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240605010000685

영남일보TV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발자취…그들은 대구를 위해 뭉쳤다

2024-06-06

대구지역 현충시설 48곳. 앞산 충혼탑 외 대중에 알려지지 않은 현충시설 많아

경북고 학도병 등 6.25참전기념비, 나야 대령 기념비, 국채보상운동 여성 기념비 등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발자취…그들은 대구를 위해 뭉쳤다
경북고, 상원고, 계성고, 대구공고에 세워진 6·25 참전 기념비(맨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대구보훈청 제공>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하고, 이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기간이다. 조국 독립 및 국가 수호 정신이 깃든 대구에 조성된 현충 시설은 모두 48곳이다. 앞산 충혼탑 등 익히 알려진 현충 시설도 있지만, 현대사에서 대중에게 조명받지 못한 시설도 존재한다. 국가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순국선열' '호국영령'과 이들을 기리는 현충시설을 재조명해 본다.

◆국가 수호에 나선 학도병
1950년 6·25전쟁 당시 대구에서는 10대에 불과한 학생들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희생을 자처했다. 이들은 북한군의 침략에 맨주먹으로 맞섰다. 아군의 후퇴 및 방어, 반격 및 북진에도 관여해 고향인 대구를 지켜냈다. 또 38선 인근 고지 쟁탈전·빨치산 토벌 작전 등에 참여하는 애국심을 보였다.


대구지역 각 고등학교에서는 참전 유공자들의 명예를 선양하고, 자긍심을 고취하고자 기념비를 세워 이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6·25전쟁 참전 기념비(6·25전쟁 참전 호국영웅명비)가 세워진 학교는 모두 4곳이다. 지난 2016년 5월 경북고를 시작으로 2016년 10월 상원고, 2017년 12월 계성고, 2018년 10월 대구공고가 기념비를 만들었다. 남구 앞산 충혼탑에도 학도병을 기리는 기념상이 건립(1979년 5월)돼 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발자취…그들은 대구를 위해 뭉쳤다
나야 대령 기념비(왼쪽)와 헤스 대령 기념비. <대구보훈청 제공>
◆이국땅 '대구'에 잠든 이방인
6·25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낯선 이국땅을 밟은 이방인들의 영혼도 대구에 깃들어져 있다.
수성구 범어동에는 인도 출신 '나야' 대령의 희생을 추모하기 위한 기념비(1950년 12월 건립)가 있다. 나야 대령은 국제연합한국위원단 인도 대표로 낙동강 전투에 참여해 1950년 8월 12일 칠곡 왜관 근처에서 지뢰 폭발로 사망했다. 나야 대령 기념비는 2003년 9월 국가 수호 현충시설로 지정됐으며, 2018년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에 등재됐다.


6·25전쟁 당시 고아수송작전을 수행한 '헤스' 대령의 기념비는 1963년 1월 건립됐다. 현재 동구 제11공군전투비행단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헤스 대령은 중공군의 남침으로 후퇴하던 1950년 12월 미 공군 수송기를 이용해 1천 명에 달하는 전쟁고아들을 모두 제주도로 피신시킨 주인공이다. 미국에 돌아간 뒤에도 한국 전쟁 고아들을 위해 자금을 대며 인도적 활동에 힘쓴 것으로 알려졌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발자취…그들은 대구를 위해 뭉쳤다
국채보상운동 여성 기념비(왼쪽)와 대구교남YMCA회관. <대구보훈청 제공>
◆'애국 계몽' 정신의 산실
대구 중구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는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기념비(2006년 2월 건립)가 조성돼 있다. 기념비의 주인공은 국채보상운동 당시 비폭력 항일 정신을 일깨운 '남일동 7부인회'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1월 애국계몽단체인 대구 광문회를 통해 발단된 주권 수호 운동이다. 국채를 갚고 국권을 지키고자 대구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확산했다.


국채보상운동은 남성 못지않게 대구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여학생, 가정집 부인, 기생 등 다양한 여성군이 참여한 가운데 '남일동 7부인회'가 비녀와 반지 등 보석을 국채보상금으로 헌납하며 여성 참여의 기폭제가 됐다.


1914년 건립된 대구교남YMCA회관도 애국 사상을 고취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회관은 일제 강점기 대구 3·8 독립만세 운동 당시 주요 지도자들의 회합 공간이었으며, 독립유공자들의 활동 거점으로 통했다. 특히, 물산장려운동·기독교 농촌운동 등 민족 운동의 태동이 된 역사적 장소였다. 2013년 그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 제570호, 한국 기독교사적 15호로 지정됐다.


대구보훈청 관계자는 "대구지역 선열들의 헌신과 희생정신을 선양하는 일은 한치의 부족함도 없어야 한다. 정부에서도 현충 시설 활성화에 고삐를 죄는 만큼 이들의 숭고한 뜻을 알리는 데 대구보훈청도 힘을 보탤 것"이라고 밝혔다. 

 

이동현기자 leedh@yeongnam.com

기자 이미지

이동현

산소 같은 남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관련기사

사회 인기기사

영남일보TV

부동산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