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개장한 거창 창포원은 수몰지구의 유휴지에 조성된 생태공원으로 경남 지방정원 1호다. 수질정화 능력이 매우 뛰어나 생태 복원에 탁월한 꽃창포 백만 그루 이상이 식재되어 있다. |
황강·대산천 합류하는 마름모꼴 땅
축구장 66배 크기 국내 3호 지방정원
습지·식물원·학습관·실개천 등 조성
대표적 수생식물 꽃창포 100만 그루
크고 작은 습지 물길 따라 수양버들
사계절 품은 온갖 꽃들도 볼 수 있어
정원 휘감아 도는 산책길 1000m 넘어
꽃창포 붉은 자주색 꽃길로 간다. 꽃은 대부분 지고 시들었지만 짙고 큼지막한 몇 송이만으로도 꽃창포의 존재감은 뚜렷하다. 약간 흐트러진 듯 아래로 처진 꽃잎은 얼마나 관능적인지. 곧게 선 줄기와 낭창거리는 커다란 잎이 싱그럽다.
꽃창포는 햇빛이 잘 드는 습지에서 주로 자라는 여러해살이 식물이다. 관상용으로 많이 쓰일 만큼 꽃이 아름다운 대표적인 수생식물이다. 무엇보다 수질정화 능력이 매우 뛰어나 생태 복원에 탁월하다. 번식력도 강하고 뿌리를 깊이 내리기 때문에 흙이 무너지거나 유실되는 것을 막아줘 홍수 방지효과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주 넓다. 42만㎡(약 13만평)로 축구장 66배 크기다. 창포원은 방문자 센터와 열대 식물원, 자연에너지학습관, 화초류 습지, 유수지, 실개천 등 6개 유형으로 구성돼 있다. 꽃창포가 주력으로 식재되어 있지만 다양한 수생식물과 나무들, 계절을 품은 꽃들을 볼 수 있다. 희고, 푸르고, 붉은 수국이 피기 시작했다. 국화는 조용히 가을을 기다린다. 수레국화는 청보라와 진홍과 연분홍으로 무리지어 흔들리고 그들 속에서 쑥 고개 내민 개양귀비가 붉게 하늘거린다. 길가에는 꽃분홍의 끈끈이대나물과 자주색 백일홍이 힘껏 꽃잎을 펼친다. 삼색버드나무는 초록의 잎끝이 하얗게 바랬다가 이제 햇빛을 받으며 점점 핑크색으로 물들어간다.
수생식물원에는 파피루스, 물양귀비, 연꽃, 물칸나, 물아카시아, 빅토리아연꽃, 물배추 등이 산다. 화르르 왜가리가 노란 다리를 뻗으며 날아간다. 호수처럼 넓고 세 개의 분수가 갈매기처럼 날아오르는 곳은 '꽃창포습지'다. 습지의 가장자리를 따라 수양버들이 띄엄띄엄 서 있고 그들 아래로 꽃창포가 초록의 무더기로 곧추서 있다. 대부분이 노란 꽃창포로 보인다. 노란 꽃창포는 유럽과 중동지방이 원산인 귀화식물로 수질 정화에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재래종을 위협한다는 우려도 있지만 식재 계획과 향후 관리가 모두 설계에서부터 반영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창포원은 방문자 센터와 열대 식물원, 자연에너지학습관, 화초류 습지, 유수지, 실개천 등으로 구성돼 있다. |
정원을 휘감아 오르는 산책길은 1천m가 넘고 길가에는 엔사타, 시베리아, 루이지애나, 저먼 아이리스 등 다양한 아이리스가 아직 어린 모습으로 서 있다. 아이리스는 무지개라는 뜻이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무지개 여신인 이리스에서 유래됐다. 이리스는 제우스와 헤라의 시녀로 무지개다리를 건너 하늘과 땅을 이어주었다고 한다. 아이리스는 헤라가 이리스에게 내린 축복의 숨결이 땅으로 떨어져 핀 꽃이라고 전해진다. 선녀가 하늘에서 무지개를 타고 땅으로 심부름을 왔다가 구름이 무지개를 걷히게 하여 올라가지 못하고 꽃창포로 변했다는 신화도 있다. 꽃말은 비 내린 뒤에 보는 무지개처럼 '기쁜 소식'이다. '아이리스 정원' 옆에 '무지개 길'이 있다. 하얀 꽃창포와 붉은 자주색 꽃창포가 피어난 습지의 가운데로 산책로가 둥글게 나아간다.
연꽃원에는 크고 작은 연못이 이웃해 있으며 백련과 홍련이 자란다. |
거창 창포원은 2011년부터 가꾸기 시작해 지난 5월15일에 개장했다. 유휴지가 초록이 가득한 정원으로 바뀌는데 10년이 걸렸다. 거창군은 정식 개장 전인 2020년 12월에 지방정원 등록을 신청했다. 지방정원은 자치단체가 조성하고 운영하는 정원으로 등록 기준이 만만치 않다. 전체 10㏊ 이상 면적에 녹지가 40% 이상이어야 하고 정원관리 전담부서, 주차장과 체험시설 등의 편의시설, 구역도 및 시설 명세서, 수목 유전자원 목록 등 지방정원 운영관리 조례 등이 충족돼야 한다. 경기도 세미원과 전남 죽녹원이 지방정원이다. 그리고 지난 1월22일 거창 창포원이 세 번째 지방정원으로 등록됐다. 경남 지방정원 1호다.
동쪽 가장자리로 길게 이어지는 메타세쿼이아 길 너머로 황강변의 모래밭이 두껍다. 흰줄무늬 갈대밭에 '갈대원'이라는 안내판이 서 있지만 지금 강변은 '수변생태정원'을 조성하기 위한 공사 중이다. 황강을 내다보는 전망 공원과 약초원 등도 진행 중이다. 지방정원 등록 후 3년이 지난 후 요건이 충족되면 국가정원으로 등록할 수 있다.
현재 거창 창포원은 2024년 준공을 목표로 제2 창포원을 조성하고 있다. 흙을 쌓고 흙을 깎고 어도를 내고, 계획하고 설계하여 하나하나 이루어 나가는 모습이 새삼 놀랍다. 머지않아 모래톱이 펼쳐지고 낙우송과 왕버들의 숲이 우거질 것이다. 어도가 흐르고 새들을 맞이하는 관찰대가 생기고 자연을 파고드는 산책로와 물 위의 길이 생길 것이다. 거창 창포원의 목표는 국가정원이고 세계의 정원이 되는 것이다.
열대 식물원에 바나나가 실하다. 폭포가 시원하게 떨어지고 색색의 비단잉어가 헤엄친다. 식물원의 나선 램프로 이어지는 방문자센터 옥상에 오른다. 정원을 가꾸는 수많은 사람들의 등이 쉴 새 없이 움직인다. 북쪽으로는 들이 펼쳐져 있다. 일렬로 선 벼들이 쑥쑥 자란다. 비를 머금은 회색빛 구름을 뚫고 하늘 꼭대기에서 쏟아진 햇빛이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갖가지 꽃들의 옅은 향기가 대기에 퍼진다. 이런 모든 소란에도 모든 것이 잠잠하다. 가슴을 활짝 열고 기지개를 켠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 Tip
12번 대구광주고속도로 거창IC에서 내려 톨게이트 앞 로터리에서 8시 방향(24번국도 대구방향)으로 간다. 약 600m 앞 국농소삼거리에서 우회전해 직진하다 산단사거리에서 좌회전해 들어가면 거창 창포원이다. 이정표가 잘 되어 있다. 창포원 개방 시간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며 입장료와 주차료는 무료다. 자전거도 무료로 대여한다. 유아용부터 4인용까지 다양하다. 자전거를 타고 창포원을 크게 한 바퀴 돌 수 있다. 대여가능시간은 오전 9시부터 11시(11시40분까지 반납), 오후에는 1시부터 5시까지(5시20분까지 반납)다. 자전거 대여소는 월요일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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