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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철 칼럼] 낯선 대통령

2023-04-26

[유영철 칼럼] 낯선 대통령
유영철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문학하는 사람은 참신한 글을 쓰고 싶어 한다. 새로운 발상, 진부하지 않은 표현을 찾는다. 그게 어렵지만 그런 글이 감동을 주기에 시도한다. '낯설게 하기'도 한 수법이다. 일상적이고 친숙한 언어 자리에, 범상치 않은 생소한 문구를 대체해 낯설게 하여 참신한 느낌을 갖게 하기도 한다. 형식을 달리할 수도, 구성(플롯)을 달리할 수도 있다. 문학의 '낯설게 하기'는 파격이다. 그러나 파격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전체적으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생생함의 전달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역대 대통령은 일제 강점기 거족적 대한독립운동을 벌인 3·1절 기념식을 경건하게 거행하고 민족자존을 고양했다. 역대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는 독립운동의 역사적 의미와 교훈을 되새기며 일제 압제에 희생된 수많은 순국선열의 넋을 위로하고 한일 과거사를 점검하고 향후 과제와 방향을 제시하는 매우 비중 있는 연설문으로 역사적 기념물로 남겼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는 일본이 과거사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는 가운데 광복 이후 70여 년 내려온 매뉴얼이 반영돼 있다.

그런데 지난 104주년 3·1절, 취임 후 처음 맞이하는 윤 대통령의 기념사는 양식이 달랐다. '낯설게 하기'를 적용한 듯했다. 200자 원고지 7.4장 정도, 신문칼럼 1편보다 약간 적은 분량이다. 기념사의 요지는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한다.… 북핵위협을 비롯한 엄혹한 안보상황 등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세계사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미래를 준비하지 못한다면 과거 불행이 반복될 것이 자명하다.' 그리고 '지금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다. 복합위기와 심각한 북핵위협 등 안보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한미일 3자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면서 '우리 모두 기미독립선언의 정신을 계승해서 자유, 평화, 번영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갑시다'로 끝맺었다.

일본은 한일 간 문제해결에 액션 없이 손 놓고 있는데 '이제 일본은 협력파트너가 됐다고 선언'하는 어처구니없는 모양새다. 전임 대통령의 기념사와 견주면, 파격이다. 그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이유가 없이 우리만 '선언'하는, 일방적인, 씁쓸한 것이었다. 일본의 배상에는 제3자 변제로 돌리고 미국의 도청에는 선의로 해석하는 한·미·일 관계도 낯설고, 대중국· 대러시아 관계도 그게 외교 수준인지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4·19기념일의 윤 대통령의 기념사도 내용은 낯설었다. "지금 세계는 허위선동, 가짜뉴스, 협박, 폭력선동, 이런 것들이… 민주적 의사결정을 왜곡 위협하고 있다"면서 "4·19혁명 열사가 피로써 지켜낸 자유와 민주주의가 사기꾼에 농락당해선 절대 안 된다"고 말한 것이다. 나라 밖 세계 상황임을 전제하면서도 국내를 겨냥해 4·19 열사의 자유민주주의가 '사기꾼'에 당해선 안 된다고 경고하고 말았다.

기념사와 같은 연설문은 시·소설과 같은 문학 장르가 아니다. 오해하기 쉬운 문맥, 극단적인 범죄용어의 불필요한 구사 등으로 인해 윤 대통령이 참 낯설어 보인다. 이번 미국 국빈방문에서 어떤 '낯설게 하기'가 나올지 염려스럽다. 김춘수의 명시 '꽃을 위한 서시' 첫 연(聯)이 떠오른다.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유영철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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