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서 확진자 발생땐 못 치고 못 나오게 한다는 소문 돌아"
대구에서 인문학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최금희씨. 최금희씨 제공 |
"북한은 평등하지만 평등하지 않은 시스템입니다. 콜레라, 장티푸스, 파라티푸스 전염병을 경험해 봤지만 엘리트가 아닌 일반 주민은 다 죽었어요. 부모는 죽고 아이만 혼자 남는 게 1990년대 중반이었죠." 북한에서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16일 영남일보가 만난 탈북민들은 과거 사례를 들며 걱정과 함께 신랄한 증언을 쏟아냈다.
2001년 탈북해 대구에서 인문학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최금희(48)씨는 어머니가 의사였던 관계로 북한 의료체계를 비교적 상세하게 꿰뚫고 있었다. 그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전만 해도 의료시스템이 정상 가동됐고 무상치료도 받을 수 있었다"며 "그러나 이후 무상의료시스템은 붕괴됐다. 간부들은 특식을 먹으며 특실에서 제때 치료받았지만 주민은 시장에서 '야매'로 중국 약을 사 먹었다. 어린 눈으로도 세상이 절대 평등하지 않구나 생각했다"고 했다.
상급 병원이 아닌 읍·리 단위의 진료소 등에선 제대로 된 치료는커녕 기초적 처방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진술도 나왔다. 2016년 한국에 정착한 함경도 무산 출신 A(35)씨는 "간부나 뒷배경 있는 사람이나 치료를 받을까. 일반 백성은 꿈도 못 꾼다. 특히 지방 주민은 엄두도 못 낸다"며 "설탕 1㎏를 사서 병원에 가져 가면 간호사가 이를 풀어서 링겔 주사를 놓아준다"고 폭로했다.
북한이 코로나19 방역 시스템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갈렸다. 청진에서 의과대학을 나와 2012년 국내에 정착한 B(여·69)씨는 "북한의 통제는 상상 이상으로 심해서 물리적인 거리두기, 이동 금지 조치는 가능할지 모르겠다"며 "하지만 의료 방역은 안 될 것이다. 특히 북한은 평양 위주다. 바이러스는 발 빠르게 퍼지는데 지방까지 신경을 쏟을 여력이 될지 걱정"이라고 했다.
반면 최씨는 "북한이 예전에도 적은 병원 수로 2천300만 명을 콘트롤한 경험이 있는 만큼 무시는 못할 것"이라며 "집단행동이 강한 사회이고 더욱이 생명과 관련된 문제인 만큼 정부 말을 듣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도 없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도 "어떤 집단행동을 요구하려면 물질적 보상이 뒤따라야 하는데 과연 북한이 할 수 있는가가 딜레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는 현재 평양 위주로 확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상 전국이 봉쇄 조치에 들어갔다. 이로 인해 식량·물자난이 가중되면서 고난의 행군 시기보다도 경제적으로 더 힘든 상황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2011년 대구에 정착한 C(여·56)씨는 "북한에 두고 온 자녀 2명이 있다. 소식통을 통해 최근 북한 내부와 영상통화를 했는데 지방 쪽에는 아직 괜찮다고 한다.
그런데 어디까지 믿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또 "탈북민 사이에선 북한 내에서 확진자가 나오면 못을 치고 못 나오게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가뜩이나 먹을 것도 없을 텐데 걱정"이라고 했다. A씨는 "북한에서 발표한 수의 몇 배의 확진자가 더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외국 약품도 제때 들여오지 못하면 어떡하나"라며 한숨 쉬었다.
탈북민들은 하나같이 대구시민의 관심을 호소했다. 최씨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여부는 민감한 문제로 알고 있다"며 "많은 국민이 이역만리의 우크라이나에도 성금을 보냈다. 인류애적 관점에서 인도적 지원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했다. C씨는 "같이 살게 해달라. 제발 도와달라"고 울분을 토했다.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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