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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철균 경북연구원장은 "과학기술의 혁신이 오히려 지방화시대를 가로막고 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유 원장은 "지난 30세기 동안 동아시아인들이 가장 행복하고 평화로웠던 시대는 주나라 때다. 중국이 130개 국가로 분할된 완전 지방화시대로, 주나라 무왕은 중앙정부 종법체계와 상제에 대한 제사의식 참여 정도만 요구했을 뿐 나머지는 모두 지방정부에 맡겼다"며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넘어오면서 당시 최첨단기술이 접목된 '쟁기'가 등장한 이후 지역 간 불균형은 심화됐다"고 전했다.
그는 "이전까지 농사를 짓지 못하던 땅에서도 쟁기로 농사가 가능해져 농사 방식에 일대 혁신이 왔다. 쟁기가 빨리 보급되는 지역과 보급되지 못한 지역의 불균형은 갈수록 심화될 수밖에 없었다"면서 "지금의 첨단과학기술을 주나라 때 쟁기라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 5일 경북연구원에서 유 원장을 만나 지방화시대를 위한 전략과 연구원 핵심사업 등에 대해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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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인재에 일자리 나눠주는
'디지털 새마을운동' 펼칠 시대
챗경북 축적 데이터 기반으로
언어모델 '기름' 개발 진행 중
오픈소스 AI 문제점 해소될 것
창작교육 객관성 등 고민하다
한국형 '스토리 헬퍼' 만들어
작가 호평 힘입어 AI 더 연구
▶대구경북연구원이 분리된 지 8개월이 지났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분리되면서 대구와 경북이 함께 하면서 누렸던 규모의 장점이 사라진 것이 아쉽다. 회의·영상 시설, 콜로키엄, 포럼 등 조직 축소가 불가피하고 예산 압박도 있다. 한편으론 좋은 점도 있다. 대구경북연구원이 출범했던 1991년 당시 국가의 전략예산은 7조6천억원이었다. 경북연구원이 분리된 2023년 국가 전략예산은 135조원이나 된다. 지금은 각 지역이 전략예산을 놓고 경쟁하면서 기획력을 발휘해야 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다. 이런 시대에는 한 연구원이 한 지자체의 정책 수요를 전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연구원이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사업을 하고 있다.
"연구원의 사업은 모두 '4차 산업혁명의 경북 이식을 통한 인구 소멸 대응'이라는 전략 목표 아래 움직인다. 제조업 기반이 강한 경북은 지식정보화, 지능화의 수용이 필요하다. 이제 산업단지에서는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다. 전 세계의 공장들이 테슬라의 스마트 팩토리처럼 무인화되고 있다. 로봇과 AI로 무인화하지 않으면 원가를 맞출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첫째 경북은 AI,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메타버스와 관련된 사업들을 수주해서 그것을 디딤돌로 인재를 데려오고 지역에 4차 산업혁명 기반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전 세계의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젊은 시절 적어도 몇 년은 한국에서 일하고 싶어서 줄을 서는 시대다."
▶역점을 두는 부분은.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의 '한·러 혁신센터', 현대경제연구원의 '유라시아 청년아카데미' 같은 사업들을 경북도 해야 한다. 수도권은 이미 AI 개발의 핵심능력인 수학과 물리학에 뛰어난 개도국 핵심인재, 즉 '전 세계에서 우영우 동생 찾기'에 뛰어들었다. 경북도 국내가 아닌 세계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경북연구원은 개도국 핵심인재 유치를 위한 △경북 광역비자법 추진 △CIS(옛 소련연방국가연합) 핵심인재 특채 등을 진행해 지역에 인재 영입의 통로를 마련하고 전파하려 한다. 또 하나는 지역에 일자리를 만드는 '디지털 새마을운동'이다. 충남 부여의 전통문화대는 룩소르박물관 등 이집트 6개 박물관을 디지털화하는 600억원 규모의 이집트 문화유산 디지털화 사업을 수행 중이다. 이 작업을 위해 3D 디지털 오브젝트를 만드는 젊은이를 고용하고 있다. 이 사례는 지방 소멸에 대응하는 중요한 방향성을 보여준다. 지역(로컬)은 글로벌과 직접 연결돼야 살길이 열린다. 그 살길은 우리보다 디지털 전환이 더 늦은 국가의 디지털 전환 사업에 있다. 지역에 이런 사업을 수행할 디지털 일자리 교육이 아르메니아의 투모센터처럼 혁신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1970년대에 수도권 산업화에서 소외된 지역의 부흥을 위해 철근과 콘크리트를 나눠주는 새마을운동이 있었다. 이제는 지방에 이집트 문화유산 복원 같은 일자리를 나눠주는 디지털 새마을운동이 필요하다."
▶최근 경북 자체 특화 AI 언어모델 개발에 나섰다.
"연구원은 이미 올해 3월9일 챗GPT 기반의 경북 정책개발 지원 인공지능 '챗경북'을 개발해 베타 테스트를 진행한 바 있다. 그 결과 8월23일 현재까지 5만4천여 건의 질의-응답 데이터 셋을 만들었고, AI 학습에 사용할 수 있도록 처리한 경북 행정 데이터 1억2천만 어절을 구축했다. 이런 데이터 기반을 마련한 결과 경북도 자체 특화 AI 모델 개발에 나설 수 있었는데, 그것이 경북연구원 초거대 언어모델(Gyoungbok-Institute Large scale Language Model)의 줄인 말 '기름(GI-LLM)'이다".
▶'챗경북'과 '기름'은 어떻게 다른가.
"현재 전 세계의 생성형 AI 산업은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처럼 자신의 파운데이션 모델을 공개하지 않는 클로즈드 소스 진영과 라마(LLaMa)의 소스 코드를 공개한 메타처럼 자신의 모델을 공개하는 오픈 소스 진영으로 양분된다. 기름은 서울대 국문과 출신의 AI 개발자 박규병 튜닙 대표가 만든 오픈소스 폴리 그랏 코(Polyglot_ko)를 기반으로 돌아가는 언어모델이다. '챗경북'과 '기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기름'은 '챗경북'의 개선된 버전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언어모델이다. 챗경북이 챗GPT를 파운데이션 모델로 했을 때 두 가지의 문제가 제기됐다. 첫째는 경북의 데이터가 미국에 서버가 있는 오픈 AI로 넘어감으로써 보안문제가 제기됐고, 둘째는 오픈 AI의 정책 때문에 모델 자체를 경북에 맞게 미세조정(파인 튜닝)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게 '기름'이다."
▶필명 이인화로 소설 '영원한 제국' 등을 집필한 국문학도 출신인데, 디지털 분야에 관심 갖게 된 동기는.
"23년간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서사 창작, 스토리텔링을 가르쳤다. 그러면서 서사 창작 교육이 객관성이 없고 교수의 경험치 내지 주관적 확신에 많이 의존하는 게 안타까웠다. 미국에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컴퓨터 프로그램 '드라마티카 프로'가 있다는 것을 알고 기계(컴퓨터)가 스토리를 어떻게 만드는지 알면, 사람이 스토리를 어떻게 만드는지 알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만든 것이 한국형 서사 창작 도구 '스토리헬퍼'였다. 스토리헬퍼는 많은 드라마 작가, 웹툰 작가, 웹소설가에게 호평받았다. 그래서 용기를 얻어 AI를 더 연구하다가 오늘에 이르렀다. 국문과 출신 중에 AI 개발자로 활약하는 사람이 많다. 국문과는 언어를 다루는 학문이고, AI도 결국은 자연어 처리를 하는 언어모델이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정책을 지원하는 기관이 아니라 남들이 모르는 예산과 법령의 빈틈을 찾아서 정책을 선도하는 것이 경북연구원의 역할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원장으로서 초기에 의도했던 소기의 성과는 어느 정도 거두었다고 본다. 앞으로는 경북도의회를 비롯한 도내 기관들과 더 많이 소통하면서 다양한 의견을 경청할 생각이다."
임성수기자 s018@yeongnam.com

임성수
편집국 경북본사 1부장 임성수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