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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호 (구미상공회의소 회장) |
손자병법에 '이환위리(以患爲利)'라는 사자성어가 나온다. 고난을 극복해 오히려 기회로 삼는다는 뜻이다.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불황일수록 기회는 많다고 했다. 그뿐인가. 한때 철강 중심도시였던 미국 피츠버그는 철강산업 불경기가 오히려 전화위복이 돼 녹색도시로 거듭났다.
전국 수출의 11%를 차지하며 국내 전자산업을 이끌 만큼 월드클래스였던 경북 구미는 지금 어떠한가. 10여 년 전만 해도 30대 초반이던 평균연령이 지금은 40대로 상승하는 등 청년 유출이 심각한 상태다. 한때 잘나갔다고 해서 영원한 것은 없다. 노력과 변화 없이는 위상을 지켜낼 수 없다. 물론 구미만의 잘못은 아니다. 변화하는 글로벌 환경과 강화된 규제 속에 기업은 하나둘 해외로 눈을 돌렸으며, 수도권 집중은 더욱 심화됐다. 구미경제엔 치명타가 됐다.
사람들은 구미가 단순 생산기지로 남을 것인지, 제조·연구·여가·교육이 뒷받침된 명품 정주도시로 나아가야 할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구미가 영원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후자에 답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이루는 것은 간단치 않아 보인다. △교육과 정주 △기업투자와 KTX 등 교통인프라 △물류와 공항 △문화와 교육 등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비로소 한 발짝 다가설 수 있다.
다행히 최근 변화의 바람이 서서히 일기 시작했다. 구미국가산업단지 5공단은 수년 동안 분양이 매우 더뎠으나 대구경북신공항 건설 호재 등으로 최근 1단계 분양이 완료됐다. 수출 실적도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 서둘러 2단계인 해평지역 착공을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강하게 나오고 있다.
올해로 54년째를 맞은 구미국가산단은 위기에 강하다. 구미에 수십 년 터를 두고 있는 기업은 달라도 확실히 달랐다. 모바일·디스플레이·첨단소재는 물론 반도체·방산과 관련된 대·중견·중소기업이 밀집하기 시작했다. 특히 반도체와 방산을 중심으로 조(兆) 단위 대규모 투자가 이어지면서 대한민국 핵심 제조·R&D 기지로 비상하고 있다.
지난 1일 윤석열 대통령이 구미를 방문해 인재양성전략회의는 물론 SK실트론 투자협약식에도 참석한 것을 보면 한층 기대감이 생긴다. 올해 발표될 두 마리 토끼(반도체특화단지·방산혁신클러스터)를 두고 구미상공회의소와 구미시는 구미가 선정돼야 할 당위성을 강하게 어필했고, 중앙에서도 분명 타 지역과 차별화한 구미의 경쟁력을 알고 있을 것이다. 기본에 충실하고 고유의 맛을 내는 명품 음식을 식탁에 가지런하고 정갈하게 차려내기만 하면 평가단에서 구미를 놓칠 리 없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경북도는 '지방시대 정책국'을 출범하며 지역에서 필요한 인재는 지역에서 길러낼 수 있도록 '경북 주도 인력양성 협력체계 구축' 방안을 발표했다. 파격적인 지원으로 교육 대전환을 그려나가고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수도권 병(病)'을 고치고 국가균형발전을 도모하겠다는 강한 의지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몸(중앙)과 팔다리(지방)가 각자도생할 수 없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이라는 큰 그림 속에 수도권과 지방 각자의 고유 경쟁력을 키우고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모든 국민이 일터와 삶에 만족하고 자부심을 가지며 살아갈 때 대한민국은 더 크게 발전할 수 있다. 수도권은 수도권대로 피로도가 쌓여 병이 들고, 지방은 청년이 떠나가며 구인난에 시달리는 것을 종식해야 한다. 올해 두 마리 토끼(반도체·방산)와 지역 주도 인재양성을 통해 구미를 비롯한 경북이 웃고 대한민국도 웃을 수 있는 밝은 내일을 기대해 본다.
윤재호 (구미상공회의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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