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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주시 순흥면에서 35년간 인삼 농사를 지어 온 김세진 씨가 여우로 인해 피해를 봤다면서 피해 현장을 설명하고 있다. 손병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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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정상적인 인삼밭이고 오른쪽은 김 씨의 인삼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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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밭 주변을 맴돌고 있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붉은 여우. 독자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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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시 순흥면 인근에는 여우가 자주 출몰해 주요 도로변에 '여우 로드킬 주의'라는 안내판이 걸려있다. 손병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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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씨가 오른손으로 여우로 인해 줄기가 내려 앉은 곳에서 캐낸 썩은 인삼을 왼손에는 정상적인 인삼을 들어보이고 있다. |
"도로 위 '로드킬' 주의 표지판에서만 보던 멸종 위기 여우를 처음 봤을 땐 신기했지만, 그것도 잠시 인삼밭을 망친 여우가 지금은 꼴도 보기 싫습니다."
경북 영주시 순흥면에서 35년간 인삼 농사를 지어 온 김세진(68)씨는 최근 들어 밭 주변에서 자주 출몰하는 여우들을 볼 때면 어떻게 하지 못해 화가 머리까지 치밀어 오른다고 한다. 7년간 애지중지 키웠던 인삼을 수확하는 기쁨을 만끽해야 하지만 밭 곳곳에 줄기가 내려앉으면서 작황이 형편없어졌기 때문이다.
김 씨는 인삼 줄기를 내려앉게 한 범인이 바로 이 여우 때문이라는 것. 이 여우는 소백산에 방사된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붉은 여우다.
지난해 12월 국립공원연구원 중부보전센터는 소백산에 붉은 여우 30여 마리를 방생했다. 이어 이 여우는 방생한 장소와 그리 멀지 않은 마을을 비롯, 지난 5월에는 400㎞나 떨어진 부산에서도 발견됐다.
김 씨 마을 인근 도로 곳곳엔 이 여우가 자주 출몰해 여우 모양과 함께 '로드킬 주의'라는 안내판도 있다. 이 지역을 지나는 운전자들은 혹시 모를 여우 출연에 대비해 속도를 줄여 운전하고 있다.
여우를 처음 본 김 씨 또한 마치 강아지처럼 귀여웠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7월 여우들이 새끼를 6~7마리를 낳으면서 비를 피해 김 씨의 인삼밭으로 거처를 옮겼다. 인삼밭은 가림막이 길게 처 있는 데다 인삼 줄기가 자라 있어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에 여우의 은신처로 안성맞춤이었다.
오히려 이 때문에 수확을 앞둔 김 씨의 인삼밭은 엉망이 됐다. 실제 지난 19일 오전 영남일보 기자가 직접 김 씨의 인삼밭을 찾았다. 초록으로 물들어야 할 인삼밭 곳곳의 인삼 줄기와 잎은 힘없이 쓰러져 있는 대부분이 면죽(줄기 즉 죽이 죽어있는)상태였다. 김 씨가 그 아래를 파서 꺼낸 인삼은 썩어 있었다.
김 씨에 따르면 올해 수확을 앞둔 6년근의 경우 그해 8~9월에 발육이 더욱 활발해진다. 그 시기에 앞서 줄기가 내려앉으면 발육이 멈추고 인삼은 섞는다고 한다. 또 면죽 상태는 상품성이 매우 떨어지고, 홍삼으로 만들어도 색이 하얗다.
피해 사실을 안 김 씨는 지난 7월 여우를 방사한 국립공원공단 국립공원연구원 중부보전센터(이하 센터)에 이를 알렸다. 이에 센터 관계자는 여우가 새끼를 낳아 근처에서 서식하는 것까지 확인했다.
이어 센터는 더는 여우가 인삼밭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전기 울타리를 설치했다. 하지만, 영리한 여우는 울타리 아래에 굴을 파 계속해서 김 씨 밭에 들어왔고, 피해는 커져만 갔다. 보다 못한 김 씨는 센터에 여우 포획을 의뢰했다. 함부로 여우를 포획했다간 법적 처벌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을 피하는 습성에 행동도 재빨라 2달가량 포획을 하지 못하면서 그사이 피해는 눈덩이만큼 커졌고, 수확을 앞둔 현재까지도 포획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김 씨는 센터 측에 적당한 보상을 요구했다. 센터 측은 김 씨에게 "야간 CCTV 확인 결과, 여우뿐만 아니라 다른 야생동물들도 근처에서 목격됐기 때문에 피해가 오직 여우 때문이라고 단정을 지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처음 있는 상황이라 보상 근거도 없다"고 밝혔다고 한다.
김 씨는 "인삼 농사를 30년 이상 지었지만, 올해처럼 이렇게 큰 피해는 없었다"며 "종종 고라니나 꿩 등이 왔다 가면서 작은 피해를 남기긴 했지만, 이처럼 대규모 피해는 처음이다. 분명 사람과 비 등을 피해 여우가 터를 잡고 왔다 갔다 하면서 발생한 피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피해를 본 것에 대해 보상을 해 줄처럼 말하더니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나서야 관련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보상이 어렵다는 등 말을 손바닥 뒤집듯이 바꿨다"며 "당시 여우로 인한 피해를 인정해 놓고도 다른 야생동물들도 주변에서 목격됐다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센터 관계자는 "피해 사실이 인정되지만, 그 근거가 없어 영주시와 함께 최대한의 보상을 협의 중"이라며 "인삼 수확이 완료되면 손해사정사 등에 의뢰해 정확한 피해 규모를 파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글·사진=손병현기자 why@yeongnam.com

손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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