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가족행사로 바쁜
북미인들의 신년맞이 모습
공동체 약화된 한국과 대비
가족과 대면하는 설날 맞아
소통·공감·감사의 시간 갖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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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
페이스북에서 4년 전 요맘때, 그러니까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한, 코로나바이러스라는 것이 생기기 이전 시대의 내 일상을 보았다. 3주째 집에 손님을 초대했고 그 주는 주제를 음력 설, 즉 루나 뉴 이어스 파티로 했었다. 핫 애플 사이다를 만들고 치킨 케밥과 아스파라거스 등 10인분의 요리를 직접 했고, 페르시안 라이스 푸딩 등 4가지 홈 메이드 디저트는 손님들이 가져왔다. 졸업한 학생들과 동료들 등 이란, 중국, 캐나다, 미국 출신의 다양한 배경의 손님들. 그날 밤 새스커툰의 날씨는 영하 42℃, 체감 영하 53℃.
한국에선 흔히 아시아는 가족 중심이고 북미는 개인주의라고 생각하지만, 가까이에서 본 그들의 모습과 요즘 한국 가족들의 모습, 특히 명절의 풍경을 보면 과연 그런지 고개를 갸우뚱할 때가 많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크리스마스 무렵부터 다음 해 초로 이어지는 연말 휴가 기간은 (대)가족 모임을 위해 떠나는 거대한 여행 행렬로 곳곳이 붐빈다. 토론토에서 학위 공부할 때는 주위에 나처럼 세계 곳곳의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았고, 새스커툰에서는 (대)가족들이 고향으로 찾아오는 것도 많이 보았다. 어느 해 1월 학기 초 동료 A가 말하길, 하루에 식기세척기를 세 번씩 돌리는 가족 모임을 세 번쯤 하고 나니 휴가가 다 갔다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거나 못한 사람이 있으면 주변에서 초대하기도 한다. 어차피 음식 차리니까 갈 데 없으면 우리 집에 와 하면서. 몇 년 전 캐나다 동부의 대학으로 옮겨간 옛 동료는 인근의 아주 작은 마을에 사는데 나이 많은 이웃 한 분이 동네 사람 누구든 오고 싶은 사람은 참석하라는 크리스마스 디너 초대장을 보내왔다고 했다.
해외 한인 단체들은 설 무렵이면 윷놀이 등 한국 전통문화를 소개하지만, 정작 요즘 한국에서 설에 윷놀이하는 가족들은 소수인 것 같고, 명절 연휴 여행은 나만의 혹은 직계 핵가족만의 시간을 찾아 떠나는 가족들도 많은 듯하다. 아이들 학원 일정이 어떤 가족 행사보다 우선 순위가 된 듯한 요즘 한국 도시들에서, 가족은 정서적 공동체라기보다 경제공동체가 된 지 오래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지나친 걸까?
지난 연말, 몇 년째 줌으로 만나고 있는 미국의 지인들과 새해 안부를 주고받았다. 한국에서 맞는 연말은 휴가가 아니니 나는 서울에서 있었던 토론토 대학 동문회에서 노래 부른 영상을 보냈다. B는 동생네 가족과 부모님 댁에 모여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직접 떠서 선물한 털실 모자와 털실 목도리를 걸친 조카들과 딸과 함께 찍은 사진을, C는 조카와 아들들과 시누이 목장에 여행 가서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D는 작은 돌 위에 요정 인형을 색칠하여 아파트 이웃들 현관 앞에 몰래 하나씩 놓아두었다며 아들과 그의 파트너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어제 퀘벡주의 대학에 근무하는 친구와 업무 e메일 끝에 그녀가 말했다.
"연말에 홍콩 집에 갔다 왔는데 가족을 다시 만나는 건 역시 너무 좋아."
가족을 향해서 떠나는 사람들, 그리고 가족에게서 벗어나 떠나는 사람들.
2023년 한국의 설은 한국의 가족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이번 설에는 가족들과 눈도 맞추고 요즘 가장 기뻤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물어도 보면 어떨까? 명절에도 쉬지 못하고 다른 가족들의 설을 지켜주시는 분들께 감사하며 우리 모두 해피 루나 뉴이어.
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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