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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광장] 환자와 죄수

2021-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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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동협 운경의료재단 곽병원 원장

저자가 미국인인 한 번역서에서 "병원에서 환자는 마치 죄수와도 같다"는 쇼킹한 문구를 접한 적이 있다. 환자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의료인 입장에서는 절대 동의할 수 없는 표현이지만 입원 환자의 시각에서 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는 블랙유머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입원 환자와 죄수 사이엔 공통점이 상당히 많다. 입원 환자는 마음대로 벗어날 수 없는 병실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낯선 사람들과 함께 머물러야 한다. 평상복 대신 죄수복과 흡사한 환의를 입어야 한다. 본인 확인에 필요한 수인번호와 같은 용도의 환자 번호가 새겨진 팔찌를 착용해야 하며, 의사와 간호사는 교도관이 그렇듯 항상 감시하면서 이름을 확인하고는 취조하듯 꼬치꼬치 캐물은 뒤 이래라저래라 지시를 한다. 제공되는 음식은 천편일률적이어서 입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지간한 불편은 참고 지내야 하는데, 혹 불평할 경우 오히려 손해를 볼 것 같아 망설이게 된다.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는데 검사, 처치, 수술 등을 신속하게 해 주지 않아 오랜 시간 지루하게 기다려야 할 때가 많다. 마음대로 외출 외박도 안 되며 보호자 면회도 주어진 시간에만 가능하다. 퇴원하는 환자를 보면 마치 출소하는 동료 수감자를 보듯 부럽다. 죄수들은 모범수라 하여 감형도 받지만, 환자는 의료인의 지시를 잘 따르고 섭생을 열심히 해도 조기 퇴원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중증 코로나에 걸려 입원하게 되면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음압병실에 갇혀서 바깥 공기를 쐬는 것조차 불가능하며 눈에 보이는 사람은 모두 우주복 같은 방호복을 입은 사람이어서 외계에 홀로 떨어져 감금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식사는 매끼 도시락이고, 면회는 물론 사망해도 가족들이 임종을 지킬 수 없고 화장된 뒤 유골로 가족에게 인계되므로 사형수보다 더 처참한 신세가 된다. 그래서 환자를 영어로 'patient'라고 하는 모양이다. 그 어원을 따져보면 '견디다' '고통을 받다' '지배를 받다' 등의 뜻인 라틴어 'pati'에서 나온 말이다. 환자로 지내려면 어지간한 불편은 참아야 하고 장기간의 치료도 견뎌내야 하는 끈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인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측면에서 병원은 일견 감옥과 유사해 보이기도 하지만 영어 단어 '호스피탈(hospital)'의 라틴어 어원을 추적해보면 호텔과 그 뿌리가 같다. 수도원을 중심으로 시작된 중세의 숙박시설 '호스피탈레(hospitale)'는 치료와 휴식 두 가지 기능이 있었는데 치료기능은 병원으로, 휴식 기능은 호텔로 변천되었다고 한다. 우리 병원 신규간호사 면접 시 지원 동기를 물어보면 "곽병원에서 태어났다""환자로, 보호자로, 실습 학생으로 경험했는데 마음에 들어서 지원하게 되었다"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면접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어디에도 감옥이 연상되는 답변을 들은 적은 없었다. 환자는 자신의 경험에 따라 병원에 대해 극과 극의 이미지를 갖게 되는데 환자들이 자신을 '죄수'가 아닌, 호텔 같은 병원에 투숙한 '고객'으로 여기게끔 만족스러운 의료 외 서비스도 아울러 제공하는 것이 병원 종사자에게 주어진 과제다.

병원에서 태어나고 병원에서 치료받고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이 보편화된 현대인에게 병원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모든 이에게 필수 불가결한 곳이다. 그러므로 병원이 환자들에게 감옥과 같은 기피 대상이 아니라 호텔처럼 더 머무르고 싶은 편안한 곳, 친숙한 곳, 추억의 공간이자 생명을 살리는 소중한 장소로 거듭날 수 있도록 미력하나마 나의 힘을 보태고 싶다.
곽동협 <운경의료재단 곽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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