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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 (소설가) |
2021년 12월23일 미국 작가 조앤 디디온이 운명했다. 타계 당시 87세였으니 천수를 누렸다고 할 만한 나이였다. 하지만 그녀의 마지막 노년은 마음의 평온을 누리기에 너무나 부적합한 시간이었다.
디디온은 젊은 나이에 사라져간 딸 퀸타나의 죽음을 다룬 회고록 '푸른 밤'을 썼다. 독자는 책 서두에서 'Blue Nights'의 의미를 알게 된다. 하지 전후 몇 주간은 황혼 어스름이 길어지고 푸르른 기운도 한층 짙어가는 시기이다.
이 무렵의 저물녘은 청색빛이 한 시간가량 이어지다가 이윽고 푸른 밤이 몰려온다. 누군가는 이 시간을 하루의 끝이 오지 않을 듯한 매혹으로 느끼고, 다른 누군가는 빛의 소멸 반대편에 놓인 찬란한 은유적 경고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디디온은 자신의 삶을 관통해 온 푸른 밤이 딸의 죽음과 함께 끝났다고 느꼈던 듯하다. 그녀는 32세이던 1966년 퀸타나를 입양해 애지중지 키웠다. 하지만 사소하게 여겼던 병이 재앙으로 커지면서 퀸타나는 서른아홉에 모두의 곁을 떠나가고 말았다.
"무차별적으로 떨어지는 낙엽과 차츰 어두워지는 날들로 가득 찬 뉴욕의 푸른 밤들은 오로지 죽음을 암시한다. 내게 자식이 있었던 것도 하나의 계절이었다. 그 계절은 지나가 버렸다. 그 아이가 8트랙 테이프를 따라 나지막이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계절을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디디온의 회고는 캐테 콜비츠를 생각나게 한다. 1867년 태어나 1945년 타계한 콜비츠는 동베를린 노이에바헤(국립 전몰자 추모관) 중앙 홀에 세워진 조형 'Pieta'의 작가이다. '신이여, 불쌍히 여기소서!'를 뜻하는 Pieta를 제목으로 한 'Pieta'는 전사한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준다.
콜비츠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둘째 아들 페테가 전사했다는 통지를 받았다. 이날 콜비츠는 일기에 "나의 노년이 시작되었다"라고 썼다. 콜비츠는 1942년 제2차 세계대전 때에도 차남과 이름까지 같은 손자 페테를 또 잃었다.
노년은 언제부터인가? 생물학적으로는 대체로 65세 이후 젊음을 잃어가는 때부터 시작된다. 미국 심리학자 버니스 뉴가튼은 성공적 노년을 구가하는 '신노인'의 조건으로 '건강, 무장애, 존엄성 유지' 세 가지를 들었다. 정신적 상실감 없이, 늘 푸른 의욕에 넘치는 지성적 노년이라야 인생 대단원을 행복으로 장식하고 있다 할 것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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