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
    스토리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181109.010380837250001

영남일보TV

[김준의 바다인문학] 굴 이야기

2018-11-09

바다의 우유 짜는 ‘굴밭’…겨울철 입맛 적신다

20181109
지주식굴양식장. 이제는 통영 등지에 대량보급된 수하식굴양식장이 대세다.
20181109
남해안 등지에서는 뜨물에 굴과 매생이를 넣고 끓인 굴매생잇국을 즐겨 먹는다.
20181109
우리나라 전체 굴 생산량의 60~70%는 통영이 차지한다. 전체 인구 14만여명 중 굴 산업 종사자만 2만2천여명. 통영 수하식굴양식장 전경.
20181109
손톱보다 더 작은 갯가 알굴을 캐고 있는 백령도 아낙네.
20181109
충남 태안군에서 만난 ‘삼대 조새’. 굴노동의 고단함이 그대로 묻어 있다.

무덥던 여름의 기억이 가시기도 전인데 벌써 찬바람이 불어 온다. 그럼 굴이 눈을 뜬다. 바야흐로 굴 시즌이다. 10월 초·중순부터 서해안과 남해안 어촌은 ‘굴번기’다. 이맘때 갯바위에 피는 ‘돌꽃’이 있다. ‘석화(石花)’, 그렇다 굴이다. 상당수 어민은 2018년 겨울을 굴맛으로 시작한다. 남해안 양식 굴은 큼지막하다. 하지만 서해안 갯돌에 붙어 있는 ‘알굴’은 조금은 꾀죄죄하다. 조선 민초의 얼굴 같다. 크기는 1~2㎝. 아낙네들이 직접 겨울바람 맞아가며 굴 캐는 도구인 ‘조새’로 쪼아서 한알씩 캐 모은다. 그런 굴이 김장김치, 젓갈, 부침개, 굴국밥의 주요 식재료로 전국으로 팔려나간다.

굴만큼 오래된 바다음식이 있을까. 인간이 굴을 먹기 시작한 건 기원전 95년경, 로마인 세르기우스 아리타의 양식에서 출발한다. 동양에서는 송나라 때(420년경) 대나무에 끼워서 굴양식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일본의 굴은 1670년 히로시마에서 처음 시작된다. 우리나라는 단종 2년(1450) 공물용으로 양식했다.

‘고려도경’에 굴은 서민들이 즐겨 먹는 수산물이라고 소개돼 있다. 고려가요 ‘청산별곡’에는 ‘구조개’란 단어가 등장한다. 구는 ‘굴’을 의미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굴이 조선팔도 중 강원도를 제외한 곳의 토산물로 기록되어 있다. ‘자산어보’에는 굴을 ‘모려(牡礪)’라 하고 그 모양이 구름조각 같으며 껍질은 매우 두꺼워 종이를 겹겹이 발라 놓은 것 같다고 했다. 전라도권 토박이에겐 굴보다 석화란 말이 익숙하다.

예부터 알려진 굴 산지는 낙동강하구, 광양만, 해창만, 영산강하구 등이다. 북한은 함경도 황어포, 영흥만, 평안도 압록강 하구 등 기수역이 주요 산지다. 전남 해창만과 섬진강 입구 등에서는 ‘투석식 굴양식’이 발달했다. 이후 경남 가덕만과 진교만 부근에서는 ‘걸대식 굴양식’으로 진화한다. 이 스타일은 연안에 나무로 지주를 세우고 굴 패각을 걸어서 양식하는 방법이다. 투석식과 걸대식은 최근 무분별한 갯벌 파괴와 간척사업, 그리고 연안오염으로 크게 감소했다.

세계 굴생산량은 약 460만t. 중국이 가장 많은 굴을 생산하고 있으며 우리나라가 연 30만t으로 두 번째. 이어 일본·미국순이다. 우리나라 전체 생산량의 60~70%는 통영에서 차지하고 있다. 통영 전체 인구 14만여명 중에서 굴 산업 종사자만 2만2천여명. 멍게와 함께 통영경제를 책임지고 있다. 특히 통영 굴양식장은 미국식품의약국(FDA)이 인정한 지정해역이다. 이곳 굴은 ‘수하식’으로 양식된다. 바다에 하얀 부표를 띄우고 굵은 밧줄에 굴 종패가 붙은 패각을 매달아 양식한다.

◆짠내 나는 굴밭이야기

전남 무안군 해제반도와 함평군 사이 함해만에 ‘돌머리’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마을이 있다. 이곳에는 마을 공동 굴밭이 있다. 어촌계가 관리한다. 물때에 맞춰 어머니들이 굴을 까서 나오면 저울로 무게를 달아서 기록한다. 이곳 굴은 맛좋다고 소문 나서 작업하기가 바쁘게 팔려나간다. 일일이 무게를 적는 것은 판매량의 일정비율을 마을기금으로 적립하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마을세금을 굴밭에서 마련하는 것이다. 굴은 대부분 돌에 붙은 석화굴이다. 물론 이 굴은 돌을 갯벌에 넣어 만든 굴밭에서 자란 것이다.

인천의 큰 섬 덕적도. 그 옆에 소야도라는 작은 섬이 있다. 10여년전 처음 내가 그 섬을 찾았을 때 마을 어귀에서 할머니 네 분을 만났다. 막 까온 굴을 어촌계장이 저울로 달고 있었다. 이 굴은 모두 쾌속선에 실려 인천으로 보내진다. 노인들은 한 달 중 몇 차례 굴을 깐다. 그런데 마을 몫으로 세금도 떼지 않고 오롯이 할머니들 통장으로 돈을 입금시킨다. 그 벌이가 쏠쏠하다. 대부분 칠순이 넘은 분들이다. 이들에게는 구차한 공공일자리보다 굴까는 일자리가 더 실속있고 의미있다. 그 돈의 일부는 손주들 차지다. 돈이 돌아야 손자도 북적댄다는 걸 어르신들은 잘 안다. 그래서 기를 쓰며 일한다. 어쩜 마을공동어장은 최소한의 ‘사회안전판’인 것 같다.


기둥에 줄 세운 남해안 지주식굴양식장
통영 대량보급 수하식굴양식장 대세
양식굴 큼지막한 것은 10㎝ 정도 크기
서해 갯돌 붙은 알굴은 1∼2㎝로 작아
굴맛 좋기로 소문난 무안 돌머리마을
손주 용돈벌이 덕적도 굴 까는 할머니

고춧가루 더해 오래먹는 ‘어리굴젓’
소금과 섞어 1년 숙성한 ‘진석화젓’
봄까지 동치미처럼 두고 먹는‘피굴’
굴스테이크·굴김·굴스낵까지 개발



충남 태안군 개미목 마을에도 참 괜찮은 굴밭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가슴 뭉클한 장면을 만날 수 있다. 시어머니·며느리·손자며느리, 세대를 달리하는 3명의 여인네가 같은 굴막에서 정겹게 오순도순 굴을 까는 모습이라니. 각자 조새를 들고 있다. 나는 이 도구가 너무 신기해 ‘삼대조새’란 이름으로 사진을 찍었다. 언제 또 이런 장면을 촬영할 수 있을까. 조새의 포스가 각기 다르다. 조새는 손잡이인 ‘몸둥이’, 껍질을 벗길 때 사용하는 날카로운 쇠붙이인 ‘방아쇠’, 굴을 꺼내는 ‘전지개’로 구성되어 있다. 백발의 시어머니 조새는 단연 닳고 닳아서 윤이 나고 손가락 모양으로 파였다. 한눈에 봐도 연륜이 느껴졌다. 손자며느리 조새는 전혀 닳지도 않았는데 반질하다. 시어머니가 늘 곁에 두고 굴까는 법을 알려줬으리라. 며느리는 굴막보다 바깥일이 더 많아서인지 약간 파인 흔적은 있지만 몸둥이에 흙도 묻어 있다.

아쉽게 2007년 겨울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로 그 굴밭은 큰 피해를 입고 사라졌다. 가장 마음이 아픈 굴 이야기는 소록도 박물관에서 보았던 조새다. 부족한 먹거리를 찾기 위해 뭉뚝한 손으로 자기 손을 닮은 뭉뚝한 조새를 움켜쥐고 갯바위를 오가며 굴을 까야만 했던 나병환자의 그 처절한 노동현장이 이 무렵이면 자주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진다.

◆늦게 피는 돌꽃이 맛있다

서해안 초기 굴양식은 돌을 집어 넣은 투석식이다. 지금도 옹진군 섬 주변이나 경기만, 가로림만, 함해만 등 내만에 위치한 어촌에는 돌을 집어넣어 만든 굴밭을 볼 수 있다. 부착성이 강한 유생들이 갯벌 위 나뭇가지나 돌에 붙어 자라면서 서로 엉기어 멋진 굴밭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서·남해안 해안에 기둥을 세워 빨랫줄처럼 줄을 걸고 그곳에 가리비나 조개껍질에 포자가 붙은 줄을 걸어 양식하기도 한다. 이를 지주식 혹은 걸대식 굴양식이라고 한다. 갯벌이나 돌보다 수심이 있는 곳에 설치하지만 역시 썰물에는 고스란히 햇볕에 노출된다.

여기에 비하면 통영이나 거제나 고성 등지에서 많이 하는 수하식 굴양식장은 그 면적이나 규모가 엄청나다. 스티로폼이라는 부표로 굵은 줄을 띄우고 끝에 닻을 놓아 고정한다. 그리고 준비된 포자가 붙은 패각 줄을 주렁주렁 매달아 양식한다. 24시간 물속에 잠겨 있으니 하루 종일 먹이활동을 한다. 그래서 1년 정도 자라면 팔 수 있을 정도로 자란다.

필자가 본 굴 중에서 알이 가장 작은 굴은 백령도에서 맛본 굴이다. 콩돌해변의 손톱보다 작은 돌만큼의 크기다. 섬진강 강굴을 제외하고 바다에서 자란 굴로는 통영 수하식양식굴이 가장 크다. 10㎝ 정도도 있다. 여기에 비하면 백령도 굴은 크기가 1~2㎝쯤 될까. 서식지에 따라 굴의 식감과 맛은 다를 수밖에 없다. 조선시대 최초 식객으로 불리는 허균은 ‘도문대작’이란 팔도음식기행기를 통해 ‘동해안에서 나는 굴은 크고 좋은데 맛은 서해안에서 나는 것보다 못하다’라고 했다.

◆굴젓에서 굴튀김까지

요즘은 냉동해서 사철 굴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옛날에는 싱싱한 제철에만 먹어야 했다. 그래서 어른들은 ‘굴은 보리가 패면 먹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일본에도 ‘벚꽃이 지면 굴을 먹지 말라’했다. 바로 5~8월. 굴 산란철로 난소에서 분해된 독소가 나오는 때다.

굴을 오래 두고 먹는 음식으로 굴젓이 있다. 굴젓 하면 ‘어리굴젓’을 꼽는다. 소금만 넣는 것이 아니라 고춧가루를 더하는 것이 특징. 굴과 소금을 버무려 사나흘 숙성한 다음 쌀뜨물이나 밀가루로 풀을 쑤어 식힌 후 고춧가루를 풀어 섞는다. 갈무리해 10여일 지나면 먹을 수 있다. 소금에다 고춧가루까지 넣었으니 상하는 것을 완전히 막았으리라. 짭짤함과 얼큰함이 입맛을 돋운다. 그래서 어리굴젓이라는데, 오래 두고 먹는 것이 아니라 얼간해서 먹기에 어리굴젓이라 하지는 않았을까.

반대로 고흥 등 전남 서남해 어촌마을에 전하는 ‘진석화젓’이 있다. 소금과 굴을 섞어 1년 정도 숙성한 젓갈이다. 옛 문헌에도 소개되어 있다. 이런 젓갈용 굴은 알이 잘고 날감지(물날개)가 많은 것이 좋다. 조간대 갯벌이나 갯바위 혹은 투석식이나 걸대식 양식장에서 자라는 굴이 딱이다.

굴젓과 달리 인상적인 음식이 ‘피굴’이다. 보성군 벌교읍 장도라는 섬에서 그걸 맛보았다. 한때 벌교 꼬막보다 더 유명했던 장도 꼬막. 꼬막 못지않게 굴도 좋다. 굴을 살짝 삶아 하나씩 꼬막처럼 까서 알굴을 빼내고 뽀얀 국물은 그대로 받아둔다. 국물에 있는 부유물이나 부스러기를 가라앉혀 맑은 국물만 따라낸다. 알굴에 국물을 넣고 먹기 전 가는 파를 잘게 썰어 띄우고 소금간을 한다. 이렇게 해서 겨울철부터 이른 봄까지 마치 동치미처럼 두고 먹는다.

최근 굴 정식 식당이 전국에 하나둘 생기면서 알이 큰 굴이 많이 소비되고 있다. 대부분 코스요리에 기용된다. 굴전, 굴무침, 굴튀김, 굴구이, 굴밥, 굴회, 굴국…. 최근에는 굴김, 굴 스테이크, 굴라면, 굴스낵 등까지 개발돼 인기를 얻고 있다.

이제 커다란 구이용 굴이 시장에 나올 때다. 맛은 좋은데 늘 껍질이 문제다. 알굴이 1t이면 굴 껍질이 10t. 껍데기는 분리수거도 안 된다. 통영시 용남만 마을 앞과 길가에는 박신공장(굴껍질 벗기는 곳)에서 나온 굴껍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굴껍질은 산업폐기물이다. 경관을 해치고 냄새도 지독하다. 석회비료로도 사용하지만 그 처리량이 극히 일부다. 최근 토사와 섞어서 성토제로 만들어 공유수면 매립에 사용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껍질 없이 굴만 얻을 수 없다. 선사시대 흔적들이 지금껏 남아 있는 이유다. 지혜로운 소비가 필요하다. 날씨가 점점 추워진다. 그래, 굴 철이다. 갑자기 굴이 들어간 매생잇국이 생각난다.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원)


Warning: Invalid argument supplied for foreach() in /home/yeongnam/public_html/mobile/view.php on line 399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영남일보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