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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오의 한국현재사] 영화 '유령'과 흑색공포단

2023-03-03

흑색공포단 모티브로 제작

그들의 희생과 투쟁을

영화적 비주얼로 보여줘

꿈꾸는 역사를 만든 시대극

앞으로 이런 시도 많았으면

[주진오의 한국현재사] 영화 유령과 흑색공포단
주진오 (상명대 역사콘텐츠 학과 명예교수)

최근 흑색공포단을 모티브로 만들었다는 영화 '유령'을 보았어요. 영화에서 유령이란 흑색단에서 보낸 스파이인데, 흑색단이 상하이에서 육삼정 의거를 일으켜 전원 살해되었다는 대사가 나옵니다. 아마 흑색공포단과 육삼정 의거에 대해 처음 들어보신 분도 있을 것 같아요.

90년 전인 1933년 3월7일 저녁, 상하이의 한 음식점에 조선인 청년 세 사람이 모였습니다. 그들은 아리요시 아키라(有吉明) 일본공사가 근처의 육삼정이라는 요정에서 연회를 연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살해하려 했어요. 그들은 임정의 김구 주석으로부터 한 해 전 윤봉길 의사가 사용했던 것과 같은 도시락 폭탄과 권총을 받아 거사에 나선 것이었습니다.

그 청년들은 흑색공포단 소속의 백정기, 원심창, 이강훈이었는데요. 이 단체는 1931년 11월 상하이에서 조직되었습니다. 조직의 이름에 흑색이 들어간다는 것은 그들이 아나키스트였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들의 영문명은 Black Terrorist Party로 테러리스트를 공포단으로 번역한 것인데요. 이 단체는 조선인만이 아니라 중국인, 일본인도 가담한 국제적 조직이었습니다.

아나키스트들은 자본주의 체제를 부정하지만, 아울러 국가와 권력을 반대하고 자유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산주의와도 대립하지요. 이러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그들이 생각한 방법은 체제의 중심기관을 폭파하고 요인을 테러하는 것이었습니다. 밀양 사람 김원봉이 조직했던 의열단이 시도한 투쟁이 그런 것들이었지요. 문경 출신 박열도 아나키스트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흑색공포단원들이 모든 정보를 공유했던 일본인 기자가 있었는데, 사실 그는 밀정이었어요. 이 사건은 일본 공사를 살해하려는 위협이 있다고 생각해서 일본 경찰이 쳐 놓은 역공작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사전에 대기하고 있었던 일본 경찰에 의해 거사 전에 체포되고 말았어요. 이 사건을 '육삼정 의거'라고 합니다.

체포된 그들은 심문과정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인간으로서 생각할 때 아리요시 그 사람에게는 하등의 감정이 없다. 사람으로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큰 죄악이며,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는 일본제국주의의 대표자이다. 아리요시 공사를 암살하는 것은 필경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는 행위이다."

세 의사는 일본 나가사키로 압송되어 재판을 받고 백정기와 원심창은 무기징역을, 이강훈은 15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백정기 의사는 다음 해 38세의 나이로 옥사하고 말았지요. 광복 후 국내로 유해를 옮겨 윤봉길, 이봉창 의사와 함께 효창공원에 모신 '삼의사' 중 한 분입니다. 사진 속의 강렬했던 눈빛이 아주 인상적인 분이지요. 다른 두 분은 광복이 되어서야 출옥했습니다.

영화를 만든 감독은 대의를 이루기 위해 목숨마저 버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독립운동가를 생각했고, 그 힌트와 뿌리로 흑색공포단이 눈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찬란했던 그들의 희생과 투쟁을 영화적 비주얼로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이지요. 아울러 마침내 실패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세대가 교체되고 계속 대를 이어 끝까지 싸우고 있다는 이야기를 말이지요.

그러니까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사극이 아니라, 감독이 역사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꿈꾸는 역사를 만들어 낸 시대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시도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어요.

주진오 (상명대 역사콘텐츠 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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