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은 헌법적으로 보면
매우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
정치권은 국민적 합의 없이
진영논리에 따라 탄핵논의
정치불신과 불안만 키워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
작년 10월29일 발생한 이태원 압사 사고로 159명이 사망한 사고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주무부처 장관인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해 국회가 탄핵소추를 의결했고, 지난 7월25일 헌법재판소는 이를 만장일치로 기각했다. 야당이 다수당이라는 점을 이용해 탄핵요건에 해당하는 것이 불명확함에도 탄핵을 의결해 장관의 공직 수행을 중단시킨 것이다.
최근 윤석열 정부 취임 2년 차에 접어든 가운데 잼버리 파행,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해병대 채 상병 사건 수사외압 논란 등과 관련 여야의 강 대 강 대치가 이어지면서 급기야는 야당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카드까지 언급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한국은 2004년 노무현, 2017년 박근혜 두 차례의 대통령 탄핵심판 경험이 있는데, 탄핵이 매우 중요한 정치적 갈등 해결 수단으로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미국에서도 집권당인 민주당이 반란에 가담한 사람은 선출직을 맡을 수 없다는 수정헌법 14조를 적용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출마를 막으려고 하자, 공화당이 조 바이든 대통령의 가족 비리 의혹을 이유로 탄핵 조사를 압박하는 등 여야 간 극단 대치로 치닫는 형국이다.
원래 탄핵제도는 그리스와 로마에서 기원하였으나, 근대적 의미에서는 영국에서 국왕이나 정부고관의 범죄와 비행(High Crimes and Misdemeanors)을 형사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권력자의 압력이나 간섭 때문에 어렵다는 점에서, 의회가 이를 고발하고 국왕 외에는 그 직에서 파면하도록 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이런 취지는 현재에도 마찬가지이며, 우리 헌법재판소는 탄핵은 일반적인 사법절차나 징계절차에 따라 소추하거나 징계하기 곤란한 행정부의 고위직 공무원이나 법관 등과 같이 신분이 보장된 공무원이 직무상 중대한 비위를 범한 경우에 의회가 이를 소추하여 처벌하거나 파면하는 절차로 정의하고 있다. 공직자 파면이라는 의미 외에도 의회가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와 사법부를 견제하는 수단으로서도 의미를 가진다.
문제는 이런 취지와 달리 대통령과 국회의 충돌을 해결하지 못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탄핵제도가 정치적으로 남용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특히 야당이 다수당인 경우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 이전이라도 탄핵 의결만으로도 권한 행사를 정지할 수 있어서 탄핵제도 남용의 유인이 존재한다. 또한 대통령이 국민의 직접 선거로 선출되는 경우 의회와 대통령이 모두 대의에 기반한 정치적, 헌법적 정당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일방적으로 의회만 탄핵소추권이라는 막강한 정치적 무기를 가지는 것은 대의 권력 간 견제와 균형 원리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이 점을 고려하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할 것이다.
탄핵은 국가권력 담당자가 헌법을 침해하는 상황이 있는 경우 헌법을 수호하기 위하여 마련된 제도로 그 자체로 매우 엄중한 사항이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65조상 탄핵소추의 요건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와 달리 '법 위반의 중대성'도 추가적인 요건으로 구체화한 바 있다.
결국 탄핵 상황은 헌법적으로 보면 매우 비정상적이고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으로 가급적 최소화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치권은 국민적 합의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여야 각 진영 차원의 논리에 따라 탄핵을 논의하는 것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이는 정쟁에 불과하여 국민의 정치 불신을 심화시킨다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안 그래도 마주 보고 달려오는 기관차 같은 현 정국에 대한 국민의 불안이 탄핵 논의로 인해 더 증가하고 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법정책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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