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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은의 천일영화] 방학숙제로 들여다본 10대의 여름, '그 여름날의 거짓말'

2024-08-30

다소 충격적인 사건도 발생
자극적인 상황 등장하지만
이런 점이 영화 몰입도 높여
비밀스러운 방학일기 훔쳐보는
죄책감·망설임도 신선한 경험

[윤성은의 천일영화] 방학숙제로 들여다본 10대의 여름, 그 여름날의 거짓말
윤성은 영화평론가

아이들의 방학이 끝났다. 햇볕이 너무 뜨거워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이번 여름에도, 숨 막히는 입시의 압박 속에서도 십대들은 특유의 생기와 감수성으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꼈을 것이다. 사실, 아이들은 그저 하루를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성장통을 겪고 있다. 거센 풍랑 속에서 배를 타는 듯한 불안감 속에 주변인들과 매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낯선 자신의 몸과 감정에 적응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 여름날의 거짓말'(감독 손현록)은 그런 십대들이 어떤 여름방학을 보냈는지 조심스레 들여다보고 있는 작품이다. 잔잔한 성장영화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다소 충격적인 사건도 발생하고, 꽤 자극적인 상황도 등장한다. 플롯도 단순하지 않다. 영화가 끝날 때쯤엔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이런 점들이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몰입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요소들이다. 아이들의 비밀스러운 방학일기를 훔쳐보는 듯한 죄책감과 망설임도 신선한 영화적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다영'(박서윤)은 개학날 등교하는 버스 안에서 담임이 내준 방학숙제를 끄적인다. 방학 동안에 있었던 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쓰는 이 숙제에 다영은 그만 남자친구와의 추억을 적고 만다. 담임은 다영을 혼자 남게 하더니, 남자친구와 있었던 일에 대해 더 자세하게 기술하라고 종용한다. 안 해도 전혀 상관없는 방학숙제를 혼자 해온 대가로 다영은 늦게까지 '병훈'(최민재)과의 일을 되새김질 한다. 영화는 방학숙제를 하고 있는 다영의 현재와 여름방학에 있었던 과거의 사건들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다영은 방학식날 28일 사귄 병훈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말을 듣는다. 갑작스러운 이별통보에 쿨하게 대처하긴 했지만, 상처를 크게 입은 다영은 당돌하게도 과외선생의 신혼집에 찾아가 끼를 부린다. 병훈은 다영에게 과외선생과 잤다는 말을 듣고 당장 그를 고소하겠다며 다영을 앞세워 과외선생의 집으로 간다. 다영과 병훈, 과외선생 부부가 한 식탁에 둘러앉아 다영과 과외선생의 불륜을 이야기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 중 하나다. 몸싸움이나 욕 세례가 오가는 대신, 한자리에 앉은 네 사람이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태도가 뾰족뾰족 날 것 그대로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터질 듯한 긴장감과는 별개로 각자 자신의 안위와 미래만 생각하는 대사가 툭툭 터지면서 실소를 유발시킨다. 놀라운 것은 이 끔찍한 질투유발작전이 병훈의 마음을 돌려세워 두 사람이 함께 찬란한 여름방학을 보낸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다영이 임신을 하게 되면서 어린 연인의 사랑은 다시 한번 위기를 맞게 된다.

막장드라마의 소재로 점철된 것 같지만, 다양한 관계와 상황에서 우러나는 감정의 깊이는 얕지도 우습지도 않다. 그것은 다영과 병훈이라는 입체적인 캐릭터에서 기인하는데 이들은 종종 즉흥적이고 감정적으로 행동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자신들의 행동에 책임을 지려 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다른 성인들보다 성숙해 보인다. 십대를 미성숙한 존재가 아니라 본받을 점이 있는 존재, 그래서 더 많이 소통하고 탐구해나가야 할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이 참신하고 따뜻하게 다가온다. 한편, 이들의 파란만장한 여름방학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담임은 고지식하고 폭력적인 어른들의 초상이라고 할 수 있다. 다영과 병훈은 과연 담임에게 진실을 털어놓게 될까. 아이들을 만날 수 있다면, 솔직한 것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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