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 국무총리가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이임식을 마친 후 총리실 직원 대표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환하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
만 1년에서 딱 하루가 빠졌다. 김부겸 국무총리가 364일의 임기를 마치고 12일 공직에서 물러났다. 김 총리는 이날 이임식에서 '정치 은퇴'까지 선언해 순탄치만은 않았던 정치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경북 상주 출신으로 민주화 투사의 삶을 살았던 그는 1988년 정계에 입문한다. 1991년 '꼬마 민주당'에 입당해 당시 대변인이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신한국당과 민주당의 통합으로 만들어진 한나라당에서 의원까지 했지만 탈당해 열린우리당 창당에 앞장섰다. 국회에 입성한 것은 2000년 16대 총선 때다. 앞서 서울 동작 갑과 경기 과천-의왕에서 고배를 마신 후 경기 군포에서 내리 3선에 성공했다. 비교적 순탄한 길을 걷던 그는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대구로 내려오면서 정치인생에 변곡점을 맞는다. 당시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종로를 버리고 부산으로 내려갈 때의 심정"이라고 했다.
2012년 총선과 2014년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했지만 대구민심은 쉽게 받아주지 않았다. 그러다 세 번째 도전인 2016년 20대 총선 때 대구 수성갑에서 김문수 후보를 꺾고 보수의 심장 TK에 민주당의 깃발을 꽂았다. 지역화합의 상징으로 거듭난 그는 지난해 5월14일 정세균 총리의 뒤를 이어 문재인정부의 마지막 총리로 임명됐다.
김 총리는 많은 학생운동 출신과 달리 온건하고 합리적인 성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지난해 10월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린 '노태우 전 대통령 국가장' 결정은 역사와의 화합을 의미하는 상징적 사례로 꼽힌다. 군사독재와 맞서던 노태우 정권 시절 '이선실 간첩단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그였기에 당시 국가장 결정은 대승적 결단으로 평가된다. 이에 대해 김 총리는 "(국가장 결정이) 화해와 통합의 역사로 가는 성찰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메시지를 내기도 했다. 그는 12일 총리직을 떠나면서도 "대화와 타협, 공존과 상생은 민주공화국의 기본 가치이자 대한민국에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2017년부터 2년 동안은 문재인정부 초대 행안부 장관으로도 맹활약했다. 2017년 포항지진, 2018년 밀양 노인병원 화재 등을 수습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특히 2017년 11월 포항지진 당시 전격적으로 '수능 연기'를 결정하면서 정치인다운 유연한 대처능력을 보여줬다는 호평을 받았다. 또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함께 '3자협의체'를 구성해 검경 수사권 조정에 합의했다. 2019년 강원에서 대형 산불이 나자 장관 임기 마지막 날을 산불 피해 현장에서 보냈다. 장관으로서 그의 업적은 눈부셨다. 1년10개월 동안 자치분권 종합계획 발표, 국세·지방세 구조 개편 검토, 중앙정부 기능 지방정부로 추가 이양,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제도 개편 제시 등 지방분권에도 기여했다.
코로나19 등으로 분주한 와중에도 대구경북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보이기도 했다. 재임 기간 여덟 차례 방문했고 엑스코선, 로봇 테스트 필드, 취수원 이전 등 굵직한 지역 현안을 직접 챙겼다. 그는 지난 3월 서대구역 개통식에 참석해 "고향에서 받아온 큰 사랑에 대해서 인사 말씀을 드리는 마지막 기회인 것 같다"며 "대구산업선, 대구경북내륙철도, 구미~경산 도시철도가 모두 어우러지면 이 남부권에서 우리 청년들의 미래가 열리는 업적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정계은퇴까지 선언한 김 총리는 대구 자택을 처분하고 경기 양평에 전원주택을 짓고 있다. 완공 전까지는 서울 마포구 전셋집에서 거주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품성과 정치력을 평가하는 주변에선 아쉬워하며 '쉼표'가 될 것을 바라고 있다.
구경모기자 chosim34@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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