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논리에 밀려…대구 도심 대표건물 사라진다
수십년 전부터 대구시민들이 즐겨 찾던 추억의 장소들. 사진 위쪽에서부터 홈플러스 대구점 2 철거 공사 전 대구적십자병원 3 예전 DFC빌딩(옛 대동타워). 〈영남일보 DB〉 |
대구를 대표하는 건물들이 주거용 주상복합건물로 탈바꿈하는 것에 대해 오랜 지역 경기침체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일이라지만, 한 시대의 역사를 간직한 건물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무분별한 아파트 건축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누군가에게 대구적십자병원은 처음 헌혈을 한 기억의 장소이고, 대구프린스호텔은 배우자를 처음 만난 추억의 장소이며, 대동타워는 어려운 시기에 돈줄이 되어 준 곳이기 때문이다.
만남의 광장 재탄생 바랐지만
건설업체에 팔려 철거 진행 중
◆대구적십자병원
누적 적자로 인해 병원 문을 닫은 뒤 2010년부터 비어있던 대구적십자병원은 지난 1월 반도건설에 매각됐다. 반도건설은 이곳에 지하 5층~지상 29층 전용면적 84㎡ 이하 주상복합아파트 100여 세대 및 근린생활시설을 신축할 계획이다.
반도건설 관계자는 "현재 현장 철거를 진행 중이며 사업 인허가 절차를 밟고 있다"면서 "인허가가 완료되는 대로 올 연말이나 내년 상반기쯤 분양과 함께 건축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구적십자병원은 소유주인 대한적십자사가 누적 적자를 이유로 2010년 폐원하고 매각하려 했으나, 도시계획시설상 의료시설로 묶여 있는 데다 매매가가 250억원대로 덩치가 커서 매각되지 않고 방치된 상태였다. 그러나 2017년 2월 중심상업지구로 변경되면서 상업시설 건축이 가능해짐에 따라 건설업체의 눈길을 받아오다 올해 초 반도건설에 매각됐다.
한때 이곳은 건설업체에 의한 개발보다는 시민을 위한 장소로 개발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배지숙 대구시의회 의장은 2015년 대구시의회 임시회에서 "대구에는 남녀노소가 만나 지역 현안을 논의하는 소통 공간이 없다"며 "대구의 중심도로인 달구벌대로와 중앙대로의 교차점에 있고, 대구도시철도 1·2·3호선이 모두 연결되는 옛 대구적십자병원 자리는 광장을 만들 수 있는 최적지"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실행되지는 못했다. 배 의장은 "대구 토박이로서 적십자병원 건물이 사라지는 것은 너무 안타깝다"면서 "반월당은 대구시민 기억 속에 만남의 장소다. 특히 적십자병원은 공공의료기관이자 시민이 자발적으로 헌혈하던 곳이다. 이런 곳이 현재와 미래 세대를 일깨워주는 장소가 되길 바랐었다"고 말했다.
지역대표 호텔 명성 떨쳤지만
아파텔 임대주택 들어설 예정
◆대구프린스호텔
대구시 남구 명덕로에서 1984년부터 영업을 시작했던 프린스호텔은 지역을 대표하는 호텔로 이름을 떨쳤다. 계명대 대명동 캠퍼스와 명덕네거리 사이에 위치한 입지로 인해 문화행사가 끊이지 않았다. 또 각종 심포지엄과 토론발표회 등이 열려 대구의 컨벤션센터 역할을 하기도 했다. 커피숍은 맞선 장소로 인기였다.
그러나 인터불고호텔과 노보텔 등이 잇따라 생겨나면서 관심권에서 벗어나 '대구 대표'라는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2013년 이랜드그룹이 인수한 후 다양한 노력을 통해 재기를 추진했으나 2018년 영업을 중단했다.
프린스호텔 자리에는 공공 지원 민간임대주택이 들어선다. 새롭게 짓는 임대주택은 아파텔(아파트+오피스텔) 2개 단지다. 본관이 있던 곳은 2단지로 지하 4층~지상 16층 연면적 2만8천226㎡에 아파트 29세대 및 오피스텔 241실과 근린생활시설 등이, 별관 자리에는 1단지로 지하 3층~지상 15층 연면적 1만6천276㎡에 아파트 24세대와 오피스텔 154실과 근린생활시설 등이 들어선다. 2019년 10월부터 시작된 철거는 끝났다. 1단지는 공사를 위한 방음벽 설치 중이며, 2단지는 이미 공사에 들어갔다. 〈주〉이랜드건설이 공사를 맡고 있으며 준공 예정일은 2023년 1월31일이다. 남구청 관계자는 "프린스호텔은 2013년 이랜드그룹이 인수했으며 2018년 말 영업을 중단한 상태"라며 "계열사인 이랜드건설이 시공을 맡아 원만한 진행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외환위기 상흔 대동은행 본점
공매 끝에 주상복합 신축절차
◆DFC빌딩(옛 대동타워)
1997년대 IMF 외환위기의 상흔이 남아 있는 대구시 수성구 중동 DFC빌딩(옛 대동은행 본점 사옥)이 주상복합아파트로 탈바꿈한다.
화성산업은 〈주〉제이에프개발과 '수성구 중동 주상복합아파트 신축공사' 도급계약을 지난해 12월 체결했다. 현재 철거가 진행 중이며 인허가 절차를 밟고 있다. 중동 주상복합아파트는 지하 4층~지상 29층 2개 동에 아파트와 오피스텔을 합쳐 총 230세대가 건립될 예정이다. 아파트는 전용 84㎡ 156세대, 오피스텔은 전용 84㎡ 74실로 각각 구성돼 있다. 공사금액은 652억원으로 올 상반기 분양 예정이다.
대구은행과 함께 지역은행의 하나였던 대동은행은 1989년 5월 대동금융으로 출발했으며, 지역 중소기업의 자금 공급을 늘리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설립됐다. 하지만 설립 10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98년 6월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간판을 내렸다.
1997년에 완공된 대동은행 본점 사옥인 대동타워는 사라지기 전 23년 동안 우여곡절도 많았다. 1997년 5월 대동은행 본점 준공식이 열렸으나 몇 달 지나지 않아 IMF 쓰나미가 몰아쳐 1998년 6월 대동은행 간판을 내렸다. 장부상 가격이 776억원이었던 이 빌딩은 자산정리 전문기관인 한국자산관리공사가 126억원에 인수했다. 당시 대구 최고·최신 인텔리전트 빌딩이었지만 빌딩 임자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대구시도 200억원대에 매입하려고 했고 수성구청까지 이 빌딩에 눈독을 들였으나 10차례 이어진 공매는 모두 유찰된다.
난감해진 공사 측은 빈 사무실이 늘어나자 이 상태로는 제대로 팔기 힘들다고 판단해 2003년 리모델링했다. 금융빌딩이기 때문에 임대가 어렵다보니 일반 사무실 스타일로 개조한 것이다. 이렇게 건물 내부 구조가 변하고 나서야 공매에 나온 지 8년 만인 2007년 6월25일 영국계 부산동 펀드사인 '트라이시스 유동화 전문 유한회사'에 412억5천만원에 매각된다. 하지만 이듬해 7월 미국계 헤지펀드가 새 주인이 됐고, 2017년 12월에는 하나자산신탁으로 소유권이 넘어갔다가 공매를 거쳐 지난해 6월 제이에프개발이 347억원에 낙찰받았다.
1997년 오픈했던 국내 1호점
주거용으로 탈바꿈 가능성 커
◆홈플러스 대구점
1997년 홈플러스 국내 1호점으로 문을 연 홈플러스 대구점도 누적된 적자를 이유로 경기 안산점·대전 둔산점과 함께 매각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향후 부지 사용을 두고 건설업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홈플러스 노조측에 따르면 이번 매장 매각은 통상적으로 진행해오던 매각 후 재임대방식(세일 앤 리스백)이 아니라 폐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 즉 매각이 성사되면 홈플러스 대구점은 문을 닫고 건물을 철거한 다음 그곳에 구매자가 주상복합건물 등을 짓게 된다는 것이다.
대구점(영업면적 9천900㎡)이 위치한 인근은 최근 몇년간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섰고, 오페라하우스와 대구FC 홈구장인 DGB아레나 등 문화체육시설까지 접하고 있어 새로운 주거지로 각광받고 있다. 여기에다 도심과 붙어 있고 신천대로나 북대구IC 등과도 가까워 다른 지역으로의 이동도 용이하다.
이 같은 위치적 장점 때문에 주거용 건물이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 사업자 입장에서도 상업건물을 지어 임대 수요자를 구하기보다는 치솟은 대구지역 분양가를 바탕으로 주상복합건물을 분양해 수익을 남기는 것이 유리하다. 지역 건설사 관계자는 "충분히 사업성 있는 용지로, 매물로 나온다면 적극적으로 검토해 볼 생각"이라며 "해당 지역은 대구의 관심 지역 중 하나"라고 말했다.
전영기자 younger@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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