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친구가 필요한 건 패배자이다" 일류 축구 감독들의 제3세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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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형 문화평론가 |
영국의 소설가 서머싯 몸은 자신의 스테디셀러 소설 '달과 6펜스'에서 '이국 취향의 인간'을 잘 그려낸 바 있다. 그에 의하면 이국 취향의 인간은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다.' '6펜스짜리 은화(현실과 물질)'보다 '달(꿈과 이상)'을 더 좋아하는 기질, 그러니까 다른 기후, 다른 언어, 다른 문화, 다른 인종에게 강렬한 매력을 느끼는 그런 품부는 원래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을 이끌었던 거스 히딩크나 이번에 대표팀 감독으로 오게 된 위르겐 클린스만은 확실히 이국 취향의 남자다. 평생의 반려자를 고르는 안목만 봐도 대충 그 사람의 기질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 두 감독 이전, 90년대 초의 한국에 데트마어 크라머라는 희대의 감독이 기술고문 자격으로 부임한 적이 있었다. 그는 명문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으로 2년 연속 유러피언 컵을 들어 올릴 만큼의 일류 감독. 그런데 유럽에서 편하게 살 수도 있었던 그는 자신의 남은 인생을 제3세계를 떠돌며 축구 기술을 전파하기 위해 바친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만 하더라도 세계 축구의 변방에 불과했던 한국, 일본을 비롯해 미국, 이집트, 사우디, 태국, 그리스, 말레이시아 등등을 떠돌며 감독, 코치, 기술고문 등으로 일했던 것이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그의 말 한마디를 소개하고 지나가자. "승자에게는 사람이 모여든다. 진짜 친구가 필요한 건 패배자이다. 난 패배자를 찾아가겠다."
크라머의 애제자 중 하나였던 신태용은 올림픽 대표팀을 이끌던 시절 크라머 감독의 별세 소식을 듣고 독일까지 날아가 그의 묘소에 절을 올린 바 있다. 그리고 신태용은 몇 년 뒤,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어 크라머의 조국 독일을 2-0으로 꺾는 대이변을 연출한다. 이어 그는 낯선 이국인 인도네시아 감독으로 부임하여 호성적을 기록 중인데, 이는 어쩌면 자신이 벽안의 스승에게 받은 감명을 어떤 식으로든 돌려주고픈 숙원의 발로일지 모른다. 사실이라면 크라머가 뿌린 씨앗이 꽃이 되고 또 날려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히딩크' 박항서 이전에 '한국의 크라머'도 있었다. 고(故)장경환 감독이다. 그는 1973년 네팔 축구협회의 요청으로 네팔 대표팀 감독으로 파견(?) 되었는데, 이것이 한국인이 처음으로 외국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이 된 사례라 한다. 하루 2식하고 있던 선수들에게 점심을 먹였더니, 그다음부터 잘 이기더라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부탄 감독이었던 강병찬 감독의 일화도 감동적이다. 그 오지로 왜 가냐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부탄에 축구의 혼을 심어 놓겠다며 해발 3천500m의 히말라야 산 기슭으로 뛰어들었다. 그의 열정으로 매번 수십 대 영으로 지기만 하던 부탄은 역내 라이벌들과의 대결에서 적잖게 이기는 팀으로 탈바꿈했다. 2002년 월드컵 결승전이 벌어진 당일, 피파랭킹 202위의 부탄은 203위 몬세라트와의 꼴찌 대결에서 4-0으로 승리한다. 감독석은 경기 내내 비어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그날은 암으로 유명을 달리한 강병찬 감독의 49재 날이었다. 강병찬 감독의 바통은 유기흥 감독이 이어받았다. 그리고 그는 부탄의 U18 대표팀을 사상 최초로 서남아 대회에서 우승시킨다. 온 부탄이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음은 두말할 것 없었다.
이들 세 감독은 모두 이국의 청년들과 함께 배고픔과 궁핍과 싸워야 했다. "부탄에 가니 잔디는 있는데 축구공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감독 이전에 먼저 아버지가 되어야 했다는 그들. 그러니까 다시 한번. '6펜스짜리 은화'보다 '축구공'이 더 좋은 사람은? 서머싯 몸 왈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다!"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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