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복 10차로 동대구로 보행자 위험
택시·승용차 이용객 줄 잇는 정류장
버스 승객 동선 고려 안 한 설계 잘못
차량 중심 구축된 도로체계도 큰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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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와 자가용을 권하는 도시. 시내버스를 타고 동대구역 광장 승강장에 내릴 때마다 생각한다. 동대구역 광장 쪽 버스 중앙차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불편하고 위험하다. 정시 출도착을 자랑하는 열차를 제 시각에 타려면 말이다. 버스를 이용하다 보면 아슬아슬하게 역에 도착하는 경우가 있는데, 문제는 버스를 내려서부터다. 넓은 도로 한복판에서 초록불이 켜지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초조하다. 마음이 급할수록 보행자 신호가 바뀌지 않는다. 왕복 10차로를 자랑하는 동대구로는 차들이 질주한다. 그러는 동안 택시와 자가용을 타고 온 사람들은 저 앞 광장에서 내린다. 바로 역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행여라도 시간에 늦을까 마음이 조급한 사람은 가끔 빨간불이 켜져 있어도 무단 횡단을 한다. 이런 경우, 신호를 무시하고 무단으로 길을 건너는 사람을 나무라야 할까? 우리는 선진국 일등 시민이니까 교통 법규는 철저하게 지켜야 할까? 나는 동대구로에서 무단 횡단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나도 몇 차례 겪어본 일이다. 하지만 위험한 행동인 것은 틀림없다. 유니버설 디자인이라는 별도의 용어를 쓰지 않더라도 어린이나 노약자, 장애인이 접근하기 쉬운 대중교통은 건강한 성인과 비장애인에게도 당연히 편리하고 안전한 것이다. 버스에서 내려서 빠르고 안전하게 열차를 이용할 수 있는 합리적인 동선 설계가 필요하다.
시민의 발인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한 것은 처음부터 설계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택시와 자가용 이용 고객에게 버스 승강장이 자리를 내어주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버스 이용자도 택시 이용자도 자가용 이용자도 모두가 안전한 시스템을 찾을 필요가 있다.
프랑스 국립 건축가 임우진은 '보이지 않는 도시' 책에서 '양심 냉장고'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경규가 간다-숨은 양심을 찾아서'라는 프로그램은 개그맨 이경규가 진행했는데, 인근 건물 옥상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고 모든 차가 횡단보도 정지선을 지키면 냉장고를 선물했다. 첫 방영 때, 사람도 차도 다니지 않는 새벽 시간에 '양심적으로' 정지선을 지킨 차가 있었다. 운전자가 냉장고를 선물로 받았다는 소식과 함께 '내가 늘 지켜요'라고 말한 장애인 운전자의 인터뷰는 많은 시청자에게 뭉클한 감동을 주기까지 했다. 1997년도에 방영된 이 프로그램은 TV 공익 예능의 전설로 여겨진다. 그만큼 정지선을 무시하는 운전자가 많았다는 반증이다. 그런데 건축가인 저자는 개인의 양심 차원이 아닌 도시 교통 시스템의 문제를 언급한다. 차량 신호등이 걸린 위치가 횡단보도 너머에 있는지, 아니면 횡단보도 이전에 있는지에 따라서 운전자의 반응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막상 자동차를 운전해 보면 횡단보도 너머에 위치한 신호를 보다가 횡단보도를 가로지르는 실수를 저지르는 경우가 있다. 횡단보도 이전에 신호등이 있으면 아무래도 이런 오류를 줄일 수 있다. 다음 출발신호를 보기 위해서라도 미리 멈춰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하자면 개인의 양심에 호소하는 것보다 실수와 오류를 예측하고 방지하도록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자동차 신호등이 어디에 달려있는지를 보면 그곳이 보행자를 위한 곳인지 자동차를 위한 곳인지 알 수 있다.
대구시의 도로 체계는 자동차 운전자에게 편리하다. 특히 대구를 동서로 관통하는 왕복 10차로 달구벌대로를 보면 대구가 차량 흐름 중심으로 설계된 도시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범어역 네거리에서는 남북으로 교차하는 12차로와 만나는데 그 규모가 압도적이다. 이곳은 횡단보도가 설치되어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사람이 건너라고 만들어 둔 것은 아닌 것 같다. 광활한 차도를 건널 때면 무서울 때가 있다. 늦은 저녁이나 이른 새벽에는 더욱 그렇다. 내가 사는 삼덕동을 걷다 보면 인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는 길이 있다. 그곳은 인도일까 차도일까? 보행자가 우선일까 자동차가 우선일까? 아무렇게나 주차되어 있는 차를 피하랴 저 앞에서 또 저 뒤에서 다가오는 차를 피하랴 신경을 곤두세우며 걸어야 한다. 보행자도 운전자도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는 미덕을 강조하기에는 위험 요인이 너무나 많은 곳이다. 물론 시스템이 절대적일 수는 없다. 시스템을 작동하는 것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행자의 처지를 아랑곳하지 않는 거리를 방치하는 것은 도시 행정이 무책임한 것이다.
'ㅇㅇ금지' '~하지 마시오'와 같은 표시와 설명이 많을수록 디자인에 문제가 많은 곳이다. 난간을 만들어놓고 '기대지 마시오'라든지 '추락주의'라고 써두는 것은 애초에 난간을 제대로 디자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운전하다 보면 유독 주차하기 좋은 자리가 보인다. 차가 거의 다니지 않고 도로 폭이 넓은 데다가 별도의 차선규제봉이 없는 곳이다. 하지만 이런 곳은 단속원들에게도 잘 보이는 법. 불법 주정차 단속차량이 아침저녁으로 순회한다. 이것이야말로 행정력 낭비 아닐까. 주정차를 해서는 안 되는 곳이라면 그에 맞는 거리 디자인을 고민하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차선을 좁히고 보행자 도로를 더 확보하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 사실 이런 문제는 단지 교통 분야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계획하고 실행하는 일이 애초 의도보다 잘못 사용되는 일이 많다면 면밀하게 검토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이럴 때 도시 디자인이 필요하다. 성숙한 시민 의식, 자랑스러운 대구시민, 양심 행동 등의 구호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디자인이 단지 눈에 보이는 형태만이 아니라는 것, 사용자의 경험에 기반한 비가시적 행동과 성찰을 포함한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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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완 (북디자이너·영남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
북디자이너·영남대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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