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200424010002556

영남일보TV

[김지혜의 클래식 오딧세이] 헨델의 '위트레흐트 테 데움' HWV 278

2020-05-01

17C 英 혼란기 아름다운 음악으로 하느님 메시지, 갈등 잠재워

2020042401000621500025562
헨델이 영국 왕실의 의뢰로 작곡한 '위트레흐트 테 데움'의 계기가 된 '위트레흐트 조약' 체결 모습.
2020042401000621500025561

헨델은 1685년 독일 할레 출생으로 J.S.바흐와 함께 후기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다. 그는 대부분의 삶을 영국에서 보냈고, 1759년 사망 후 영국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 묻힐 만큼 영국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헨델은 1712년부터 앤 여왕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으며 런던에 정착하였다. 이듬해인 1713년 영국 왕실은 '위트레흐트 조약' 체결을 기념하는 곡을 헨델에게 의뢰했고, 헨델은 '위트레흐트 테 데움'을 작곡했다.

'위트레흐트 조약'은 네덜란드의 도시 위트레흐트에서 체결된 조약으로, 그 배경은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다. 당시의 스페인은 유럽의 해상 무역을 주도하며 아메리카지역까지 식민지로 둔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였는데, 1700년 스페인 왕 카를로스 2세가 후사 없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이 분쟁은 시작되었다. 스페인 공주이자 프랑스 왕비였던 마리 테레즈(루이 14세의 부인)가 왕의 손주인 필리프 공작을 스페인의 새로운 왕으로 세웠는데, 이것은 프랑스가 스페인의 모든 영토를 합병하여 비대한 권력을 갖는 것을 의미했다. 프랑스의 지배력이 확장되는 것에 위기를 느낀 신성로마제국과 유럽 열강들(프로이센·영국·네델란드 등)은 프랑스를 견제하기 위해 연합하였고 이것이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시작이다.

1701년에 시작된 전쟁은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으로 마무리됐다. 유럽은 프랑스를 견제하는 것에 성공하였고 이후 각 국가의 손익을 조율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중 영국은 유럽 해상무역의 새로운 주역으로 급부상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들을 획득하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평화와 더불어 영국의 밝은 미래를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왕은 이것을 크게 선전할 필요가 있었다.

당시 영국은 런던의 인구 급증과 그에 따른 물가 상승, 긴 전쟁의 여파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17세기 중반부터 후반까지 런던은 약 400~650%의 인플레이션을 경험했고, 임금 노동자들의 내란과 청교도 운동이 일어나면서 사회적 계급이 흔들리는 등 수 많은 갈등이 계속되는 중이었다.

이런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왕실은 성대한 기념식을 준비했고 많은 사람들이 감동할 만한 아름다운 음악이 연주되도록 기획했다. 음악을 통해 받은 감동은 어떤 화려한 의례나 연설보다 강렬해 그 기억은 오랜 시간 그리고 지속적으로 그 기념식의 의미와 함께 회자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감동을 받았던 기억은 '어디서, 왜 그런 경험을 하게 되었는지'로 연결되는 측면이 있어서 음악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는 뜻이다.

작곡가는 이미 영국에서 중요한 기념식을 위해 널리 사용되었던 테 데움이란 형식의 '위트레흐트 테 데움'을 작곡했다. 테 데움은 '우리는 당신을 주님으로 찬미하고 받들겠노라'라는 라틴어로 시작되는 찬송가로, 기원전 500년경부터 교회 축제일이나 승전기념일 등 중요한 날 감사의 노래로 불러졌던 전통을 갖고 있다.

이 곡은 6명의 성악가와 합창단, 그리고 트럼펫, 플루트, 오보에, 바순과 현악기가 함께 연주하는 모음곡이다. 일찍이 이탈리아에서 오페라와 관현악 작곡법을 공부했던 재능있는 작곡가는 이탈리아풍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멜로디를 썼고, 때때로 트럼펫을 적절히 활용해 승전가와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여기에 영국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영어 기도문을 가사로 사용해 하느님이 축복하시는 영국의 밝은 미래에 대한 메시지를 훌륭하게 전달했다.

필자가 헨델의 '위트레흐트 테 데움'을 소개하며 주목한 점은 이 곡이 가진 사회적 성격이다. 물론 이 성격은 작곡가의 자의에 의해 결정된 것도 아니고 정치적인 목적으로 의뢰한 것이라 평가는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곡을 거울삼아 볼 수 있는 '예술 작품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측면은 그 평가보다 더 중요하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의 긍정적 측면은 예술 작품이 그 시대의 사회적 현상을 반영한다는 점인데, '위트레흐트 테 데움'을 통해 당시 유럽의 상황을 보았듯이 과거로부터 온 예술 작품들을 통해 그 시대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천, 수백 년 전의 예술 작품들은 과거의 유물로만 머무르는 게 아니라 오늘날의 사회까지 연결해 많은 영감을 주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그 생명력을 갖게 되고 이것은 현대인들이 여전히 과거의 세계를 감상하는 중요한 이유다.

바이올리니스트·다원예술그룹 ONENESS 대표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 인기기사

영남일보TV

부동산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