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 지지층만 보는 '혀놀림'
개딸·극우종교세력과의 결탁
정치적 소통·협력 여지 막아
보수 종가 'TK'도 모욕 피해
쇄신 공천·소통 1번지 변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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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경 정경부장 |
2005년에 개봉된 영화 '달콤한 인생'. 영화 후반부에 주인공 선우(이병헌)는 자신을 수차례 죽이려 했던 조직보스 강 사장(김영철)에게 비장하게 물었다. "도대체 나한테 왜 그랬어요"라고. 강 사장 대답은 간명했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강 사장은 어린 애인 희수(신민아)가 딴 남자와 연애하는 증거를 찾으면 연락하라고 선우에게 지시했다. 선우는 그 현장을 목격했지만 그대로 덮어뒀다. 묘한 러브라인도 형성될 뻔했지만 멈췄다. 강 사장을 위해서다. 결국 사달이 났다. 자존심 강한 강 사장은 갑자기 자신을 냉대하는 희수를 보고 모욕감을 느꼈다. 그리곤 조용한 분노를 분출했다. '모욕'이란 단어의 섬뜩함을 만끽했었다. 한동안 그 느낌을 잊고 살았다.
잠잠하다가 문재인 정부 때부터 우리 정치판에서 모욕주기가 횡행했다. 아예 일상화됐다. '혀 아래 도끼가 들었다'는 속담이 실감이 날 정도다. 여야가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며 열심히 '갈라치기 정치'를 한 결과다. 정권이 바뀌어도 상황은 매한가지였다. 더 심해졌다.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 김재원 최고위원은 '세치 혀놀림'으로 징계까지 받았다. 극우성향 보수 종교 세력들과의 연결고리를 끊지 못한 것도 화근이었다.
이른바 '개딸(개혁의 딸)'을 등에 업은 야당은 적정선을 넘은 지 이미 오래다. 정치적 빈틈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정부를 힐난한다. 게릴라식 '대통령 영부인 욕보이기'도 좀 과하다. 어떻게 하면 강도 높은 모욕감을 줄까만 궁리한다. 입법권력을 쥔 야당은 아직 정권을 잡은 여당인 줄로 착각한다. 행정권력만 잡은 여당은 국회에선 아예 맥을 못 춘다. 일종의 분출구로 모욕주기를 애용하는 모양새다.
신물 나는 정치환경 속에서도 신선하게 다가온 일이 있었다. 이달 초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신임 검사 임관식 때다. 검사 출신 한동훈 법무장관이 "상대방에게 모욕감을 주지 말자"고 당부했다. 배우 한석규의 평소 신조로 익히 알려졌던 말이다. 사실 검찰에게 모욕주기는 기선 제압을 위한 일종의 수사기법이었다. 고관대작(高官大爵)이라도 범죄혐의로 조사받는 자리에선 모든 걸 내려놓고 협조하라는 이유에서다. 한 장관의 말은 이제 그걸 지양해야 한다는 의미로 보인다. 잊고 있던 배려의 가치도 되새기게 했다.
모욕에 있어선 TK도 절대 빠지지 않는다. 대구는 국책공모를 통해 국가로봇테스트필드를 유치해 놓고도 정부 예비타당성조사에서 미끄러졌다. 수도권과 사업을 나누자는 치욕적인 말까지 들었다. 조만간 발표될 예타 재심사 결과가 좋아도 내상은 남는다. 내년 총선 때는 인적쇄신 명분으로 TK에 대규모 공천 낙하산을 투하할 것이란 말도 나돈다. '보수 종가'의 치욕이다. 워낙 표심이 견고하다 보니 서울 TK인사들의 정치데뷔 장소로 거론되는 것이다. 1년 내내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있다가 매년 10월 국정감사철만 되면 존재감을 드러내는 TK의원들의 교체는 쌍수를 들고 반길 일이다. 힘 있고, 혁신적 사고를 가진 인물로 교체돼야 마땅하다. 무엇보다 세련된 소통에 능숙한 이들이 오면 좋겠다. 경북 예천군에 '말무덤'이 있다. 마을 주민 간 말다툼이 끊이질 않아 비방을 사발에 담아 묻었더니 마을에 평화가 찾아왔다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정치인들이 한번 들러보길 권한다. TK가 모욕정치를 몰아내고 소통정치의 발원지로 세탁되길 바란다.
최수경 정경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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