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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과 한국문학] 그 많던 엿은 누가 다 먹었을까

2022-11-24

시험합격 기원하며 먹는 '엿'
조선시대부터 유래된 풍속
쌀을 재료로 한 귀했던 음식
풍요의 시대 일상에서 밀려
관련된 표현도 생명력 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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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웅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지난주에는 수능 시험이 있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경찰의 도움으로 지각을 겨우 면하고 시험장에 도착한 수험생, 갑작스러운 사고로 병상에서 시험을 치른 수험생의 이야기 등이 뉴스를 장식했다. 방송이나 신문 지상에서는 수능처럼 해마다 반복되는 행사를 상징하는 전형적인 이미지를 제공하곤 한다. 설날에는 산이나 해변에서 해돋이를 기다리는 인파를, 단풍철에는 등산객들로 가득 찬 등산로를 비추는 식이다. 내게 가장 선명한 입시철(아직 수능이 도입되기 이전이다)의 이미지는 시험장 정문에 엿을 붙이고 시험이 끝나는 시간까지 두 손을 모아 기도하던 어머니들이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과거에 엿 붙이기는 시험 다음 날에 여러 직원들이 동원되어 그것을 떼어내는 작업을 해야 할 정도로 대규모로 이루어졌다. 수험생들이 엿을 먹는 풍속은 조선시대 과거 시험장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뿌리가 깊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풍속의 기원은 확실치 않다. 그저 '시험에 붙어'야 하는 학생들이 끈끈하게 잘 붙는 성질이 있는 엿을 먹고 합격할 수 있다는 속설이 널리 퍼져 있을 뿐이다. 온라인에서는 합격엿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상품들이 검색되지만 '잘 풀리는' 휴지와 '잘 찍히는' 도끼 등과 힘겹게 경쟁하고 있다. 합격을 기원하는 대표상품으로서 엿이 누리던 독보적인 위상을 잃은 지 오래다.

오늘날처럼 분리수거가 정착되기 이전에는 자원 재활용의 일등 공신은 엿장수였다. 엿장수 아저씨는 해가 뉘엿하게 질 무렵에 골목길에 홀연히 나타나 집안을 돌아다니며 빈 병이나 폐지를 수집한다. 내 기억으로 가장 가격을 후하게 쳐주던 빈 병은 대용량의 100% 천연 오렌지 주스 병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우유가 담겨 있던 유리병이다. 엿장수의 요란한 가위 소리를 듣고 마당 한구석에 쌓여 있던 병을 몇 병 가지고 나가면 엿을 바꾸어 먹을 수 있었다. 필자가 살던 동네만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엿장수들은 생강엿과 호박엿을 함께 리어카에 싣고 다녔다. 취향에 따라 대패로 밀어서 나무젓가락에 꽂아 주는 생강엿이나 가위로 잘라 주는 호박엿을 선택했다. 정말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꿀맛이었다. 이제 골목을 누비던 엿장수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물론 가끔 시골 장터나 민속촌 같은 장소에서 가락엿을 파는 엿장수와 조우할 기회가 있다. 하지만 폐품이 아니라 현찰을 받으며 흰색 가락엿을 파는 그들은 내가 기억하는 엿장수가 아니다.

전통적인 한국 사회에서 단것은 사치재였다. 더군다나 목숨 같은 쌀을 재료로 만들어야 하는 엿은 귀한 음식으로 대접을 받았다. 우리는 어디에나 단것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고 사람들은 예전처럼 엿을 많이 먹지 않는다. 엿이 우리 일상에서 밀려나면서 엿과 관련된 어휘나 표현들도 동시에 사라지고 있다. 골목에서 엿장수가 사라지자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표현이 생명을 잃어간다. 유리병이야 몇 병이 되었든 엿장수 처분에 따라 양은 정해지는 법이라는 것을 몸소 겪어 봐야 '엿장수 마음대로네'라고 투덜거릴 수 있지 않겠는가? 갑자기 물건이 없어져서 행방을 물을 때에 '엿 바꾸어 먹었지'라고 눙치며 답하는 여유도 엿과 함께 사라진 듯하다. 그것이 왜 욕으로 쓰이는지 의견이 분분한 '엿을 먹이다'라는 표현이 '빅엿을 먹이다'라고 현대적으로 변용되어 유행한 적이 있다. 언어로서 '엿'의 강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사건이라고 이해한다면 너무 자의적인 해석일까?김진웅 경북대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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