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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형〈음악학 박사〉 |
봄학기 강의를 시작하기 전 많이 읽고 써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이번에는 박수밀 교수의 '연암 산문의 멋'을 손에 집었다. 연암 박지원은 조선 후기 대표적인 지식인이자 실학사상가이며 작가이다. 그의 이념은 유교(적 현실주의)에 기반해 있지만, 불교와 도교에도 깊은 관심을 내보인다. 영국의 셰익스피어, 독일의 괴테에 비견할 만한 대문호라고 해서 그의 글과 생각이 궁금했다. 이 책을 열심히 읽고 있을 때 한 노인의 기부 소식을 접했다.
기부자는 작은 방 한 칸에 월세로 사는 89세의 홀몸노인 최씨다. 그는 지난 15년간 파지를 주워 모은 돈이자 전 재산인 4천만원을 대한노인회 의정부시지회에 기부했다. 이 소식을 들으며 필자는 크게 놀랐다. 전기요금과 건강보험료 등 생활비의 많은 부분이 인상되어 저마다 지출을 줄이려고 하는 이 시점에 오히려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할 입장인 그가 그렇게 큰돈을 '턱'하니 기부하다니! 그 돈으로 '좀 더 크고 따뜻한 집으로 이사를 하거나', 아니면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면서 힐링이라도 하면 좋으실 텐데' 하는 생각을 해 보면서 못내 아쉬웠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이기적인 부분과 이타적인 부분이 있다. 필자는 최씨 노인에 견주어 보면 이기적인 사람에 속한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나' 하는 문제에 직면한다. 최씨 노인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나 보다. 그야말로 기부라는 행위는 뺏기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이며, 그런 만큼 금전적인 가치를 내면화해 정신적인 만족감이나 행복감을 얻게 되는 게 아닐까.
한편 연암은 유금의 시집 '낭환집'에 서문을 적는다. 낭환은 말똥구리의 말똥이라는 뜻인데 유금은 이러한 말똥을 여의주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말똥구리는 자신의 말똥을 아껴 용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용 역시 자신에게 여의주가 있다 해서 저 말똥구리의 말똥을 비웃지 않는다."
냄새가 고약하고 생긴 것도 더러워 누구나 피하는 말똥. 그러나 말똥구리에게 그것은 식량이 되기도 하고, 새끼를 낳는 산란처가 되기도 한다. 말똥같이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파지를 주워 노인들에게 좀 더 따뜻한 쉼터를 제공하는 최씨 노인은 지극히 미미한 파지에도 지극한 마음의 경지를 품고 있어 말똥이 곧 구슬이고 여의주임을 우리에게 웅변으로 보여 준다. 말똥 냄새는 말한다. 행복은 크기가 아니고 빈도라고. 진주조개를 줍듯 파지를 주우며 이제부터라도 모든 사소한 것에 감사하며 마음을 낼 일이다. 그렇게 살다 보면 거기, 행복이 있다.
임진형〈음악학 박사〉

임진형 음악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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