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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지대] 역사에 대한 태도

2023-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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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순 <사>경북시민재단 이사장 영남대 교수

'고바야시 마사루'(1927~1971)라는 일본인 문학자가 있다. 그는 대구경북과 인연이 깊다. 1927년 진주에서 태어나 안동 시절을 거쳐 대구중학교를 졸업한 후 1944년 봄에 난생처음 일본 땅을 밟는다. 이후 그는 일본의 한국전쟁 참여를 반대하는 반전·평화 운동 중에 투옥되고 그로부터 그의 문학은 시작된다.

고바야시 마사루는 한국전쟁을 가장 깊이 있게 다룬 일본인 문학자다. 더불어 그는 3·1운동을 가장 많이 가장 생생하게 그려낸 작가이기도 하다. 특히 그가 1969년 봄에 발표한 '만세·메이지 52년'은 일본의 3·1운동소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이 소설은 안동의 3·1운동을 제재로 "피비린내" 났을 당시 현장을 문학적으로 생생하게 형상화한 동시에 1919년 당시 신문 기사를 소설에 삽입해 현장의 진실과 보도의 허위를 독자 스스로 깨닫게 하는 독특한 구성을 취했다.

'만세·메이지 52년'은 작품 발표 시점도 흥미롭다. 1969년 봄. 바로 3·1운동 50주년에 해당하는 때이다. 이러한 의식적 선택에는 3·1운동 당시 학살당한 많은 조선인에 대한 추모와 반성하지 않는 일본에 대한 질타가 깔려 있었다. 1968년에 일본 정부는 1868년의 메이지 유신 100주년을 맞이한 시점에 '메이지 백년제'라는 국가 차원의 마쓰리를 연다. 이 마쓰리의 의도는 '영광스러운 메이지 100년'이라는 홍보 문구가 잘 함축한다.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한 '자민당'을 중심으로 한 일본 정부는 1964년 도쿄올림픽 개최에 이어서 '메이지 백년제'를 활용해 일본의 근대 100년에 대한 국민의 역사 기억을 수정하고자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바야시 마사루는 메이지 유신 100주년에 3·1운동 50주년을 맞세우면서 일본의 근대 100년을 '영광스럽게' 기억해도 되는지 반문한 것이다.

근대 동아시아의 전쟁은 모두 일본이 일으켰고, 한반도는 항상 그 전쟁들 중심에 있었다. 1894년의 청일전쟁과 1904년의 러일전쟁은 한반도 장악을 위한 전쟁이었다. 이어서 일본이 시베리아 지역에서 전개한 7년 전쟁(1918~1924)은 해당 지역 항일·독립운동 진영을 '소탕'하면서 3·1운동 이후 한반도 상황을 진압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또한 1931년 만주 침략을 시작으로 1945년까지 이어진 아시아태평양전쟁은 한반도의 많은 인적·물적 피해를 '동원'한 전쟁이었다. 일본은 1894년 청일전쟁 이후 약 50년 기간 중 26년 동안 동아시아를 대상으로 전쟁을 벌였고 한반도는 항상 그 피해의 중심에 있었다. 고바야시 마사루의 3·1운동소설은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다. 20년에 걸친 고바야시 마사루 문학은 "조선은 일본에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지탱하고 관통했다. 그는 문학 활동 내내 한반도가 일본 때문에 입어야 했던 역사적 피해와 상처에 온몸으로 공감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죽음을 크게 앞당겼다.

국가 외교 전략은 아무리 못해도 지역 출신 일본인 문학자 개인의 성찰보다는 깊고 넓어야 하지 않을까? 역사적 사실과 유리된 공허한 메시지를 서두르기보다 "일본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묻는 사회적 담론과 공감이 선행해야 한다. 상대의 피해와 상처에 대한 공감도 없고 최소한의 상식적 책임까지 거부하는 관계에 '미래지향'과 '건전함'은 없다. 엄연한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보면 그런 태도는 파렴치를 넘어 섬뜩하고 위험한 계획이 준비 중임을 의미한다. 그렇다, "판이 바뀌었다". 한반도를 둘러싼 판이 위험스럽게 요동치고 있다. 우리는 미래세대의 시간을 위험 속에 내던지고 있다.최범순 <사>경북시민재단 이사장 영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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