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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검정 넥타이와 베르나르 뷔페

2023-09-19
김민석 대구화랑협회 총무이사
김민석 〈대구화랑협회 총무이사〉

얼마 전 온라인 쇼핑몰에서 심플한 단색 디자인의 진한 그레이 색상 넥타이가 마음에 들어 구입했는데, 실물을 받아보니 블랙에 가까운 색상이라 당황했었다. 검정에 가까운 단색 넥타이를 보니, 바로 연상되는 것이 장례식이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개성을 갖춘 젊은 세대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겠지만, 1980년대 이전의 세대들은 일상에서 검은색을 접하면, 필자처럼 먼저 장례식장과 죽음을 떠올리지 않을까 생각된다. 10년 전 필자가 봉산문화거리에서 갤러리 개관을 준비하며 건물의 외관을 블랙으로 페인트칠을 하고 있을 때였다. 동네 노인 분께서 역정을 내시면서 '상갓집도 아니고 동네 분위기 무겁게 왜 건물을 검은색으로 칠하느냐'고 나무라셨는데, 그때 그분의 생각이 지금 내가 이 넥타이를 접하면서 떠올리게 된 일종의 선입견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그런데 이것을 단지 개인이나 세대의 선입견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맞지 않는 것 같다. 세계미술사를 보더라도 이미 오래전부터 많은 화가들이 검은색을 죽음과 장례의 의미로 표현해 오고 있었고, 이것은 태초부터 인간의 삶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어둠이라는 공포가 안겨준 색채 문화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블랙을 위주로 한 우울한 무채색을 많이 사용한 대표적인 화가로는 '20세기 비운의 천재 화가'라 불리는 '베르나르 뷔페'가 있다. 그는 1차 세계대전이 막 끝났던 1928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고, 10년이 채 넘지 않은 유년기 시절에 2차 세계대전을 맞이했다. 그로 인해 공포와 고통, 혼돈의 그늘 속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게 되었으며 전쟁 종식 후 찾아온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 또한 그의 내면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그래서 그가 그린 인물화, 풍경화, 정물화 작품에는 검은 색채와 딱딱하고 날카로운 직선들이 주를 이루는 특징이 있다. 연인 아나벨을 만나 사랑과 행복이 충만하던 젊은 시절, 세계를 여행하며 캔버스에 담아낸 여러 도시들은 화려한 색상들로 채워져 있기도 했지만, 화가에게는 사형선고와 다름이 없었던 파킨슨병에 걸리면서 예정된 죽음이라는 공포 속에서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작품에는 또다시 블랙의 수많은 직선으로 표현된 어둠과 해골, 폭풍우 치는 바다 위의 난파선이 자신의 죽음과 감정을 암시적으로 보여주는 도구로 등장한다.

필자가 좋아하는 베르나르 뷔페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의 작품세계를 떠올리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시대적 환경이 인간 내면의 정서와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고, 행동을 지배하게 되는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김민석 〈대구화랑협회 총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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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대구화랑협회 총무이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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