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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순섭의 역사공작소] 선사시대로부터의 교훈

2020-08-26

[함순섭의 역사공작소] 선사시대로부터의 교훈
국립대구박물 관장

지리학처럼 고고학에도 '경관'이라는 연구 분야가 있다. 경관은 땅 위에 펼쳐진 풍경을 특징짓는 여러 요소이며, 자연경관과 문화경관이 있다. 자연경관은 지형과 기후가 오랜 기간 변화를 거치며 만든 고유한 자연의 모습이다. 문화경관은 그 자연에 인간이 적응하고 이용한 결과다. 한반도에서는 안정된 기후와 벼농사를 기반으로 농업사회를 일군 청동기시대부터 일정한 문화경관이 만들어졌고, 그 상태는 대규모 토목공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대체로 유지되었다.

1993년 11월에 국립중앙박물관을 서울 용산구의 가족공원으로 옮긴다는 발표가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부지가 습지라서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강둑을 넘은 홍수는 강물이 서서히 줄어도 강둑에 막혀 빠지지 못하여 배후습지로 남는데, 새 박물관 부지가 지형상 바로 그곳이었다. 이후 지반조사를 위해 시추한 토질자료에서도 배후습지는 너무나 뚜렷하였다. 그래서 한강에서 을축년(1925년) 대홍수와 같은 200년 주기의 최고 수위에 대응하고자 흙을 쌓았고, 연약지반을 극복하고자 기초 파일을 깊은 암반층에 박았다. 대홍수에 대비하여 부지를 완전히 재정비한 사례는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이 유일하지 않을까.

2001년에 대구지역을 경관고고학의 관점에서 분석한 적이 있다. 이때 관건은 홍수한계선이었으며, 근대의 도시화와 토목공사가 이루어지기 이전의 상황을 유추하였다. 우선 1960년대 이전에 만든 여러 지도에서 자연 촌락의 해발고도를 찾아보았고, 경작지의 식생과 분포를 살폈다. 마지막으로 그 위에 청동기시대 고인돌과 선돌의 위치를 겹쳐 보았다. 이렇게 한 이유는 이전에 창녕군 영산면에서 유적 분포조사를 하며 느낀 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낙동강 강변에서 며칠 허탕을 치다가, 주변 충적평야에 있는 고인돌의 해발고도에 맞추어 수평선을 긋고 그 지점을 따라 다시 찾아다녔다. 수십 개소의 유적은 충적평야 외곽의 산록 아래 일정한 해발고도를 따라 쭉 확인되었다. 홍수한계선 위에만 유적이 있었고, 오늘날 자연 촌락도 같았다. 청동기시대 고인돌과 선돌은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한 삶의 터전이 어디까지인지를 증언하고 있었다.

근래 우리는 진척된 토목 기술과 확충된 배수 설비를 맹신하며 선사시대의 교훈을 무시하고 있다. 한순간, 한 부문이라도 조금만 허술하면 바로 잠길 수 있음을 잘 알면서도 그렇다. 인간이 자연을 온전히 이길 수 없음은 1968년 한강 개발 때 없앤 밤섬이 스스로 되살아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국립대구박물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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