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전위적 작가집단 꿈 펼치던 곳…50년 전 낭만 아직 그대로
지난해 가을에 열린 '달성 대구현대미술제' 전시 장면. 매년 이 미술제가 열리면 강정보 디아크 광장 일대는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변신한다. <달성문화재단 제공> |
'지붕 없는 미술관'이란 말 들어보셨나요? 실제로 매년 가을이면 강정보 디아크 광장 일대는 '지붕 없는' 대규모의 현대미술 전시장으로 변신하곤 합니다. 바로 이곳을 대표하는 야외 미술 축제 '달성 대구현대미술제'가 열리기 때문이죠. 낙동강과 금호강이 펼쳐진 산책로 위에 거대한 모습으로 우뚝 선 현대미술 작품들은 이제 이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독특한 풍경으로까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매년, 이 미술제가 열리는 기간이면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곤 합니다. 산책로를 따라 사람들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작품을 감상하는 모습도 쉽게 만날 수 있죠. 그렇게 보면 적어도 이곳에선 '현대미술은 어렵다'는 말은 통용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미술을 즐긴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 모르죠. 이처럼 '달성 대구현대미술제'는 '현대미술'을 디아크 일대의 드넓은 풍경과 함께 선보임으로써, 매년 많은 사람이 '미술'을 보다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이곳 일대는 또 한 번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변신할 예정입니다. '2024 달성 대구현대미술제'가 9월7일부터 10월6일까지 이곳에서 개최됩니다. 이번 미술제에서는 야외는 물론, 디아크 문화관 내부에 이르기까지 곳곳에서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데요. 올해도 많은 현대미술가들이 참여해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색다른 전시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특히 원로작가에서부터 젊은 작가들에 이르기까지 30여 명의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데요. 이렇게 매년 수많은 작가들을 이곳 강정보로 모이게 하는 '달성 대구현대미술제'. 그런데 여기서 의아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작가들을 불러 모으며 어느덧 대구를 대표하는 야외 미술 축제로 자리매김한 이 미술제. 그런데 이 미술제는 왜 하필 이곳에서 열리고 있는 걸까요? 그리고 매년 왜 이 수많은 현대미술가들을 다름 아닌 이곳에 모이게 하는 걸까요?
1970년대 대구를 실험과 전위미술의 중심으로 만들었던 1974년 제1회 대구현대미술제 포스터. <달성문화재단 제공> |
◆1970년대 대구에서 시작된 현대미술의 움직임
말이 나온 김에 이 '현대미술'에 관한 이야기를 잠깐 해보죠. 혹시 우리 미술계에서 '현대미술'로 대변되는,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작가들의 움직임이 가장 두드러진 시기가 언제인지 아시나요? 바로 '1970년대'입니다. '유신정권' '산업화' 등으로 대변되는 이 시기가 오히려 미술계에선 '실험'과 '전위'가 두드러진 시기였죠.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또 있습니다. 그런 실험과 전위의 중심에 '대구'가 자리하고 있었다는 거죠. 그 이유는 다름 아닌, 1974년 대구에서 개최된 한 미술제로부터 찾을 수 있습니다.
그 미술제가 바로 '대구현대미술제'였죠. 눈치채셨겠지만, 매년 가을 디아크 일대에서 열리는 미술 축제의 '전신'이 바로 당시 이 미술제였습니다. 1974년 제1회를 시작으로 1979년까지 총 5회에 걸쳐 열린 '대구현대미술제'는 적게는 60여 명에서 많게는 200여 명에 이르는 당대의 실험적인 작가들이 참여한 대규모 미술제였습니다. 이강소, 황현욱을 비롯해 김기동, 김영진, 박현기, 이명미, 이묘춘, 이향미, 이현재, 황태갑 등 대구 출신의 젊은 작가들이 모여 지역을 무대로 기획한 새로운 시도였죠.
무엇보다 이 미술제는 당시로써는 드물게, 이러한 현대미술의 집단적인 움직임이 '서울'이 아닌, '대구'라는 지역으로부터 펼쳐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1970년대 우리 미술계의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도 꼽히고 있습니다. 실제로 '대구현대미술제' 이후, 당시 전국 각지에서도 이러한 형태의 대규모 현대미술제가 차례로 열리기 시작했죠. 이로 인해 '대구현대미술제'는 1970년대 우리 사회의 경직된 분위기와는 상반된, 당대 역동적인 미술계의 움직임을 끌어낸 중요한 출발점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매년 가을 디아크광장은 '지붕 없는 미술관'…대구 대표 미술제 자리매김
1974년 이곳서 '대구현대미술제' 첫발…산업화시기 5년간 실험예술의 장
내달7일부터 '달성 대구현대미술제'…'그래도 낭만' 주제 30여명 작품 소개
◆오늘날 미술제가 이곳에서 열리는 이유
특히 1977년 제3회 미술제에선 낙동강 강변에서 독특한 '야외 이벤트'를 선보이기도 했는데요. 이는 당시로선 가장 전위적인 형태의 '행위예술'을 선보이는 자리였죠. 이 무렵 국내 화단에서는 보기 드물게 전위적이고, 또 집단적인 현대미술 이벤트라는 점에서 당시 언론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이벤트가 펼쳐진 장소가 바로 오늘날 미술제가 열리는 이곳 '강정'이었죠. 또한, 이후로도 이곳은 1979년 마지막 제5회 미술제의 야외 이벤트를 비롯해 1980년대 초 여러 작가들의 실험적인 작업이 펼쳐지는 무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다시 말해 당시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현대미술을 선보이는 작가들에게 있어 이곳 '강정'은 하나의 상징적인 장소가 될 수밖에 없었죠.
오늘날 '달성 대구현대미술제'가 다름 아닌, 이곳 '강정'에서 열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2012년 이곳에서 다시 열리기 시작한 이 미술제는 이처럼 1970년대 대구에서 시작돼 우리 미술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친 동명의 미술제로부터 출발하고 있습니다. 매년 수많은 현대미술가들을 이곳으로 모이게 하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죠. 마치 이전의 미술제가 그러했듯 매번 우리를 놀라게 하는 색다른 현대미술 작품들을 선보이면서 말입니다.
지난해 '달성 대구현대미술제' 전시 장면들. <달성문화재단 제공> |
◆50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작가들의 '낭만'
올해 열리는 '2024 달성 대구현대미술제'는 그래서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1974년 제1회 미술제가 열린 지 50주년을 맞은 해이기 때문이죠. 이에 걸맞게 이번 미술제는 50년 전 대구에서 펼쳐진 '현대미술'의 중요한 흔적이 오늘날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살펴볼 예정입니다.
올해 미술제의 주제는 '그래도 낭만(against all odds)'입니다. 1970년대 대구에서 펼쳐진 작가들의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활동은 사실 '낭만' 그 자체였는지도 모릅니다. 그건 젊은 작가들이 한데 모여 난데없이 '행위예술'을 펼치고,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들을 당당히 선보일 수 있었던 이유기도 했죠.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의 삶에도 50년 전 이들이 보여줬던 그런 '낭만'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을까요?
어쩌면 올해 미술제는 그런 '낭만'으로부터 멀어진 오늘날 우리를 돌아보게 할지도 모릅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낭만'을 지향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서 말이죠.
이번 미술제를 기획한 강효연 예술감독은 "낭만은 '로맨스'보다는 '꿈'과 '도전'에 가까운 말이다. 50년 전 대구현대미술제만 봐도 그렇다. 작가들은 언제나 그런 '낭만'을 지향하는 이들이다. 무엇보다 그런 '낭만'은 항상 불가능한 꿈의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예술을 통해 어떻게든 그 꿈을 실현하려는 이들의 모습이 어쩐지 오늘날 우리에게도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불가능한 꿈에 도전하는 낭만. 이번 미술제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들은 그래서 '자연'이나 '인체' '물질' 등이 지닌 본질적인 형상과 닿을 수 없는 꿈이 만나는 지점들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이렇게 상징적이면서도 거대한 작품들이 우뚝 서 있을 모습을 상상하니, 뭐랄까 '꿈'을 향한 누군가의 '도전'을 지켜보는 사람처럼 벌써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합니다.
야외 전시에서는 임현락, 김희선, 리우, 신강호 등의 대구 작가들을 비롯해 권오상, 진기종, 이진준 등 총 19명의 작가들이 작품을 선보입니다. 특히 이 가운데는 1974년 제1회 미술제부터 주요 작가로 참여한 김영진과 당시 대표적인 전위미술 그룹 'A.G'의 멤버였던 곽훈의 작품도 만날 수 있는데요. 아울러 디아크 문화관에서는 양수연, 이재훈, 전가빈 등과 달천예술창작공간의 입주 작가 등 젊은 작가 14명의 작품이 전시됩니다. 이외에도 올해 미술제에선 '달성문화도시센터'에서 별도 공모를 통해 선정한 젊은 작가들의 작품도 만날 수 있습니다.
◆과거에도 지금도 꿈을 펼치기 위해 모이는 이곳
물론 50년 전 미술제와 지금의 분위기는 다를 수밖에 없겠죠. 당시 분위기가 실험적이고 전위적이었다면, 지금은 미술을 즐길 수 있는 분위기로 바뀌었으니까요. 그렇다고 미술제가 지향하는 목적까지 바뀐 건 아닙니다. 올해 주제에서도 알 수 있듯, 이 미술제를 통해 불가능한 꿈에 도전하는 작가들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 삶에 '낭만'이 사라져선 안 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기 때문이죠.
어쩌면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이전부터 지금까지 이 미술제를 지켜보고 있는 이곳 '강정'일지도 모릅니다. 이곳의 강물과 들판과 나무들은 그렇게 펼쳐진 수많은 현대미술가들의 활동을 지켜보고 있었겠죠. 그들이 미술계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남긴 중요한 흔적들도 함께 말이죠. 이처럼 '달성 대구현대미술제'는 올해도 그런 흔적들을 계속 이어나갈 예정입니다. 다름 아닌 작가들이 꿈을 펼치기 위해 모였던 곳, 그래서 50년 전에도 이미 '문화도시'였던 곳, 그리고 이제는 우리에게 또 다른 '낭만'을 선사할 이곳에서 말입니다.
이선욱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공동기획 : 달성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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