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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기억은 노란 민들레다. 따사로운 햇빛이 드는 초가집 봉창아래, 가지런히 피어난 민들레를 만져보았다. 네 살 위 오빠와 엄마가 동구 밖 우물에 물 길러 간 사이, 잠이 깬 나는 엄마를 찾아 봉창 너머 떨어졌다. 돌 지난 아이가 어딜 갔을까. 혼비백산한 엄마는 집 안팎을 뒤졌다. 보드라운 흙과 지푸라기가 얼굴에 묻어있었지만, 나는 방그레 엄마를 보고 웃었다.
경칩을 지나 목마른 대지에 내린 봄비가 찾아온 3월의 주말. 나는 진갑을 맞았고, 작은 아버지는 83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셨다. 내가 예닐곱 살 즈음, 당시 작은 아버지는 강원도 군부대에서 '나의 할아버지 별세 전보'를 받았다. 강원도에서 경북 문경 산골까지 꼬박 하루 만에 큰집 마당에 당도한 후, 작은 아버지는 그만 혼절하고 말았다. 비마저 추적추적 내리던 할아버지 장례식 전날 밤, 작은 아버지는 "커다란 등불 2개의 인도를 받아 첩첩산중 주흘산을 넘으셨다"고 했다. 난데없이 나타난 불을 향해 "귀신이면 물러가고 사람이면 나타나라"고 외치자 불이 '툭' 사라졌다고 했다. 집안 어르신들은 "조상신인 호랑이가 부친상을 당해 밤길을 재촉하던 작은 아버지를 인도한 것이라" 입을 모았다.
작은 아버지의 호랑이를 물리친 이야기는 어린 조카들에게 '전설의 고향'이 되었다. 작은 아버지는 평생 농부로 민들레처럼 착하게 살다 가신 분이다. 최근 폐가 좋지 않아 수술을 하셨다. 병원에 계실 때라도 한 번 찾아뵐 걸 후회가 되었다. "작은 아버지는 어릴 적 내가 고사리 손으로 손잡아 드리면 너무 좋아하셨다"고 작은 어머니가 전해 주었다. 사느라 바빠서 이뻐한 조카가 무슨 소용이랴.
사람은 누구나 백년 남짓한 시간이란 함수를 피할 수 없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이지만, 사람들은 각자 다른 시간을 살고 있다. 비행기를 타면 세상 어디든 갈 수 있지만, 지구표면 안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이다. 공간적 제약도 벗어날 수가 없다. 태고 적부터 시간은 늘 존재해 왔지만, 시간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변화되어왔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시간을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로 구분했다. 크로노스는 시간을 관장하는 신으로, 사람이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생로병사의 시간이다. 해가 뜨고 지는 자연의 시간이다. 카이로스는 제우스의 아들이며 기회의 신이다. 특정한 의미가 부여된 주관적인 시간이다. 크로노스는 1일, 1개월, 1년처럼 누구에게나 객관적으로 흐르지만, 카이로스는 사건 별로 진행되기도 하고 천천히 혹은 순식간에 흐르기도 하며 거꾸로 가기도 한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시간, 작은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크로노스가 아닌 카이로스적 관점에서 시간을 생각한다. 시간에 얽매이고 휘둘려 정신없이 살기보다 시간의 주인이 되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챙기며 살아야겠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지금 이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음을 얻은 시간 카이로스다.
김호순 시민기자 hosoo031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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