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어를 유심히 살펴보노라면 가끔 해석하기 어려운 낱말을 만나게 된다. 분명히 잘 아는 글자로 이루어졌으나 뜻을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경우다. '유기(有機)'란 낱말이 그중 하나다.

유기적, 유기체, 유기화학, 유기화합물, 유기비료, 유기농업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유기'란 낱말이 불쑥불쑥 등장하지만, '있을 유(有)'와 '틀 기(機)'란 문자 지식만으론 도저히 풀어낼 수 없다. 그러나 얼핏 보아 많은 사람이 이 말들을 무리 없이 사용하고 있으니 이 또한 묘한 일이다. 많은 경우 그 뜻이 명확하지 않은 채 사용되고 있음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사전을 찾아 특별히 기억해 두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우므로 우선 사전을 펼쳐보자.

국어사전을 보니 유기(有機)를 ①생활기능을 갖추고 있고 ②(생물체와 같이) 전체를 이루고 있는 각 부분이 서로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사전의 설명을 바탕으로 낱말을 풀면 이렇게 볼 수 있다. '유'는 '갖추고 있음', 그리고 '기'는 '생활기능'과 대응하니 '유기'란 생활기능을 갖추고 있거나 생명력이 있음을 뜻한다. 생활기능이 있고 생명력이 있다는 것은 곧 생물체를 가리키니 전체를 이루는 각 부분이 서로 밀접한 관련을 가진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유기란 낱말을 접할 때 '생활기능이 있음' '생명력이 있음' 또는 '각 부분이 서로 관련이 있음'을 기억하면 대부분의 유기 복합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한자를 알아도 이해하기 어려운 낱말이 있으니 한자를 모르고도 한자어를 알 수 있다는 주장은 적어도 유기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례가 물론 유기에만 해당하지는 않는다.

이경엽 한자연구가

유기가 이렇게 어려운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서양어를 번역한 말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훌륭한 번역이라도 원어와 완벽한 대응은 어렵다. 그리고 원래 평범했던 낱말에 전문 개념이 추가되고 여러 학문 분야로 적용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뿐만 아니라 이 낱말이 지닌 개념의 바탕이 된 과학적 사실에 오류가 있었다는 것이 후일 드러났으나 명명(命名)이 바뀌지 않았고 번역어가 그대로 사용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왕 나왔으니 유기란 낱말의 탄생을 간단히 살펴보자. 유기에 대응하는 영어는 '오간(Organ)'인데, 이는 도구나 기관 또는 조직을 뜻하는 그리스어 '오르가논(Organon)'에서 유래하였다. 도구 또는 기관은 생명력이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뉘는데 Organ은 악기 오르간과 신체의 도구이자 생명력 있는 기관인 장기를 뜻하게 되었다. 오르간을 가리키게 된 것은 건반과 페달을 눌러 바람을 일으키고 파이프를 울려 소리를 내는 모양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신체의 장기를 뜻하게 된 것 역시 장기가 생리 기능을 담당하는 기관(器官)으로서 생명력을 지닌 기관(機關)과 기능(機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서구의 과학자들은 생명력을 지닌 모든 것은 탄소의 구성과 관련이 있다고 보았기에 탄소화합물을 '오가니즘(Organism)'이라 이름 붙였고, 일본은 이를 '유기(有機)'로 번역하였다. 후에 무기물의 합성으로도 유기물이 만들어지는 것이 발견되지만 유기체에 대한 명명은 바뀌지 않았다. 중국에서는 일시 오가니즘을 '관품(官品)'으로 번역하였다. 관품의 '관'은 장기 기관(器官)의 관이므로 생명체를 전제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지금 한·중·일 동양 삼국은 모두 일본제 한자어인 '유기'를 사용하고 있다.
이경엽 한자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