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의 성공한 제도나 정책
껍데기만 베끼면 성과 없어
우리식으로 소화해야 완성
방위산업이나 K-컬처처럼
K-제도나 정책 만들어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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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규 전 대구시 정무부시장 |
몽매한 상태로 태어난 아기는 배움을 통해 사람으로 완성되어 간다. 앞선 시대를 살아간 선현들로부터 또는 지금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앞선 생각과 행동을 보고 이를 모방하고 개량하면서 성장해 가는 것이다. 사회나 국가도 마찬가지다. 첫 단계의 미숙함은 다른 나라의 사례나 경험을 벤치마킹하거나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극복해 간다.
이러한 배움에는 두 종류가 있다. 기술과 제도가 그것이다. 그중 기술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까닭에 배우고 따라 하기가 쉽다.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뒤처져 있었던 우리가 빠른 기간 안에 선진국을 따라잡고 최고 수준의 산업국가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기술 자체가 국경이나 문화에 관계 없이 범용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술을 배우고 우리 것으로 만드는 데에도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사회문화나 기술 수준의 바탕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크게 보면 이 분야는 자금을 투입하고 선진기술자를 모셔와 배우면 성취가 가능한 영역이다.
그러나 사회제도나 문화는 기술도입과는 그 성질이 다르다. 오랜 세월을 통해 다져온 고유한 문화적 전통이나 사회적 기반, 나아가서는 국민성을 감안하지 않고 외국에서 성공한 제도의 껍데기만 베껴서는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법령상의 조문이나 통계상의 수치는 같더라도 그 속에 포함된 함의는 전혀 다를 수 있다. 중국 속담에 강남의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것과 같이 같은 씨앗을 뿌려도 토양이나 환경이 달라지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우리가 가진 바탕 자체가 워낙 미약했기에 생소하고 이질적인 제도들을 시행했어도 그런대로 효과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에게 적합한 시스템들이 어느 정도 정착된 지금의 상황에서는 외국의 제도를 날것으로 도입해서는 뿌리를 내리기 어렵다.
미국식 경쟁체제, 북유럽의 복지제도, 독일식 사민주의에는 배울 점이 많다. 그러나 그들 제도가 만들어지고 성공한 데에는 모두 나름의 역사적 배경과 처지가 있다. 미국식 경쟁체제는 개인의 능력과 책임을 강조하는 면에서 우리와 비슷하지만 그들에 비해 우리는 공동체 정신과 평등의식이 강하다. 게르만의 정신세계와 세계관 또한 우리와 같을 수 없다. 인구 500만 내외의 북유럽과는 달리 5천만을 먹여 살려야 하는 경제 운용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노사문제, 복지제도, 상생협력 등 이들이 성공한 제도가 우리식으로 소화되어 한국적 정책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한때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부정적 용어 때문에 '한국적'이라는 용어가 친근하게 와 닿지 않지만 최근 방위산업이나 문화예술이 K로 시작되는 한 장르를 만든 것과 같이 정책이나 사회제도에서도 우리에게 적합한 K-제도나 정책이 만들어져야 한다.
지방도 마찬가지이다. 중앙집권적 역사가 강하고 동질성이 강하기 때문에 오히려 지방의 특수성에 바탕을 둔 시책이 되어야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산업정책이나 사회정책을 막론하고 다른 지자체의 정책을 배우되 우리 지역에 특화된 알파를 더하지 못하면 그렇지 않아도 수도권에 비해 열악한 상황에서 뒤따라가기에도 급급할 것이다. 역사의 성공사례나 외국에서 성공한 경험을 현실에 적용하는 데에 책에 인용된 내용을 숙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지만 태양 아래에는 동일한 것 또한 없기 때문이다. 박봉규 전 대구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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