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주는 노땡큐, 취향 저격 ‘개성적 송년회’
커피 마시는 브런치 모임, 홈파티 버전 활성화
촛불·아기자기한 파티테이블로 분위기 연출
부담스럽지 않게 즐기는 다양한 ‘핫플’ 찾아
12월에 만나는 촛불은 올해를 성찰하게 하는 힘과 내년을 힘차게 계획하게 만드는 신비한 힘을 갖고 있다. 파티형 송년회에선 빠질 수 없는 촛불의 기운이 소시민의 소박한 꿈을 모두 실현시켜 줬으면 좋겠다. |
올해도 딱 10일 남았다. 당신의 12월은 어떠하신가? 1월에 야심만만하게 파종된 한 해의 설계도가 궤도를 꽤 많이 벗어나 깔끔하게 ‘끝선 정리’를 해줘야 할 때가 바로 12월 아닐까. 경기 탓인지 도심 곳곳을 돌아다녀도 그 시절 그렇게 흔하던 캐럴이 잘 들리지 않는다. 모임이 대세이던 시절에는 다들 ‘망년회’라 그랬다. 얼마나 보기싫은 일상이었으면 지난 한해를 망각하려 했을까. 이젠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응시하려 한다. 그래서 모임보다는 파티가 있는 송년회가 대세다. 파티와 모임. 비슷해 보이지만 둘의 물성은 사뭇 다르다. 예전에는 ‘송년모임’, 이젠 ‘송년파티’가 더 자연스럽다. 모임이 파티로 거듭나기까지 참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 시절엔 ‘음주가무’로 12월을 내동댕이 쳐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송년회 과음치사 최다국’이란 오명을 씻기 힘들었다. 특히 1990년 12월은 최악의 달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독주(毒酒)의 습격을 받고 6명이 저 세상으로 사라진 것이다.
이젠 각자 형편에 맞는 ‘개성적 송년회’를 연출한다. 폭탄주는 노탱큐, 먹고 싶은 만큼 알아서 마신다. 강요도 ‘폭력’이다. 자연 ‘묻지마 폭탄주’는 변방으로 밀려나 점차 용도폐기되는 듯하다. 자정을 넘기지도 않는다. 깔끔파들은 밤 9시를 넘어서면 쿨하게 일어선다. 이런 분위기가 ‘9시 땡 신데렐라 송년파티’를 부추기고 있다.
밤 송년회만 고집하지 않는다. 베이커리카페 같은데서 커피 마시며 브런치 스타일로 대낮 송년회를 감행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소외됐던 가족송년회는 ‘홈파티’ 버전으로 더욱 활성화되고 있다.
모임형 송년회는 국민국가 시절에 알맞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젠 자기 욕망에 충실한 시민국가 시절. 이곳에선 모임보다 파티가 딱이다. 모임문화는 다소 몰개성적이었다. 획일적이고 맹목적이랄까. 해묵은 생각을 자꾸 독주로 지우려 했다. 참석자 모두 고주망태가 되어야 비로소 송년회가 끝이 났다. 하지만 파티가 있는 송년회는 퍽 민주적이다. 개성이 잘 묻어난다. 저마다의 힘겨운 일상을 잘 주물러준다. 웃음 묻은 맞장구가 연발한다. 더치페이식으로 송년회를 함께 보듬는다. 촛불 하나만 켜져도 분위기가 달라진다. 그 옆에 동화풍의 크리스마스트리·반짝이볼·실전구·풍선·산타클로스 모자와 양말, 빨간 포인세티아가 압도하는 둥그런 리스, 그리고 빙그레 웃는 모양인 한 입 크기로 먹을 수 있는 핑거푸드를 오순도순 깔아둔 파티테이블. 그 앞에 정겨운 이와 함께 앉으면 자기를 억압하던 온갖 허세와 허영이 다 벗겨진다.
◆ 송년파티를 찾아서
아무튼 송년파티 기운을 간직한 공간을 찾아 길을 떠났다. 처음 방문한 곳은 폐허가 된 중구 남산동 공장 자리에서 피어난 베이커리북카페 ‘남산제빵소’. 군수공장을 예술창작촌으로 변모시킨 중국 베이징 다산츠(大山子) 798 구역에 온 듯했다. 2천640㎡(800평)의 대지에 해묵은 공장이 덩그러니 두 존으로 연결돼 있다. 남쪽 공간은 내년 초 오픈을 목표로 리모델링 중이다. 북쪽 존은 지난 3월17일 먼저 오픈된 남산제빵소. 상호가 지극히 ‘골목밀착적’이다. 하지만 요즘 이 공간은 그 어떤 곳보다 송년특수를 누리고 있다.
재개발구역으로 전락해 무척 을씨년스러운 곳이었다. 그런데 카페로 변신한 뒤 단번에 남산동의 다크호스 랜드마크가 된다. 어두워지면 불빛에 감싸인 제빵소는 언뜻 크리스마스트리 처럼 보인다. 그래서 예전엔 무채색으로 지나갔던 행인의 발걸음도 지금은 유쾌하고 활기차다. 바로 옆 골목 안에서 질식 같은 일상을 보내는 독거노인들도 이 제빵소 때문에 조금 숨을 쉴 수 있게 됐다. 그래서 더 호감을 갖는다. 가끔 지팡이를 짚고 와 2천200원짜리 추억표 단팥빵 하나를 사놓고 한창 북적대는 홀 곳곳을 물끄러미 구경하다가 사라진다.
그 광경을 누구보다 짠하게 바라보는 황혜성 대표. 자그마하고 청순하고 친절하기까지 한 청송 출신인 그녀, 참 똑 소리나게 일을 잘 처리하는 CEO. 계명대 신문방송학과를 나와 사진작가 활동을 하며 여행자의 삶을 동경하다가 돌연 대구은행에 입행, 11년간 베스트 행원의 삶을 꾸려왔다. 능력과 실력을 겸비해 한때 ‘실적의 여왕’으로 주목을 받았다. ‘사랑의 밥차’ 봉사활동을 하던 중 ‘봉사하는 삶이 가장 소중하다’는 걸 깨닫는다. 그 깨달음을 사업으로 연결시켰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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