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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의 문학 향기] 나는 어떤 인간형일까

2022-11-25

[정만진의 문학 향기] 나는 어떤 인간형일까

2007년 11월25일 우리나라 소설가 하근찬이 세상을 떠났다. 하근찬 소설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아마도 '수난 이대'가 아닌가 여겨진다. '수난 이대'는 1957년 신춘문예 당선으로 그를 문단에 올려준 작품이다.

등단작을 대표작으로 평가하는 것은 작가에 대한 예의가 못 된다. 하근찬의 소설 중 '왕릉과 주둔군'은 풍자적 면모와 세계문화사적 인식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히 일독을 권할 만한 수작으로 판단된다.

주인공 박 첨지는 조상이 임금이었다는 사실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순찰하는 등 왕릉 관리에 정성을 쏟는다. 그토록 박 첨지가 삶의 보람으로 여기고 있는 왕릉에 몰락의 잔혹사가 찾아온다.

외국 군대가 주둔하면서 왕릉 일대가 일찍이 본 적 없는 야만의 장소로 돌변한다. 외국 군인들은 왕릉에 방뇨를 하고, 그곳에서 한국 여성들과 성관계를 한다.

급기야는 박 첨지의 딸 금례가 양색시들과 친하게 지내다가 가출하고 만다. 원인에는 결과가 따르는 것이 세상만사의 이치이므로 소설의 서사가 거기에서 종결될 리 없다.

금례가 혼혈아를 낳아 귀가한다. 노랑머리 손자가 왕릉 꼭대기에 올라가 활개를 치며 논다. 묘소, 그것도 왕릉 정상을 짓밟는 짓은 박 첨지가 볼 때 인간 최악의 반인륜적 만행이다. 박 첨지는 그 상황 앞에서 혼절한다.

'왕릉과 주둔군'은 고려가요 '쌍화점'을 떠올리게 한다. 금례가 주둔군과 '야합'해 아이를 낳는 삶은 '쌍화점'의 여인이 "만둣집에 갔더니 외국인이 내 손목을 잡더라" 식으로 술회하는 것과 대동소이하다.

사람들은 흔히 '쌍화점' 여인이나 '왕릉과 주둔군'의 박 첨지 또는 금례를 비웃으면서, 자신은 그들과 다르다고 합리화한다. 문학적으로 볼 때 '대유'를 체화하지 못한 탓이다.

사대주의가 바로 '쌍화점'의 만두이고, '왕릉과 주둔군'의 노랑머리 아이이다. 우리 속담 식으로 말하면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이고, 네덜란드 식으로는 구멍 난 못 둑을 팔뚝으로 막는 소년 사례가 된다.

나는 딸의 인생보다 왕릉을 지켜낼 손자 탄생에 더 관심이 많은 박 첨지일까? 그 반대인 금례일까? 그도 아니면 '쌍화점' 여인일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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