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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주말&여행] 경남 김해 '분산성', 발밑엔 김해평야…장졸의 책임감 얼마나 무거웠을까

2024-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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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문 밖에 서면 왼쪽으로는 견고한 성벽이 남문지 방향으로 상승하며 요동치는 모습이 보인다.

해은사 100m 이정표를 따라 큼지막한 돌들이 나름 발판이 되어주는 좁은 산길을 치고 오른다. 5분도 채 되지 않아 이끼 낀 돌들이 성곽의 형태를 드러내는 산성이 나타난다. 성벽 앞에 '분산성' 표석이 있다. 옛 지도를 보면 이곳이 북문지다. 휘어진 성벽을 따라 들어가면 오래되어 폐허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성벽이 서쪽으로 미끄러지듯 내달린다. 그리고 이내 비교적 평평한 땅에 내려선 성벽은 -넘어진 사람이 쓱 일어나 별일 아니라는 듯 툭툭 옷매무새를 고치고 갈 길을 가듯- 반듯하게 일어나 남쪽으로 향한다.

삼국시대 축성 추정…총길이 929m
고려말 박위 장군이 왜구 침입 대비
형태만 남았던 산성 돌로 다시 쌓아
반듯한 現 모습 김해시가 복원한 것

가락국에 온 인도 아유타국 허왕후
바다의 은혜 생각하며 해은사 지어
적멸보탑에는 진신사리 3과 봉안 중

◆분성산 분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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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어진 성벽을 따라 들어가면 오래되어 폐허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성벽이 서쪽으로 미끄러지듯 내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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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산성 서문지. 서문은 암문으로만 복원되었는데 고지도에는 문루가 표시되어 있다. 지금 이 암문은 유명한 포토스폿으로 주말이면 줄을 서야 한다는 곳이다. 서북 30m 구간은 옛 모습대로 보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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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문 밖에 서면 오른쪽으로 북문지 방향으로 이어지는 오솔길과 그 위로 수직으로 솟구친 성벽이 보인다.

위험하니 성벽에 오르지 말라는 안내판이 여럿이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이곳에 와서 성벽에 오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경고에 대한 약간의 예의를 갖추기 위해 성 안길을 따라간다. 말끔한 잔디밭의 모습으로 보호되고 있는 곳은 물을 모았던 집수지 터다. 이곳에서 조선 전기의 분청사기와 백자가 수습되었다고 한다. 뒤 돌자 서문의 암문과 마주한다. 휘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결국 서문 위를 오르고야 만다. 성벽 너머로 펼쳐지는 김해의 모습은 굉장하다. 김해에 대한 지리감이 많이 부족하지만 저 멀리 보이는 들판이 김해평야인 것은 알겠다. 가까운 도심 속의 너른 숲은 수로왕릉과 봉황동유적이고 또 수로왕비릉이다. 봉분은 보이지 않지만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능역은 무엇보다 선명하다.

분성산(盆城山)은 높이 382m로 김해의 주산이다. 과거에는 '분산'이라 했다. 그래서 분산에 쌓은 성이라 분산성이다. 산정을 빙 둘러 타원형으로 쌓은 테뫼식 산성으로 총길이 929m, 성곽의 폭은 평균 8m에 이른다. 누가 언제 처음 쌓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삼국시대로 추정된다. 관련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약 640년 전의 것으로 고려 말 우왕3년인 1377년, 박위(朴蔿) 장군이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형태만 남아있던 산성을 돌로 다시 쌓았다는 내용이다. 이후 성은 임진왜란을 겪으며 무너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다 조선 말 고종 8년인 1871년에 김해부사 정현석이 다시 쌓았고, 현재의 반듯한 모습은 김해시가 현대에 복원한 것이다. 북문지의 무너진 성곽은 일부러 남겨둔 것이라 한다.

서문은 암문으로만 복원되었는데 고지도에는 문루가 표시되어 있다. 지금 이 암문은 유명한 포토스폿으로 주말이면 줄을 서야 한다는 곳이다. 암문을 통과하다 천장에 붙어 있는 크랙게이지를 발견하고는 조금 죄책감을 느낀다. 암문 밖은 작은 대다. 오른쪽으로 북문지 방향으로 이어지는 오솔길과 그 위로 수직으로 솟구친 성벽을 본다. 왼쪽으로는 견고한 성벽이 남문지 방향으로 상승하며 요동치는 모습을 본다. 발밑은 벼랑이고, 뒤돌아보면 암문의 텅 빈 공간이 나를 떠밀 듯 내려다보고 있다. 장군이든 졸병이든, 이곳에 서 있었던 사람의 책임감은 얼마나 외롭고 무겁고 두려운 것이었을까.

◆진아가 있던 산정

남쪽으로 오른다. 눈에 보이는 성벽 끝에 커다란 바위가 놓여 있고 그 위로 붉은 깃발을 단 파란색의 산림초소가 병사처럼 자리한다. 그러나 바위가 있는 고지로는 오르지 못한다. 아래에 공사안내판과 안전제일 가림막이 있고 주변이 어수선하다. 바위 봉우리를 에둘러 가볼까 아주 잠깐 생각을 했지만 초행자는 선명한 길을 따르기로 한다. 산정의 오솔길은 돌들이 열 지어 놓인 깨끗한 풀밭 사이를 지나간다. 서쪽과 남쪽 일부, 동쪽까지 시야가 열리는 곳이다. 이 일대에 진아(陣衙)가 있었다. 군 관리들이 업무를 보던 건물과 곡식창고, 무기고 등 건물터 5동이 발견되었는데 비교적 최근인 2020년 초의 일이다.

진아 터 한쪽에 충의각이 자리한다. 비각 안에는 분산성의 수축 내력을 기록한 비석이 있다. 박위 장군의 사적비, 고종 때 분산성 보수를 허락해 준 흥선대원군의 불망비와 분산성의 내력을 새긴 비, 그리고 정현석의 공을 기리는 불망비 이렇게 4기로 모두 고종 때 세운 것이다. 비석에는 고려 말 정몽주에 관한 글도 새겨져 있다. 그는 박위의 축성을 치하하면서 '가야의 옛터에 세워진 새 성에서 술을 들고 축하하겠다'고 했다 한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삼림초소 너머 남쪽에 흥선대원군이 직접 새겼다는 만장대(萬丈臺) 각자와 봉화대가 있다. 진아 터에서 동남쪽으로 빙 둘러 가는 모험을 했더라면 만장대와 봉화대는 물론 동문지와 남문지까지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등 부질없는 아쉬운 생각을 하며 이를 꽉 문다.

◆ 가락국의 원찰, 해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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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은 옴폭 내려앉았다가 금세 다시 훌쩍 올라선다. 그 높은 자리에 작은 절집 해은사(海恩寺)가 있다. 약 2천년 전 가락국이 건국되고 7년 후, 지금의 인도 아유타국에서 허왕후와 오빠 장유화상이 배에 불경과 파사석탑을 싣고 바다를 건너 가락국에 도착했다. 허왕후는 많은 풍랑과 역경에도 무사히 도착하게 해 준 바다의 은혜를 생각하며 해은사를 지었다고 한다.

해은사는 가락국의 원찰로서 2천년 동안 많은 전쟁과 화재로 사라지고 복원되고를 거듭했다. 임진왜란 때에는 이곳에 승병이 주둔했다고 전한다. 불이문 속에 대왕전이 보인다. 전각 안에는 푸른 용포를 입은 수로왕과 풀빛 저고리를 입은 허왕후의 영정이 걸려 있다. 해은사 영정을 바탕으로 표준 영정을 제작했다고 하는데 사뭇 다른 모습이다. 영정 앞에는 허왕후가 가져왔다는 봉돌이 있다. 하얀 그릇이 알 품은 듯하다.

대왕전 왼편에는 대웅전과 종무소가 있다. 오른쪽 뒤편에는 산신각과 파사석탑을 본뜬 적멸보탑이 있는데 보탑에는 진신사리 3과가 봉안되어 있다. 약 2천600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들고 남겨진 진신사리는 천상과 인간 세상 8곳에 골고루 나누어졌다. 그 가운데 일부가 중국 송나라의 방자면, 소철, 소동파에게 전수되었고 금·원·명대를 지나 청나라 옹방강, 그리고 25세의 젊은 추사 김정희에게 전해졌다. 이후 불사리는 혜장과 초의선사를 거쳐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이곳에 봉안되었다 한다. 진신사리 2천600년의 여정이 이처럼 소상하다. 보탑을 세 바퀴 돌면 어떤 소원도 다 이뤄진다고 한다.

이곳에서 낙동강과 하구해안까지 조망된다. 희미하지만 을숙도와 다대포해수욕장, 몰운대까지 짐작된다. 분산성의 노을을 '왕후의 노을'이라 부른다. 운명의 짝을 찾아 이역만리 타국 땅으로 온 허왕후가 바라보았던 노을이다. 보탑 가장자리에 한 여인이 철퍼덕 앉아 있다. 길이 고단했던지 먼바다를 향한 몸이 흩어질 듯하다. 가만히 분산성을 떠난다. 보탑을 세 번 돌지도 않은 채.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허왕후가 바다의 은혜를 생각하며 지었다는 해은사. 불이문 속에 대왕전이 보인다. 전각 안에는 수로왕과 허왕후의 영정이 걸려 있고 허왕후가 가져왔다는 봉돌이 있다(왼쪽). 대왕전의 오른쪽 뒤편에는 자손번창에 영험이 있다는 남근석과 산신각, 파사석탑을 본뜬 적멸보탑이 자리한다. 보탑에는 진신사리 3과가 봉안되어 있다.

■ 여행 Tip

대구부산고속도로 삼랑진IC에서 내린다. 58번 국도를 타고 김해 방향으로 가다 사촌삼거리에서 좌회전해 계속 직진, 가야랜드 초입에서 분산성, 김해가야테마파크 쪽으로 우회전해 들어간다. 가야테마파크 지나 계속 직진하면 해은사 600m 이정표가 있는 곳에 분산성주차장으로 알려져 있는 공간이 있다. 칡생즙 트럭이 주차장의 상징으로 통한다. 조금 더 직진하면 도로가 끝나고 임도가 시작되는데 서너 대가 주차할 수 있는 갓길 공간이 있다. 더 욕심을 내면 해은사 100m 인근까지 갈 수 있지만 추천하지는 않는다. 분산성주차장이나 가야테마파크주차장을 이용해 해은사 이정표를 따라가면 아이들도 오를 수 있는 좋은 길이 있다. 분산성주차장에서 분산성까지는 10~15분 내외이며 주차료나 입장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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