마니아가 들끓는 세상이 도래하기 때문이다. 서구처럼 미니어처 돌풍이 불 것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웬만한 기타 한 대 가격보다 더 비싼 기타 모형물을 보고 다들 빨리 포기하라고 한다. 미니어처를 모르면 정말 1만원 한 장도 비싸다. 하지만 진가를 알면 가격을 따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미니어처 세계에 빠지도록 만든 특별한 주문 제작품이 있다. 바로 옛 감삼중학교 자리에 있는 대구교육연수원이다. 200대 1 비율의 미니어처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교육청측으로부터 의뢰받았다. 난감한 도전이었다. 솔직히 난 건축설계 경험이 전혀 없다. 그런데 이 연수원은 공모전에서 당선된 건축예술이 빼어난 건물. 그냥 두부모 썬 밋밋한 장방형 건물 같으면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연수원은 건물 네 면이 모두 다른 기울기와 각도를 갖고 있다. 그 건물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오감을 다 분리해서 부분별 작업을 한 뒤 연결해야만 했다. 일단 숱한 방향에서 연수원 사진부터 찍었다. 종이플라스틱 같은 포맥스, 수입 소나무인 스피러스, 아크릴, 우드락 등 재료를 각기 다른 모양으로 분절해 이어붙이기를 진행했다. 중간에 일이 비틀려버려 세 번이나 그만둘까 생각했다. 3개월 잠을 포기해가면서 생애 첫 미니어처를 납품했다. 지금 내 심벌 하나가 대구시교육청 로비에 전시돼 있다. 한 건축사도 내 작품을 보고 ‘엄지척’ 했다.

◆기타 미니어처 이야기

일단 내 미니어처의 화두는 현재로선 기타. 이를 위해 전 세계 유명 기타별 에피소드와 모델과 시리즈에 얽힌 에피소드 등을 알고 있어야 된다. 나는 누구보다 오래 기타에 매달렸고 직접 연주까지 할 수 있어 더 생동감 있고 더 진짜 같은 미니어처를 제작할 수 있었다.

미니어처는 차세대 공예분야다. 건축모형에서부터 피규어, 아이들의 교구인 가베, 돌(인형) 하우스, 진흙공예, 한지공예 등 미니어처 분야는 참 다양하다.

처음엔 기타공방을 차릴 계획이었다. 일이 너무 방만해져 무리가 돼 일단 미니어처로 돌아섰다. 일차적으로 4대 1 비율의 기타 미니어처에 도전했다. 다른 조립물과 달리 내 작업에 필요한 기성 부품은 전무했다. 필요한 모든 부품을 혼자 생각해 소재를 고르고 그걸 실제와 같게 일일이 만들어 사용해야 된다. 구두를 만들기 위해 수백, 수천종의 구두 본이 필요하듯 기타도 모델별 보디와 네크(목) 부분은 크기에 맞게 마분지로 본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

명품 기타를 작게 재현하려고 하면 기타의 모든 것을 알아야 미니어처에 영혼이 묻어난다.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다. 틈틈이 ‘기타학’을 스스로 터득해나갔다.

기타 세계에선 이런 말이 존재한다. ‘좌 펜더, 우 깁슨’이란 말이 있다. 난 기타 조형물을 만드는 장인이라 반드시 펜더·깁슨 족보에 대해서도 훤히 알고 있어야 한다. 펜더 스트라토캐스터는 1954년 등장한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일렉 기타 중 하나라는 것, 일반인들이 ‘전기기타’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기타 중 하나란 사실, 1949년 불타는 클럽에서 어렵사리 갖고나온 비비킹의 애장 깁슨 기타(es-335)의 별명이 ‘루씰’이란 것 정도는 상식으로 알아야 한다.

난 명품 기타 이미지를 거의 다 갖고 있다. 펜더 스트라우스캐스터를 4배 축소하면 24.5㎝가 된다. 일단 기타 몸체와 목 부문을 분리해 도면 작업을 해서 스크롤톱으로 오려내야 한다. 그런데 3D 프린터를 이용하면 끝처리가 영 매끄럽지 못하다. 수치를 저장해 놓아도 다른 모델을 만나면 다시 수정해야 한다. 경우의 수가 너무 많아 자동은 비효율적이다. 수작업으로 갈 수밖에 없다. 난 기타 보디의 기울기와 곡률을 계측기로 재 가면서 사포질로 미묘한 질감을 표현해낸다. 또한 원래 모델과 같은 도장의 질감을 올려야 된다. 광이 제대로 나도록 하려면 칠을 6~8번을 해야 된다. 우레탄을 칠하고 3시간 뒤 사포질을 한다. 다시 투명 우레탄칠을 하고 3시간 뒤 다시 사포칠을 하고 칠을 올린다. 마지막엔 물에 적신 사포로 면을 처리하고 투명 우레탄을 올린다. 기타 헤드에 달린 줄감개도 직접 아크릴을 깨알처럼 잘라 만들어야 된다. 지판의 플랫도 철사를 심어 만든다. 로고, 상표, 브랜드명을 부착하기 위해선 벡터 그래픽스 편집기인 코렐 드로(Corel draw)로 전사지에 디자인 이미지를 집어넣어 출력해낸다. 김광석이 사용하던 마틴기타 미니어처도 만들었는데 그때 그의 사인까지 마우스작업으로 완벽하게 따내 부착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 지루한 작업을 이해해 줄 사람은 나와 아내밖에 없을 것 같다.

◆아직 여기는 불모지

기타 한 대는 45만원선. 피아노 같은 건 65만원 정도 받는다. 비싸다면 비싸고 싸다면 한없이 싼 가격. 하지만 그걸 갖고 아직 흥정하고 싶지는 않다. 현재까지 이 분야는 불모지다. 국내에 기술자도 몇 명 안된다. 일정한 판매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알음알음 알아서 주문하는 사람 덕분에 겨우 입에 풀칠하고 있다. 올해는 코오롱야외음악당 대구포크페스티벌 행사장에서 부스전시도 했다. 첫 나들이인 셈이다. 많은 이들이 ‘소리도 안 나는 미니어처 기타가 어떤 의미가 있냐’고 질문한다. ‘일종의 아름다운 대리만족’이라고 대답해준다. 그 만족이 궁극에 도달하도록 나는 더 실체에 가깝게 만들어야 한다.

매캐한 공방. 난 지하인간처럼 평생 혼자 살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미니어처 도장 기법을 배우러 두 달간 경기도 부천의 ‘미니도도공방’에 갔을 때 거기서 아내를 만났다. 안산 대부도에서 ‘언니에 목공방’을 운영하던 권정선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인물 형상작업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그 기술까지 익히면 루이 암스트롱, 비비킹, 에릭 클랩튼 등 유명 뮤지션과 유명 기타 시리즈, 그 밖에 드럼, 피아노 등을 세팅하고 거기에 명연주까지 흘러나오는 콘서트홀 실황 같은 미니어처도 만들어 개인전을 열고 싶다. 악기 시리즈 다음은 뭐지? 대구시 등 지자체에서 도움만 준다면 사라진 대구읍성 미니어처도 욕심내 보고 싶다. 오는 10월14일은 아내의 출산예정일. 첫애는 과연 내 길을 수긍할까? 지금 그 애한테 줄 기타를 고르고 있다.

글=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사진=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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