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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易地思之] 윤석열·이재명의 '적대적 공생'

2024-06-18

야당이 여론역풍 걱정 않고
당당하게 탄핵 주장하는 건
초심 잃어버린 대통령 때문
지금 달라진 모습을 보이면
이대표·민주당이 이러겠나

[강준만의 易地思之] 윤석열·이재명의 적대적 공생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전 국회 사무총장 유인태는 더불어민주당의 원로다. 올해 만 76세. 여야를 가리지 않고 쓴소리를 잘하는 걸로 유명한데, 그가 남긴 주옥같은 명언들이 많다. 단지 옳은 말만 잘하는 게 아니다. 미소를 자아내게 만드는 유머에도 능하다. 노무현 청와대의 정무수석 시절 대통령과 회의를 하면서도 조는 것으로 유명해 '엽기 수석'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는데, 그는 "내 졸음은 유전"이라고 했다. 슬프면서도 웃음을 자아내게 만드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유인태의 모친은 1974년 민청학련 사건 재판 때 판사가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순간에도 졸고 있었다고 한다.

유인태는 대인배다. 그는 2016년 2월 민주당의 컷오프(하위 20%) 대상에 올라 공천 심사에서 배제됐지만 "평소 물러날 때를 아는 게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했다. 저의 물러남이 당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깨끗이 결과에 승복했다. 그는 '중앙일보'(2016년 2월26일자) 인터뷰에서 "국회에서 하고 싶었으나 못 이룬 일은?"이란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분권형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이다. 그게 되지 않고는 나라가 암담하다. 양당제의 폐해는 지역주의 말고도 양극단으로 원심력이 작용한다는 데 있다. 중도 보수, 중도 진보가 극우·극좌의 눈치를 보게 된다. 진영논리가 극심해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4년 뒤에는 다 몹쓸 사람이 된다. 사사건건 모든 걸 대립하고 에너지를 거기만 쏟으니 정치 혐오·반(反)정치 문화로 이어지고."

"4년 뒤에는 다 몹쓸 사람이 된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최근 여야가 경쟁적으로 '몹쓸 사람 만들기 경쟁'을 벌이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민주당에선 대표인 이재명 맞춤형 당헌·당규 개정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국회의장과 원내대표 선출 때 당원 투표 20% 반영, 당권·대권 분리 규정에 예외,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될 경우 당무 배제 규정 삭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게 말이 되나? 말이 안 된다는 게 유인태의 생각이다.

유인태는 지난 13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도대체 국회의장, 원내대표를 뽑는데 당원 20% 반영한다니, 해괴망측한 소리"라고 혀를 찼다. 이어 "당원권 강화도 한계와 선이 있다. 그 사람들이 당의 주주냐"라며 "정당 운영에서 당원들이 내는 당비보다 국민 세금이 훨씬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당비 좀 내는 강성 당원 목소리로 이렇게 끌고 가는 게 맞냐"고 물었다.

유인태는 "그동안 당원 투표해서 잘된 일이 뭐가 있냐, 서울시장, 부산시장 후보는 귀책사유 있으면 안 낸다고 했는데 당원 투표해서 그 난리를 쳐 (후보를 냈다가 졌고) 위성정당 등 고약한 짓 할 때만 당원 투표를 거쳤다"며 그래서 "해괴망측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재명 대표도 이건(당권·대권 분리규정)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는데도 깃발 부대, 힘 있는 사람 깃발만 자꾸 바꿔 드는 친구들, 지금 그런 사람들이 설치는 세상이 됐다"며 일부 강성 친명 의원들을 강하게 꾸짖었다.

또 유인태는 "대통령이 '내가 거부권 행사 안 하게 국회에서 타협하는 정치를 좀 해달라'고 해야지 '거부권 예산권을 적극 활용하라'는 게 말이 되냐, 정치를 포기하라는 얘기 아니냐"며 "지난 2년간 (여야가) 서로 못하기 경쟁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달라진 모습을 보이면 이재명 대표나 민주당이 지금 같은 그따위 짓을 하겠는가"라고 했다. 윤 정부나 민주당 모두 똑같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저렇게 해도 되는 게 든든한 분이 있기 때문"이라며 "윤석열 대통령, 김건희 여사가 저러고 있으니까 그것만 믿고 막 까분다"고 어이없어했다. (뉴스1 6월13일자)

구구절절이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명언이다. 양쪽이 특정인의 사적 이익이나 일시적인 정파적 이익을 위해 벌이는 '서로 못하기 경쟁'은 '적대적 공생'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적대적 공생은 적대적 관계에 있는 쌍방이 사실상 서로 돕는 관계라는 뜻인데, 이는 의도하지 않은 구조적 결과일 뿐 양쪽 모두 그 어떤 의도를 갖고 그러는 건 아니다. 그래서 서로 증오하면서 원수처럼 싸우는 관계에서도 서로 도우면서 각자의 기득권을 지키거나 강화하는 역설이 가능해진다.

자폐적인 진영논리와 선악 이분법에 중독된 사람들은 오직 상대편에 대해서만 비난을 퍼부을 뿐, 자기편의 문제에 대해선 눈을 감고 침묵한다. 이들을 선동하는 강성 정치군수업자들은 유튜브 등을 매개로 산업적 규모의 번영을 누리면서 이 파괴적인 질서를 지속시킨다. 그래서 싸우는 양쪽 모두 상대편에 대한 증오만 선동하면 무슨 짓을 저지르더라도 자기편의 안전이 보장되는 기막힌 일이 벌어진다. 유인태는 그간 그런 문제를 일관되고 끈질기게 비판해왔다. 이런 원로가 있다는 건 진보 진영은 물론 우리 모두에게 축복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보수 진영엔 유인태와 같은 원로가 없다.

야당들이 그 어떤 여론의 역풍도 걱정하지 않은 채 당당하게 대통령 탄핵을 주장할 수 있게끔 만든 사람이 누구인가? 윤석열·김건희라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데 이들은 제대로 된 성찰도 없고 변화도 없다. 윤석열은 2013년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라는 명언으로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지만, 대통령이 된 후 공적 마인드가 없는 부인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바침으로써 여론을 극도로 악화시키는 동시에 국정운영에 심대한 지장을 초래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무슨 과오를 저질렀는지 그걸 깨닫지 못하고 있다.

보수 진영의 원로들이 나서서 한목소리로 윤석열에게 "왜 대통령이 됐느냐"고 호되게 꾸짖으면서 원래 약속했던 '공정과 상식'을 위해 목숨을 걸라고 요구했다면 어땠을까? 대통령의 권력이 막강한 것 같아도 민심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순간 아무 쓸모가 없다는 역사의 교훈을 들려주면서 겸손해질 것을 강하게 압박했더라면 어땠을까? 현직에서 활동하는 정치인·관료들이 직접 그런 말을 하기 어렵다는 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원로들이 도대체 잃을 게 뭐가 있다고 대통령이 자멸의 길로 치닫는 걸 그대로 방관했어야 했단 말인가? 정치와 민생을 집어삼키는 증오·혐오 소용돌이의 악순환을 이젠 정말 끝내야 하지 않겠는가.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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