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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동대구로에서] 악의 평범성

2021-09-15

착함을 빙자한 악령의 세상
선악에 대한 기준 흔들리고
양심조차 윤리 보루 어려우니
악의 평범성을 극복하기 위한
악에 대한 새로운 인식 절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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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호 주말섹션부 전문기자

낮에 주물리던 일(노동)을 놓고 잠을 청한다. 일과 잠 사이엔 시름에 가까운 상념이 서식하고 있다. 그 상념의 시간이 주색잡기와 협업을 벌이기도 한다. 가슴에 밀장 돼 있는, 자기한테 너무나 불리한 비망록. 고백하거나 자백하기 전에는 우리 모두는 그걸 알 수가 없다. 공유될 수 없는 그 부담스러운 상처를 성경, 불경, 코란, 경전 등으로 가린다. 하지만 그게 답일까. '합리화'란 방식으로 간직할 수밖에 없는 별별 악마의 연대기, 그게 '악령'처럼 인간을 몰아간다. 성격이 인격으로 숙성되려면 그 악령을 잘 승화시켜야 된다. 결과에 따라 인간은 소인과 대인으로 나뉜다.

일할 땐 악령은 뒤로 물러난다. 하지만 잠잘 때면 그가 주인이 된다. 나중에는 그가 이승과 저승의 경계까지 그리게 된다. '카르마'란 이름의 '업(業)'도 바로 그런 태생이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고 외친다. 그 말은 '모든 인간은 치료 불가능한 악령의 존재라는 측면에서 모두 평등하다'란 의미랄 수 있다.

세상·시대·일상과 불화를 겪고 있는 자들은 '불면'이란 감옥에 갇힌다. 파산 선고를 당한 자, 사망 선고를 받은 자, 배신·모욕·수모·망신을 당한 자…. 그런 자는 피가 뇌 쪽으로만 몰린다. 눈을 감아도 눈앞이 대낮처럼 훤하다. 전전반측, 불면의 시간이다. 그때 악마보다 더 저주스러운 자들이 등장해 잠으로 향하는 길을 봉쇄시킨다.

악령에 감금된 마음, 그 맘의 고삐는 쉬 움켜쥐기 어렵다. 내가 맘의 주인인 것 같은데 그 악마가 늘 내 맘을 독점한다. 그가 날 역 통제한다. 가슴은 응어리지고 끝내 돌처럼 굳어진다. 그 어떤 폭약으로도 깨지지 않을 만큼 견고해진다. 절정에 달한 슬픔은 비로소 '한(恨)'으로 승화된다. 한은 역설의 공간. 슬픔이 궁극에 달할 때, 마치 비명이 절정에 달할 때 소리를 잃게 되듯, 그 슬픔은 고요의 단계로 승압 된다. 별별 상처 다 딛고 자수성가한 뒤 전 재산을 사회에 내놓을 수 있는 자들만이 풍겨내는, 그 어떤 무덤덤한 경지 같은 거랄까.

싫음은 미움, 그 미움은 증오, 그 증오는 저주로 독을 쌓아 나간다. 그 저주가 양심을 장악할 때, 인간이 완성되는 건가? 우린 지금 '착함을 빙자한 악령의 세상'을 맞고 있다. 그러니 '양심은 순진무구하다'고 장담하지 마시라. 지금 별이 그 자리 별이 아니듯 양심이 그 어떤 악령일 수도 있다. 좋음이 결국 나쁨이었음을 깨닫게 해주는 요지경 세상. 그러니 부디 '저 사람, 정말 착하다'란 말을 쉽게 하지 마시라. 차라리 '모두 나쁜 사람의 출발선에 서 있다' 하시라. 그러니 누굴 더 유익하게 배려하는 삶이 얼마나 숭고한가를 반드시 기록하시라.

어떤 이는 '양심의 가책'을 도덕과 윤리의 마지막 보고라 여긴다. 과연 그럴까? 슬픔은 일상이고 악은 삶의 전제 아닐까. 대지 속에 빙하가 바늘처럼 박혀 있듯, 생명체가 호모사피엔스로 진화하면서 구축된, 자기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 의지라는 것, 그게 악령에 물든 양심의 다른 모습일까.

얼마 전 필리핀 근해 마리아나 해연, 수심 1만m가 넘는 그 바닥에서 어이없게도 비닐봉지가 발견됐다. 놀라지 마시라! 양심의 심연에 스며든 악령인가. 인간과 동행하는 양심이란 이 변형 바이러스.

어쩜 악은 특별한 게 아니다. 이미 하나의 '평범성'을 획득한 건지도 모른다. 그 속뜻이 궁금하신 분이라면 올해 이육사 문학상을 수상한 이산하 시인의 '악의 평범성'(창작과 비평사 간)이란 시집을 일독해 보시길.
이춘호 주말섹션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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