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경제과학硏 설립 방향
하드웨어 설치 사고 벗어나
광역네트워크 구축 바람직
돈 먹는 하마가 안 되도록
재정충당 방식 등 고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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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업 (객원논설위원) |
2023년도 국회 예산 심사에서 대선 공약이었던 '국립경제과학연구원' 설립을 위한 연구용역 예산 국비 2억원이 어렵사리 통과됐다. 인수위 지역균형발전특위 위원이었던 국민의힘 홍석준(대구 달서구갑) 의원은 그간 주무부처인 과기부와 관련 기관 전문가와의 논의를 통해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을 중심으로 연구원의 기능과 규모, 역할, 입지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연구를 추진하기로 방침을 세운 바 있다. 그동안 주무부처, 분야 별로 분절되어 있는 정부 출연연 분원과 지역 산업별 연구기관, 대학 등 연구기관들의 구조적인 한계로 융·복합을 통한 신산업 발굴과 인재 양성이 지체된 실정에서 이들 기관 간 수평적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를 통합·조정할 수 있는 기관을 설립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이는 듯하다.
필자는 대선 직후부터 설립에 따른 이러한 필수 논의과제를 제시하고, 전통 제조업 강국 독일의 정부 주도 플랫폼으로 제조혁신을 선도하는 'Industry 4.0'을 문제해결을 위한 참고 모델로 제안했다. 이에 더하여 우리의 현실에 합당하고, 2천500억원에 가까운 예산이 들어가는 기관의 설립목적에 충실하며,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몇 가지 제안을 덧붙인다.
첫째, 산업동향 분석과 산업정책 수립을 골자로 하는 경제 분야 기능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전국 지자체별 테크노파크나 관련 기관들이 30년 이상 수행해 온 이 기능은 오히려 신규 설립보다 기존 기능강화가 더 효율적일 수 있다. 중소기업 현장수요를 반영한다면 오히려 제조현장의 문제인 신규설비 도입의 경제성 평가나 일선 공장의 공정혁신의 경제성 분석 같은 기업에게 보다 실제적인 기능을 부여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경우 기관의 명칭을 조정해야 할 것이다.
둘째, 설립 이후 재정충당 방식에 대해 설립 단계에서부터 신중한 검토와 설계를 해야 한다. 연구과제중심제도(PBS)는 1995년 독일의 프라운호퍼 방식을 모방하여 출연연의 인력과 인건비 문제를 해결하고 선의의 경쟁을 통해 연구역량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도입되었다. 문제는 우리 현실에 대한 면밀한 성찰 없이 도입하여 단기 성과주의에 치우친 PBS 제도로 인해 출연연의 연구원들은 장롱 특허를 남발하고 연구에 몰두하기보다 외부과제를 수주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부작용이 차고 넘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미 PBS에 길든 정부 관료들의 사고방식을 바꾸기 어렵고 한번 잘못 시행된 정책은 되돌리기도 힘들다.
셋째, 처음부터 하드웨어를 설치한다는 사고에서 벗어나 광역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전국에 산재한 지역 산업 관련 기관을 통합·연계하는 연구개발 거버넌스를 구현한다는 목표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연구원 규모는 최소화하는 대신 통합·연계 방식으로 기존 지역 연구원과 대학들의 역량을 일단 국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방향을 말한다. 신설 연구원의 규모를 기대 반 욕심 반으로 한껏 키우다 보면 현행 제도하에서는 이를 유지하기 위해 분야가 중복되는 기존 기관과 사업유치 경쟁은 피할 수 없고, 결국 또 하나의 돈 먹는 하마가 될 우려도 있다.
돌궐의 명장 톤유쿠크는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내는 자 흥할 것이다"라 말한다. 성은 곧 고립과 정체를, 길은 소통을 의미한다. 그래서 먼저 제시한 독일의 Industry 4.0 모델이 가치 있는 것이다. 정부 출연연들의 연구 생산성이 현저히 저하된 현실에서 연결과 공유에 의한 시너지를 추구하는 4차 산업혁명 환경에 걸맞은 국가주도의 새로운 연구조직 모델이 나올 때도 됐다. 비대한 몸집을 유지하기보다는 성과만을 추구하는 스몰자이언트가 필요하다.
권업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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