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인간 농담 이해하고 함께 웃을 수는 없어…책과 문학 계속 애독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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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자 번역가인 제이크 레빈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 책장에 꽂힌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
시인이자 번역가이자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는 제이크 레빈 교수(계명대 문예창작학과)는 책(Book)과 책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Word, Text…)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 출신인 그는 한국에 온 지는 10년이 넘었고, 대구에서는 6년째 생활하고 있다. 여러 권의 한국 책을 미국에 번역해 소개했는데, 2020년에는 공동 번역한 김이듬 시인의 '히스테리아'로 전미번역상을 수상했다. 전미번역상은 미국문학번역가협회(ALTA)가 주관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번역 전문 문학상으로, 1998년에 제정돼 매년 시와 산문 부문으로 나누어 뛰어난 번역으로 영문학에 탁월한 공헌을 한 번역자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직접 글을 쓰고, 번역을 하며 책을 만드는 데 중요한 일을 해오고 있는 사람이 생각하는 책과 번역이란 무엇일까.
▶그동안 한국어로 쓴 시집 여러 권을 영어로 옮기는 작업을 했다. 어려운 점은 없었나.
"가장 어려운 점은 한 편의 시를 번역하기 위해서는 '언어의 역사' '사람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한국 고유의 시골 문화와 정서가 가득 담긴 제목의 작품이 있다. 과연 그런 것들을 미국 사람에게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그런 부분을 많이 고민하고, 잘 설명하기 위해 노력한다. 한국말에는 의성어와 의태어, 동음이의어가 많은데 그런 것들도 번역의 어려운 점이다. 또한 각 시인의 스타일에 따라 번역가가 겪는 어려움이 다르다. 시 속의 이미지가 희미한 작품의 경우 특히 번역이 까다롭다. 시인들에게 직접 의미를 물으며 번역을 하기도 하는데, 김수영 시인처럼 돌아가신 분의 경우 물어볼 수가 없어서 좀 난감했다. 물론 작가가 살아있더라도 시어의 의미 등을 물어보면 '나도 몰라'라며 애매모호한 답변을 내놓을 때도 있었다.(웃음) 시를 번역하는 일은 어렵지만, 그래서 재미가 있다."
"韓 현대시 시리즈 미국서 반응 좋아
영어로 '마음'의 의미 가장 잘 소개
그 길 찾아가는 것이 번역가의 역할"
"AI가 개별취향까지 구현하지 못할것
아름다운 감정과 숭고미 표현엔 한계"
"위기·슬픔 속 '책 속 한 구절'과 마주
삶의 순간 이해하기 위한 지침될 것"
▶미국에서 한국 시의 반응은 어떤가.
"영어로 번역된 한국 현대 시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는데, 김경주·김민정·김행숙·문보영 시인 등의 시집이 소개됐다. 미국에서 반응이 좋다. 사람들이 현대 시를 좋아한다."
▶'Lost in translation'이라는 표현이 있다. 번역 과정에서 일부 누락될 수 있는 말의 의미를 뜻하는데, 아주 예민한 부분까지 소통한다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완전한 이해가 힘든 경우가 있다. 내가 번역을 한다면 그런 부분이 스트레스일 것 같은데, 서로 다른 언어를 오가는 번역가로서 'Lost…'에 대한 생각은.
"'Lost'와 붙어 다니는 반대말이 'Found'다. 그래서 번역에 대해 이야기하는 다른 표현으로 'Found in translation'이 있다. 물론 서로 다른 언어 사이에는 번역이 쉽지 않은 부분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마음'이라는 표현. 한국인의 일상 혹은 작품 속에서 '마음'이라는 단어는 매우 흔하게 쓰인다. 영어로는 'Mind'나 'Heart'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지만, 그때그때 한국인이 말하는 '마음'의 위치가 머리인 건지, 가슴인 건지, 아니면 또 다른 곳인지 규정하기가 힘들다. 그럴 때 영어로 그 '마음'을 어떻게 가장 잘 소개할 수 있을지 그 길을 찾아가는 것이 번역가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Lost & Found(분실물 센터)'에서는 잃어버린 물건을 다시 찾을 수 있지 않나. 그것처럼 언어의 의미를 잠시 잃어버리더라도(Lost), 새로운 언어를 통해 다시 찾을 수(Found) 있다고 본다."
▶이른바 '쇼트폼(짧은 영상)'이 인기를 끌고 있고, 인공지능 챗봇 '챗GPT'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이 뜨겁다. 휴대전화 등 기계가 모든 정보를 즉각적으로 요약해 소개한다. 이런 세상에서 앞으로 '책'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독자가 있기 때문에 책과 문학은 계속될 것이다. 와인 취향이 다양한 것처럼 인간(독자)에게는 저마다의 '취향'이라는 것이 있는데, 로봇이나 기계가 개별적인 취향까지 구현해 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기계가 값비싼 와인의 성분을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는 있겠지만, (땅에 포도를 재배해 만들어 내는) 그 와인의 똑같은 맛을 만들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기계가 취향의 깊이를 구현하기 어려운 것처럼) 로봇이 인간의 농담을 이해하고 함께 웃을 수는 없다. 깊은 생각과 해석을 필요로 하는 책을 좋아하는 독자와 그런 작품을 쓰는 작가의 상호작용은 기계나 로봇이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실을 더 깊게 경험하고,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계속해서 책을 읽을 것이다. 시와 같은 문학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복잡한 감정, 예를 들어 너무 마음이 아픈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감정들, 숭고미 같은 것들을 기계나 인공지능이 표현하고 해석해 낼 수 있을까."
▶책장에 책이 많은데 특히 좋아하는 작품을 소개하자면. 또 '인생의 책'이 있나.
"시집 중에서는 황유원 시인의 '초자연적 3D 프린팅'을 좋아하는데, 정말 대단한 상상력이 담긴 작품들인 것 같다. 오은 시인의 '유에서 유'도 재미있게 읽었고, 김민정 시인의 '아름답고 쓸모없기를'도 좋아하는 시집이다. 하재연 시인의 '우주적인 안녕'도 아주 좋았다. 소설책 중에는 김사과 작가의 '나b책'을 흥미롭게 읽었다. '인생의 책'은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다. 한국말 중에서 '웃프다'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변신은 '겉으로는 웃긴데, 실제로는 슬픈' 내용이지 않나. 리처드 파워스의 소설 '오버스토리'도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인생의 책 중 하나다."
▶마지막 질문이다. 인간에게 '책'은 어떤 의미일까.
"누구라도 장례식장에 가면 위대한 책 속의 한 부분을 생각하거나 읊게 될 것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라도 '책 속 한 구절'이 필요한 순간을 마주할 때가 있다. 인간에게 책이란 그런 것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큰 위기나 슬픔, 또 '나는 왜 존재하는가' 같은 실존주의적 질문에 직면하게 될 때가 있다. 불행이나 중독,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 같은 그런 위기적 상황을 겪어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럴 때 인간을 도와줄 수 있는 것이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위로보다는 이해를 위해서. 문학은 역사이기도 하니까. 결국 삶의 순간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책은 필요하다."
글·사진=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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