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한 제정 부담, 사회적 갈등과 부작용 초래"
한덕수 국무총리가 29일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임시 국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
정부가 29일 야당이 단독으로 통과시킨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특별법' 등 쟁점 법안 4개에 대해 국회에 재의요구하는 방안을 윤석열 대통령에 건의하기로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열린 임시국무회의에서 "어제 국회에서는 그동안 정부와 여당에서 지속적으로 문제점을 지적해왔던 법안들을 수적 우위를 앞세운 야당이 단독으로 통과시켰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 총리는 "국가와 국민 전체의 이익을 수호해야 할 책무가 있는 정부로서는 막대한 재정 부담을 초래하는 법안, 상당한 사회적 갈등과 부작용이 우려되는 법안들이 일방적으로 처리된 것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 같은 법안들이 시행될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께 전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특별법'의 문제점에 대해 언급했다. 한 총리는 "어제 야당은 '선(先) 구제 후(後) 회수 지원방식'을 골자로 하는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특별법' 개정안을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며 "이 법이 시행되면 임차보증금반환채권 매입에 수조 원의 주택도시기금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며, 투입 비용의 상당액은 회수도 불투명해 기금 부실화가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역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총리는 "민주유공자를 선정하는 기준과 절차가 명확하지 않아 대상자 선정이 자의적으로 이루어질 소지가 크다"며 "민주유공자 예우를 통해 민주주의의 숭고한 가치를 널리 알리고 민주주의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입법 취지를 달성하기 보다는, 국론 분열과 갈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농어업회의소법' 역시 받아 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한 총리는 "농어업인의 의견 수렴과 정책결정 참여를 위해 농어업회의소를 법제화하겠다는 내용이지만, 시범 운영 단계부터 농어업인의 참여율이 낮고, 지자체에 대한 재정의존도가 높아 관변화할 우려가 높다는 지적이 그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제정안이 시행될 경우 지자체뿐만 아니라 국가의 재정에도 의존하게 되어 관변화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며 "농협·수협 등 기존 농어업인 단체와 역할 및 기능 중복으로 비효율과 갈등도 커질 것이다. 이 같은 이유로 대부분의 농어업인단체도 농어업회의소 법제화에 반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속가능한 한우산업을 위한 지원법' 제정안의 경우 형평성 문제가 있다고 봤다. 한 총리는 "한우 산업만을 특정해서 경영지원금 등을 지원하는 법으로서, 돼지·닭 등 여타 축종 농가들과의 형평성에 어긋날 우려가 크고, 균형 잡힌 축산정책 추진에도 장애가 될 것"이라며 "축산업 수급 불균형 및 농가 경쟁력 약화, 축종별 산업지원법 난립 등 상당한 부작용도 우려된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에게 국회 재의요구를 건의하기로 했다. 다만 전날 국회를 함께 통과한 '4·16세월호참사피해구제지원특별법' 개정안은 공포안을 심의의결했다. 개정안은 세월호 참사 피해자의 의료비 지원 기한을 5년 연장하는 내용으로 5개 쟁점 법안 중 유일하게 입법이 완료됐다.
윤 대통령이 21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는 이날 중으로 재의요구안을 재가할 경우 4대 쟁점 법안은 국회 재의결을 하지 못해 자동 폐기 수순을 밟게 된다. 대통령이 일명 '거부권'으로 불리는 재의요구권을 행사한 법안은 국회에서 재의결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21대 국회에서 재의를 요구한 안건은 22대 국회에서 의결할 수 없다.
한 총리는 "충분한 사전협의와 공감대 없이 통과된 법률안이 국민에게 부담을 줄 것이 자명한 상황에서, 국정운영의 책임이 있는 정부로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이번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무거운 마음으로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구경모기자 chosim34@yeongnam.com
구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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