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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노포의 밤

2023-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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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음〈소설가〉

노포의 뜻은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이다. 명동 프린스호텔에 머물면서 을지로 일대와 종로의 노포들을 찾아다니는 작가를 만났다. 그 작가와 다른 작가들과 몇 군데의 노포를 찾아갔다. 1953년에 오픈한 중국집을 시작으로, 을지로 노가리 골목에 있는 가게와 '이름 없는 분식'까지 갔다. 우리를 안내한 작가는 노포의 역사를 말해주었다. 우리 일행은 '이름 없는 분식'을 찾느라 골목골목을 돌아다녔다. 깊숙한 골목의 한 귀퉁이에 간판이 없는, 말 그대로 '이름 없는 분식'집이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쑥전을 뜯어 먹으며 옛 감성을 유지하고 있는 노포에 감탄했다. 70년간 대를 이어 한 곳에서 장사를 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일행 중 한 분은 하와이에 거주하며 소설을 쓰는 작가였다. 1985년에 이민 가서 지금까지 머물렀다니. 그의 삶은 노포와 전혀 다른 삶이었다. 그 작가의 삶은 여기 적지 않아도 서러움이 가득 묻어남을 짐작할 것이다. 그 작가는 하와이 이민사로 장편 소설을 썼고 그 작품이 문학상을 받으며 작가가 되었다고 했다. 그 옆에 앉은 작가는 한국 격동의 시대 학생운동을 하고 '이름 없는 분식' 같은 곳으로 뛰어 들어와 숨어 있던 시절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이민자의 삶을 산 작가가 미안해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만들어지던 시절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부채감과 죄책감을 느낀다고. 대신 작가는 미국에 부적응 중인 이민자의 삶을 그렸다고 말했다. 노포처럼 한국에서 40년을 넘게 살아온 나에게 '떠돈다'는 의미는 여행이지만, 이민자에게는 인종차별과 언어의 장벽과 서러움을 담보로 한다.

타국인의 삶도 한국인의 삶도 아닌 이방인의 삶.

그 삶을 글로 풀어 적는 일은 자신의 서러움을 푸는 일을 넘어서 이민자의 삶을 기록하는 일이 된다. 그 작가는 고국을 떠나 뿌리내리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조선 밖으로 버려지고, 보내지고, 돌아올 수 없었던 한인들의 이민사를 찾아보았다. 하와이 이민사는 1902년에 시작된다. 고려인의 공식적인 이민사는 1864년이다. 1919년 최초로 프랑스에 도착한 이민자는 35명이었다고 한다. 또 어딘가에서 이민자의 삶은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곳에서 중국인이나 일본인으로 잘못 불리면, 나는 '조선인'이라고 고쳐 말해주었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은 없다'는 답을 듣고 남몰래 울었을 그들의 삶. 소설가가 찾아내고 기록해야 할 이민자의 삶은 얼마나 많을지. 불러줄 이름은 얼마나 소중할지.

봄꽃이 만발했지만 쌀쌀해진 봄밤에 을지로의 노포 '이름 없는 분식'에 앉아, '이름 없이' 어딘가에 묻혀 있을 '조선인'들을 불러보았다.박지음〈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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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음 소설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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