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부터 쌓은 손맛이 '빈 둥지 증후군' 극복 비결"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것이라는 노래 가사도 있잖아요. 젊은 시절 쌓은 제 노하우를 살려 지금 이렇게 일을 할 수 있어 좋아요. 언젠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습니다."
박경애(70·대구 수성구)씨는 수년째 대구의 한 음식점에서 주방 책임자로 일을 하고 있다. 단정하게 쓴 주방모에서 그의 일에 대한 진지함과 열정이 느껴졌다. 박씨가 일하는 음식점은 중구 동인동에 위치한 '마실김밥' 3호점.
마실김밥은 깔끔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맛과 훌륭한 가성비로 직장인은 물론 학생들에게도 입소문이 난 곳이다. 이곳은 대구 중구시니어클럽에서 운영하는 브랜드로, 근무하는 이들은 만 60세 이상의 어르신이다. 음식의 맛은 결국 세월에 비례하는 것 아닐까. 한평생 가족을 위해 많은 음식을 만들어 본 어르신들이 만드는 김밥이니 맛이 있을 수밖에.
박씨는 60대 중반부터 마실김밥에서 일을 하면서 이른바 '빈 둥지 증후군'을 극복하고 제2의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고 했다. 빈 둥지 증후군이란 자녀들이 대학에 입학하거나 취직을 하는 등 독립해 집을 떠나는 시기에 부모가 느끼는 상실감과 슬픔을 의미한다.
그는 중년에서 노년으로 접어드는 시기에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하듯 '텅 빈 기분'을 느껴야 했다. "어느 순간 저도 나이를 먹고, 아이들도 출가를 하게 됐습니다. 우울한 기분을 안 느끼려고 노력했지만, 해질녘이면 허전함과 상실감이 밀려왔어요. 가끔씩 인생에서 나 혼자 남겨졌다는 생각과 세상에서 동떨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지요. 그렇게 10년 가까이 인생의 휴지기를 가지다가 우연히 친구의 소개로 이 일을 하게 됐습니다."
한때 식당을 운영하기도 했던 박씨에게 다시 찾은 일은 또 다른 재미와 성취감을 안겨줬다. "예전부터 음식을 하면 남들이 맛있게 먹어줘서 음식에 꽤 자신이 있었어요. 그런데 마실김밥에서 일을 하며 손님들이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을 보니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내가 잘할 수 있고 적성에 맞는 일을 찾은 거지요. 젊은 사람들이 자주 찾아와서 줄까지 서가며 음식을 시켜 먹을 때 참 고맙기도 하고 보람도 있었어요."
그에게 새롭게 일을 시작하기 전과 후, 달라진 점이 있는지 물었다.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목적을 두고 출근할 곳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함께 일할 동료들도 생겼고요."
박씨는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틈틈이 독서클럽 활동 등을 하며 여가를 보낸다고 했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독서클럽에 참여해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지금은 '나를 위한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젊을 때 여유가 없어서 못 했던 일들을 해보고 있어요. 요즘 수필이나 일기 형식으로 틈틈이 일상을 글로 남기고 있는데, 언젠가 책을 한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그에게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이들을 위한 메시지를 부탁했다.
"인생의 어느 시기에서 새 시작을 고민하는 분이 많을 텐데 중요한 것은 도전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나온 삶에 대한 미련을 깨부수고 시작한다는 게 쉽지 않을 수도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적지 않은 나이에 원했던 일에 도전하고 새 시작을 한다는 자체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글·사진= 노진실기자 kno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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