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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이야기 따라 상주 여행 .5] 화북면 견훤산성...영남~중부지방 잇는 전략 요충지…후백제 견훤이 쌓았다고 전해져

2021-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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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시 화북면에 있는 견훤산성. 후백제 견훤이 성을 쌓고 웅거하며 북쪽에서 경주로 향하는 공납물을 거둬들였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축성연대가 후삼국시대가 아닌 삼국시대로 보고 있다.

산성은 산봉우리를 휘감아 똬리를 틀고 앉아 있다. 멀리서 보면 봉우리를 단단하게 묶은 무명 리본처럼 보이기도 해 태평스러운 긴장으로 죄여온다. 경사진 산길을 구부정히 오르다 문득 고개를 들면 갑자기 거인처럼 일어선 장대한 성벽에 시선이 얼어붙는다. 다가갈수록 거인은 점점 까마득해지고 더욱 단단해진다. 이윽고 하나하나의 돌이 확인될 만큼 가까워지면 그 치밀함과 견고함에 감탄한다. 이 산성은 후백제의 맹주 견훤(甄萱)이 쌓았다고 전해지는 견훤산성이다.

#1. 견훤산성

경북 상주의 서북쪽 끝인 화북면은 백두대간 화령을 기준으로 북편에 자리하고 있다. 왼쪽으로는 속리산의 준봉이 줄줄이 뻗어 내리고, 오른쪽으로는 도장산·청화산·대야산이 이어지는 골짜기 땅이다. 서쪽으로는 충북 보은, 동쪽으로는 경북 문경과 접한다. 면의 대부분이 속리산 국립공원에 속하는 산골짜기지만 남북 방향으로 흐르는 용유천변에 좁지만 적당히 농사지을 만한 평지가 펼쳐져 있고 면소재지가 들어서 있다. 천과 나란한 49번 지방도를 따라 북쪽으로 향하면 둥그런 봉우리와 정상부를 조여맨 성이 보인다. 견훤산성이다.

봉우리는 속리산 문장대에서 동쪽으로 흘러내려온 해발 541m의 장바위산이다. 49번 도로에서 속리산 시어동 계곡 방향으로 빠져 나가면 장암리 장바위마을이다. 마을길을 따라 들어가면 우측에 견훤산성 700m 이정표가 나온다. 나무계단으로 시작되는 산길은 수월찮은 흙길로 이어지고 하늘이 열릴 즈음 수목의 줄기 너머 밝은 성벽이 보인다. 초입에 집채만 한 바위가 수문장처럼 버티고 서 있다. 바위의 꼭대기 위로 고개를 치켜든 성벽이 보이고 그로부터 겹겹이 쌓인 수많은 돌의 무리가 섬밀한 몸체를 이루며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의 입구를 연다. 훅 하고 바람이 덮쳐 온다.

전설에 따르면 견훤산성은 후백제 견훤이 성을 쌓고 웅거하며 북쪽에서 경주로 향하는 공납물을 거둬들였다고 한다. '상주읍지(尙州邑誌)'에는 '성산산성(城山山城)'이라고 했으며, 견훤이 축성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조선 후기의 '대동지지'에는 '상주 서쪽 50리에 있는 화령고현성(化寧古縣城)을 세상에선 견훤산성이라 전하나 잘못이다'라고 기록돼 있다. 견훤이 쌓은 성이라 전할 뿐 이곳이 그의 근거지였다는 기록은 없다.

성의 입구는 남동쪽에 위치한다. 원래 동문이 있던 자리인 듯하다. 좌우로 산성의 외벽이 명확한 형태를 드러낸다. 강고하고 강경하다. 거대한 콘크리트 벽처럼 견고해 보인다. 그러면서도 물결처럼 부드러운 곡선이다. 견훤산성은 대체로 남북으로 긴 사각형을 이루고 있는데 서쪽 성벽은 장바위산의 정상을 감싸면서 축조돼 있고 북쪽과 남쪽은 9분 능선에서 약간 아래에 걸쳐 축조돼 있다. 전체 길이는 650m, 폭은 4~6m 정도다. 천연의 지형지세를 이용해 푹 꺼진 골짜기는 높이 채우고 솟아오른 암벽에는 그 위에 더해 쌓았다. 그래서 성벽의 높이는 7~15m로 다양하다. 돌들은 손으로 다듬은 흔적이 있는 직사각형의 화강석이다. 두께가 10㎝ 내외인 크고 작은 돌들이 정연한 단을 이루며 쌓여 있고 잔돌 끼움도 보인다. 대단한 집중력과 엄청난 공력이다.

성 전체 길이 650m…폭은 4~6m
망루 오르면 화북면 일대 한눈에
성안서 기와·토기조각 다량 출토
학계 신라 한강 진출 교두보 추정

#2. 감시와 방어를 위한 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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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 안의 둘레길을 따라가면 물을 모으는 시설인 집수지를 볼 수 있다.

성안 둘레길을 따라 간다. 집수지(集水池)가 복원돼 있다. 물을 모으는 시설이다. 성벽 아랫 부분에는 배수구(排水口)도 보인다. 성안에서는 기와 조각과 토기 조각 등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는데, 이는 성내에 건물이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오솔길에서 만나는 성안의 대부분은 멋진 정글이다. 성벽은 무너진 곳도 있고 기울어진 곳도 있고 상단이 훼손된 곳도 있다. 몹시 인상적인 것은 계곡부에 협축식(夾築式)으로 쌓아올린 높고 장대한 성벽이다. 협축은 성벽의 안팎에서 성체를 올려쌓는 것을 말한다. 성벽 위에 오르면 성안과 성 밖이 모두 낭떠러지인 형태다. 수직으로 솟구친 이끼 낀 성벽에 매미처럼 붙으면 멋진 정글과 가없는 하늘에 갇힌다. 전의를 상실하게 하는 아름다움이다.

안내판에 따르면 성문터인 문지(門址)가 2개소, 적의 접근을 관찰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성벽의 일부를 돌출시킨 치(雉)가 3개소 있다고 한다. 서문지는 확인된다. 서문지 아래와 동문지 옆의 돌출부는 치로 추측된다. 성의 입구 쪽 일부분만 복원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외 시설은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다. 그러나 일반인의 눈에도 분명한 것은 망대로 여겨지는 말발굽 모양의 곡성(曲城)이다. 망대에 오르면 화북면 일대를 지나는 교통로가 한눈에 보인다.

동북쪽에 우뚝 솟은 봉우리는 백두대간의 청화산이다. 산 아래쪽에 보이는 고개는 늘재다. 늘재는 충북 괴산으로 통한다. 동남쪽으로 화북면소재지인 용유동이 훤하다. 용유동 동쪽으로는 용유계곡과 쌍룡계곡의 가파른 벼랑이 문경으로 향한다. 남쪽으로는 갈령 넘어 상주로 이어진다. 과거 경상도 상주와 문경에서 괴산·보은·청주 등 충청도로 가는 길은 현재 49번 지방도로가 가장 수월했다고 한다. 견훤산성은 이 도로의 길목에 위치한다. 중부지방과 영남지방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인 것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성의 축성 연대를 후삼국 시대가 아닌 삼국시대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로 성을 쌓은 방식이 이곳에서 멀지 않은 충북 보은의 삼년산성(三年山城)과 거의 유사하다. 삼년산성은 신라 자비왕 때인 470년에 쌓고 소지왕 때인 486년에 개축한 것으로 백제에 대비하고 고구려를 저지하면서 서북지방으로 나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전초기지였다.

학계에서는 견훤산성 역시 신라가 소백산맥을 넘어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는 교두보이자 방어처로서 축성한 것이 아닌가 짐작하고 있다. 견훤은 867년 상주 가은현(현재 문경시 가은읍)에서 태어났다. 신라의 비장(裨將)으로 활약하다 효공왕 4년인 900년 완산주(完山州·현 전주)에 후백제를 세웠다. 이후 936년 사망하기까지 그의 흔적은 합천·청도·영천·경주·진주·군위·안동 그리고 상주 등 여러 곳에 남아 있다. 견훤산성과 견훤 사이에 직접적인 관련을 찾을 수는 없지만 또 전혀 관련이 없다고 단정할 수도 없지 않을까.

반쯤 허물어진 옛 성벽과 키 큰 소나무가 하늘에 걸려 있다. '가을날 옛 성 마루 흰 구름 가니/ 한 세상 영웅들의 간 곳이 어디메뇨/ 백제의 흥망성쇠 천 년의 한이/ 늦은 산 초동들의 한 가닥 노래로세.' 채주환이라는 이가 노래한 견훤산성이다. 삼국이든 후삼국이든 영웅들의 시대였다면 감시와 방어에 탁월한 요새였겠지만 지금은 전망대로서 일품이다. 무엇보다도 문장대에서 천왕봉에 이르기까지 속리산의 주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산성은 1시간 정도면 돌아 볼 수 있다. 오솔길은 그리 쓸쓸하지 않다. 견훤산성은 경북도 기념물 제53호로 지정돼 있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참고=상주시 누리집. 상주읍지. 한국지명유래집. 한국콘텐츠진흥원 누리집. 문화재청 누리집. 백영종, 5~6세기 신라산성 연구 : 소백산맥 북부 일원을 중심으로, 2008.

▼화서면 청계마을 견훤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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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훤의 신위를 모신 견훤사당.

견훤 신위 모신 19세기 전반 건물
동제 지내는 민속신앙 구심점 역할


견훤산성의 남쪽인 화서면 하송리 청계마을에는 견훤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 있다. 한 칸 규모에 맞배지붕을 올린 간소한 건물이지만 예스럽고 아담한 정취가 있다. 사당은 늦어도 19세기 전반에 창건되었고 초기의 모습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서 동제를 지낸다. 마을 민속 신앙의 구심점에 견훤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이는 매우 드문 현상이다. 상주 견훤사당은 경북도 민속문화재 제157호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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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혜숙 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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