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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직구 핵직구] 이승만과 불편한 진실

20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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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상 경인방송 대표

인천에는 인하대가 자리 잡고 있다. 6·25 휴전 직후인 1954년 인하공과대학으로 출범해 1971년 인하대학교로 승격한 명문사학이다.

최근 인하대를 방문해서야 설립자가 이승만 대통령이었고, 이름을 인천과 하와이의 첫 글자를 따서 이 대통령이 직접 지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지식인이네 자부하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렇게 무식했다니!

인하대 역사책에 따르면 하와이 교포들이 한국에 공과대학의 설립을 이승만에게 제안했고, 이승만은 자신이 운영해 온 하와이 한인기독학원을 처분한 기금 15만달러를 설립자금으로 쾌척했다. 1952년 12월 피란지 부산에서 이승만은 하와이로 이민선이 처음 출발한 인천에 미국의 MIT와 같은 공과대학을 설립하라고 문교부 장관에게 지시한 데 이어 범정부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인하대 캠퍼스에는 설립자 이승만의 동상을 찾아볼 수 없다. 엄혹했던 1984년, 교내에서는 학생의 날 기념식과 추모제가 열렸고, 행사 후 학생들은 시위를 벌이다가 설립자 이승만 박사의 동상을 쓰러뜨렸다. 지금도 을씨년스럽게 받침대만 남아있다.

과연 이승만 대통령은 자신이 설립한 대학에서조차 동상도 세우지 못할 정도의 독재자였는가? 물론 이승만 정부가 장기집권과 부정선거로 붕괴된 것은 명백한 사실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많은 국내 정치학자들은 전체적으로 이승만 시대를 완전한 민주주의 체제도 아니지만, 완전히 비민주적 일당독재의 전체주의 체제도 아닌 중간지대에 있는 체제로 보고 있다.(이철순 부산대 교수) 특히 외국학자 중 민주주의 연구의 대가인 헌팅턴 교수는 반(半) 민주적 문민정권(Semi-democratic civilian regime)이라고 평가했다는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의 저항에 부딪혔을 때 역사의 많은 독재자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이웃 중국에서 개혁 개방의 상징인 등소평조차 천안문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탱크로 진압해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도 물러나지 않았다. 문화대혁명을 일으켜 수백만에서 수천만 명을 희생시킨 모택동은 지금도 천안문에 대형 초상화가 걸려있다. 과오는 있지만, 사회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한 국부(國父)라는 이유다. 하지만 이승만은 4·19 일주일 뒤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한 뒤 하와이로 망명한다. 그리고 끝내 조국 땅을 밟지 못하고 1965년 서거했고, 유해를 이송해 서울에서 열린 장례식에는 수십만 추모 시민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최근 한 진보당 의원이 이승만 기념관 건립을 반대하면서 "내란죄 수괴인 전두환씨와 이승만 대통령이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이념이 진실을 가린, 무식이 극에 달한 발언이다.

6월3일 전북 정읍에서는 '우남(雩南·이승만의 호)네트워크'가 개최하는 '정읍선언 77주년' 기념식이 열린다. 우남네트워크의 신철식 회장은 흔히 'TK의 대부'로 알려진 신현확 국무총리의 외아들로, 사재를 털어 행사를 주도하고 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개인이 하고 있는 것이다. 좌파들이 분단의 시초로 비난하는 정읍선언은 '선(先) 남한정부 수립, 후(後) 민족통일 달성'을 제안한 이승만의 '대한민국 건국 독트린'이었다.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씨를 뿌린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언제쯤 국부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 윤석열 정부는 이 '불편한 진실'을 우리 미래세대에게 알릴 의무가 있다.강효상 경인방송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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