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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박상준의 스토리 오브 스토리 .32] 소설과 영화 두 편의 닥터 지바고

2020-03-26

역사소설로, 연애영화로…별개의 두 명작으로 빛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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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작 영화 '닥터 지바고' 포스터 리터치

영화 '닥터 지바고'를 다시 봤다. 역시 좋다. 새삼 확인해 보니 1965년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50년도 더 전의 작품인데 지금 봐도 좋으니, 명작은 역시 명작이라 할 만하다. 이번으로 나는 영화 '닥터 지바고'를 열두어 번째로 본 것 같다. 이 영화를 처음 본 고등학생 때는 발랄라이카로 연주되는 '라라의 테마'의 애수와 시베리아를 상상케 하는 설원 장면 정도가 인상에 남았던 기억이 있다. 대학원 시절에 보면서는 혁명가 스트렐니코프에 주목하게 됐고, 결혼 후 국립극장에서 대형 화면으로 봤을 때는 바르이키노 초원의 꽃이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볼 때마다 새롭게 느낀 것이 있었으니 '닥터 지바고'야말로 고전의 정의에 걸맞은 작품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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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노벨상' 파스테르나크 원작소설
인간 삶과 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
'아카데미 5관왕' 데이비드 린 감독 영화
인상적 음악·풍경으로 고유의 아우라
주인공부터 작품 초점까지 크게 달라


이번에 보면서 느낀 것은 한두 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작품 전체가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고나 하겠는데, 이는, 소설 '닥터 지바고'를 꼼꼼히 완독하면서 영화와 다른 점이 많다는 것을 느끼고 이를 확인하고자 영화를 본 까닭이다. 소설과 영화를 비교하면서 차이를 의식하는 식으로, 소설 '닥터 지바고'와 영화 '닥터 지바고' 각각의 특징을 뚜렷이 보게 된 것이다.

이러한 비교를 통해 몇 가지 생각을 얻었다. 영화란 서사 예술 중에서 가장 이야기 줄거리가 두드러지는 경우라는 생각이 앞에 온다. 소설 '닥터 지바고'에서는 중심인물들의 사건과는 거리가 있는 묘사나 상념 등이 상당한 비중을 갖고 기술된다. 지바고와 라라, 토냐, 파샤 같은 중심인물의 비중 자체가 전체 분량에서 그리 크지 않다고 할 만큼 이들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 적지 않은데, 이것이 영화에서는 거의 완전히 누락되어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민중들의 삶과 혁명의 역사, 지바고의 여정에 따라 작품에 담기는 당대의 상황, 그리고 삶과 혁명, 역사 및 예술에 대한 지바고의 깊이 있는 상념 등이 영화에서는 모두 지워져 있다. 이는 소설 '닥터 지바고'가 중심 인물들의 사건을 작품 전체에 걸치는 줄거리로 삼지 않는 특징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보다는 영화라는 예술이 사건을 시각적으로 재현하면서 이루어지는 까닭에 초래된 불가피한 변화라 할 수 있겠다.

어쨌든 소설 '닥터 지바고'가 품고 있는 다양한 내용이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을 유념해 둘 필요가 있다. 영화 '닥터 지바고'만 보고서 '닥터 지바고'를 안다고 해서는 안 될 만큼 둘 사이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이것이 꼭 소설과 영화라는 장르의 차이에 의한 것만도 아니니 더욱 그렇다. 사실 원작 소설을 갖는 영화 중에는 장르의 차이에 구애받지 않는 경우들도 적지 않다. 러닝 타임이 무려 일곱 시간이 넘는 세르게이 본다르추크 감독의 소련 영화 '전쟁과 평화'(1966~67)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1869)의 호흡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어서 영화만 본 채 소설을 안다고 해도 별 손색이 없다. 소설과 영화 모두 공전의 히트를 친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 또한 그러하다. 이와는 달리 장르 고유의 특성을 잘 살려 냄으로써 영화가 원작 소설로부터 독립하여 성공하는 경우도 있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1984)을 영화화한 필립 카우프만 감독의 '프라하의 봄'(1988)이 좋은 예다. 이 경우는 애초부터 원작의 충실한 재현에 목을 매지 않으면서 영화 또한 성공한 사례라 할 만하다.

물론 '닥터 지바고' 또한 소설과 영화 모두 명작의 반열에 오른 경우임은 물론이다. 원래가 시인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단 한 편 쓴 이 장편소설로 195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고, 데이비드 린 감독의 영화 또한 각본상과 오리지널 작곡상, 촬영상, 미술상, 의상상 등 다섯 개의 아카데미 상을 휩쓸었다. 파스테르나크가 당시 소련의 상황에 의해 수상을 거부하지 않을 수 없었고 아카데미 또한 작품상이나 주연상까지 받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사실이 소설과 영화 '닥터 지바고' 모두가 걸출한 작품이라는 사실을 지우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닥터 지바고'와 영화 '닥터 지바고'는 엄밀히 말해서 다른 작품이라 할 만하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파스테르나크의 작품이 역사소설의 성격이 강한 반면 데이비드 린의 작품은 연애 영화에 가깝다. 이러한 차이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들을 주인공에 한정하여 짚어 둔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지바고의 깊이 있는 상념이 영화에서는 표현되지 않은 사실을 먼저 꼽을 수 있다. 소설의 주인공 지바고는 시에 재능이 있는 문학 청년에 그치지 않고 사상가의 면모를 보인다. 어릴 때 '톨스토이주의와 혁명을 거쳐 줄곧 더 멀리 나아가 유명세를 타게 되는'(김연경 옮김, 민음사, 2019, 1권 23쪽) 외삼촌의 영향을 받은 것이 주요한 원인이지만, 혁명기의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 생각하는 삶을 지속한다는 점이 보다 근본적이다. 그의 사색이 대상으로 하는 것은 두 가지, 인간의 삶과, 거대한 흐름과도 같은 역사이다. 해서 그는 혁명이 본질적인 것이 못 됨을 꿰뚫어보고, 권력을 장악한 볼세비키와 거리를 두어 대학 강의를 접게도 된다. 반면 그가 쓴 소책자들은 비밀리에 여러 사람들에게 읽힌다. 역사란 풀이나 숲과 같아서 '움직이지 않는 모습으로 영원히 자라고 영원히 변하고, 그러면서도 그 변형이 감지되지 않는다'는 지바고의 상념은 '전쟁과 평화'에 표현된 톨스토이의 역사 인식이 역사에 있어 소수 영웅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부정하는 데 그쳐 버렸다는 점에서 미진하다고 비판하는 데까지 이른다(2권 367쪽).

소설과 영화에서 가장 크게 차이가 나는 인물은 라라이다. 영화의 여주인공 라라는 비련의 여인이다. 코마로프스키와 파샤뿐 아니라 지바고와의 관계에서도 그녀는 사랑과 보호를 필요로 하는 여린 여자로 등장한다. 하지만 소설의 라라는 그렇지 않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머리가 총명하고 발랄한 성격을 보였으며, 자기보다 어린 파샤와의 미래를 주도적으로 계획하고, 그가 참전하게 되자 그를 찾기 위해 간호사 자격증을 따서 전선으로 향하는 등 주밀하고 대찬 면모를 보인다. 지바고가 보기에 이런 라라는 '남의 마음에 들고, 예쁘게 보이고, 남의 마음을 끌고자 하는 생각' 같은 '여성적 본질의 이런 측면을 경멸'하는 인물이며(2권 82쪽), 그 역사에 있어 '실성한 것 같으면서도 너무나 사랑스러운 조국 러시아'와 겹치는 존재이다(259쪽). 이에 더해 라라는 세상의 변화가 갖는 의미에 대해 지바고와 대등하게 의견을 나눌 만큼 깊이 있는 안목을 갖추고 있다. '너무 이른 나이에 죄스러울 만큼 일찍 여자가 된, 망가진 여자'라고 자책도 하지만(2권 271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살아 내는 성숙한 인간인 것이다.

이와 같이 남녀 주인공부터 크게 달라지고 작품의 초점 또한 다른 데 놓이는 까닭에 소설 '닥터 지바고'와 영화 '닥터 지바고'는 별개의 작품이 되었다. 감미로운 음악과 인상적인 풍경으로 고유의 아우라를 지닌 영화를 다시 보는 것도 좋겠지만, 이번 기회에, 인간의 삶과 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보이는 소설을 찬찬히 음미해 보라고 추천한다. 전염병이 여전하고 총선 준비의 혼란스러움이 극에 달하는 요즘같이 어수선한 상황을 긴 안목에서 성찰할 수 있게도 될 듯해서이다.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학부장·문명시민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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