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TSMC 독보적 존재감
축구협회는 파행·뒷걸음질
끈적한 '학연 카르텔' 배회
국대감독 선임 절차적 하자
실력 경쟁 양궁협회와 대조
논설위원 |
TSMC는 AI 시대와 함께 뜨는 기업이다. 이달 8일엔 아시아 기업 중 최초로 장중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돌파했다. 삼성전자 시총의 2.5배다. 2023년 기준 528개 고객사 1만1천895종의 반도체 칩을 주문 생산하는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다. TSMC는 국부 창출을 넘어 안보 방패 역할까지 수행한다. 반도체 밸류 체인 붕괴를 우려해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지 못할 거라는 얘기가 나오니 말이다.
반도체 불모지 대만에서 어떻게 이런 독보적 기업이 탄생했을까. 오롯이 모리스 창의 리더십이 그 동력이다. MIT 학사·석사, 스탠퍼드대 박사 출신 창은 25년 동안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에서 근무했다. 대만으로 귀국한 모리스 창은 1987년 TSMC를 창업한다. 전례 없는 사업 모델 파운드리 역시 창의 아이디어다. 전략적 변곡점마다 그의 통찰력은 적중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2009년 연구개발 및 설비투자를 확대했다. 스케일 업, 위기 돌파, 선제적 투자로 웅변되는 모리스 창의 경영철학은 이를테면 정주행 리더십이다.
역주행 리더십도 있다. 소통을 단절하고 파벌을 조장하며 절차적 정당성을 외면하고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퇴행적 리더십 말이다. 이걸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제대로 시전했다. 축구협회의 파행과 뒷걸음질은 정 회장 재임 기간과 맞물린다. 다짜고짜 홍명보 국가대표 감독 선임은 정몽규의 독선과 불통 리더십의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왜 홍 감독 선임이 비난받아야 할까. 절차적으로 정당하지 않고 선임 과정이 불투명하며 공정성을 훼손했기 때문이다. 전력강화위원회는 구색 맞추기였나. 위원들은 호구에 불과했나. 5개월 동안 외국인 감독 뽑는다고 호들갑 떨더니 왜 갑자기 삼천포로 빠졌나. "감독 선임 과정에서 위원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박주호 전력강화위원)
정해성 전력강화위원장이 사퇴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이임생 기술총괄이사가 독단으로 홍 감독을 선임하고는 "회장님이 알아서 결정하라고 하셨다"고 부연했다. 국가대표 감독 결정을 회장과 기술이사 마음대로? '봉숭아 학당'도 아니고. 외국인 감독 수준의 연봉과 삼고초려는 또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평판 있는 외국인 감독들 수두룩한데 10년 전 실패한 감독 모시려고 안달복달 했다? 납득하기도 수긍하기도 어렵다. 계약금과 연봉은 왜 공개하지 않나. 감독 선임 며칠 전까지 축구협회를 강하게 비난했던 홍 감독의 복심(腹心)은 뭔가. 이 모든 게 짜고 치는 고스톱?
정 회장을 비롯해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 특정대학 출신이라는 사실도 계면쩍다. 끈적한 '학연 카르텔'이 축구협회의 시스템을 무력화하곤 했다. 대한양궁협회는 달랐다. 오직 실력만으로 국가대표 선수를 뽑는다. 여자단체 올림픽 10연패 신화는 우연이 아니다. 공정 모토의 양궁협회는 축구협회의 푯대다. 축구인들의 지적대로 "협회의 리더십과 행정 시스템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김승수(대구 북구을) 국민의힘 의원은 홍 감독의 과거 행적과 자질을 거론하며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축구협회 감사에 나선 문체부의 책임이 커졌다. 홍 감독 선임 외에 클린스만 감독 선임 과정도 들여다본다는데 월권 및 밀실 논의, 짬짜미, 절차적 하자를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국회 국정조사나 국정감사까지 하는 게 옳다. 무능한 리더십이 조직을 망친다면 끌어내리는 게 상책이다.
박규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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