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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단순성에 대하여

2023-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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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형〈음악학 박사〉

지난주 미국 현대음악 작곡가인 필립 글래스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트루먼 쇼' '드라큘라'와 같은 영화음악으로도 유명한 그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스토커'의 OST 작곡가이기도 하다. 짧은 모티브나 우아한 멜로디가 반복과 회전, 변형과 재배치되면서 중단 없이 흐르는 글래스의 음악은 자연의 순환 리듬을 환기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를 미니멀리스트 작곡가라고 부르지만 정작 자신은 '미니멀리즘'이란 용어를 선호하지 않는다. 자신의 음악이 단순함에서 비롯되는 아름다움이 아니라는 뜻일까.

하나의 화두만을 가지고 깊은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선승처럼 글래스의 음악도 미니멀을 표방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우주 전체로 이어지는 '큰 하나'와 같은 움직임이 아닐까. 화려한 테크닉과 두터운 화성을 걷어낸 그의 음악은 때론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같은 음들의 지루한 반복이 새로운 세상의 문으로 들어가듯 무한한 상상력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이는 외부로 향한 우리의 시선을 돌려 내면 깊숙이 침잠하면서 '참나'를 만나기 전 수많은 '나'와 조우하는 명상의 느낌이다. '미니멀'한 글래스의 음악은 음악으로 음악을 넘어서는 순간이랄까.

몇 년 전 영국의 한 현대음악포럼에 참가했을 때의 일이다. 발표자는 그의 음악과 미국화가 잭슨 폴록의 그림을 비교하며 '복잡성'을 이야기했다. 커다란 캔버스에 페인트를 이리저리 뿌린 폴록의 그림은 한눈에도 복잡해 보였다. 발표자가 설명하는 동안 나는 그 '복잡한' 그림 속에서 오히려 '단순함'을 보기 시작했다. 복잡한 패턴과 기술을 걷어내니 캔버스에는 흰색과 검은색이 대부분이며 몇 개의 푸른 점들로 보이는 게 전부였다. 포럼의 발표자가 설명한 복잡한 폴록의 그림이 나에겐 그 어떤 그림보다 단순하게 보인 셈이다. 그러나 그 단순함이란 실상 무한한 복잡성을 내장하고 있다. 문제는 단순함 속에서 복잡성을, 복잡성 속에 단순함을 발견하는 눈과 마음이다.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이 지났다. 차례는 간소해졌지만 그 마음은 무엇보다 진지하고 깊게 할 일이다. 비록 정화수 한 그릇을 떠 놓고 올리는 제사라 하더라도 그것은 하늘과 땅, 신과 인간의 지극함이 담긴 '니르바나(Nirvana)'가 된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동시에,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복잡한 세계가 있다면 정화수 같은 게 아닐까. 나를 온전히 정화하는 물은, 마음은 우리 고유 명절의 참된 정신이다. 새해를 맞아 여러분의 건강과 평화를 기원한다.
임진형〈음악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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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형 음악학 박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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