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현지 (곽병원 홍보계장) |
지난 주말 필자가 다니는 성당에서 호두과자를 두 상자 구입했다. 이 과자는 우리 성당을 다니는 교도소 출소자들이 손수 만든 호두 과자다. 이들이 사회로 다시 돌아와 정상적인 적응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소모임을 담당하고 계신 신부님이 우리 사회가 가진 색안경과 선입견으로 인해 이들이 사회에 자리 잡기가 쉽지 않은 현실을 설명해 주셨다. 취업과 같은 공적인 영역에서도 차별을 받지만 거주하는 동네와 같은 사적인 부분에서도 편견과 선입견이 존재한다. 이웃은 자신의 자녀에게 가깝게 지내지 않도록 주의를 주고 때로는 부녀회를 통해 항의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날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함께 미사를 드린 출소자들은 밝고 신실하고 성실해 보였다. 신부님이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복역한 사실을 몰랐을 뻔했다. 나의 선입견과 색안경 또한 이렇게 무섭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우리 사회에는 정상적 삶의 궤도라는 보이지 않는 기준이 있다. 명문고, 명문대를 졸업하여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가정을 꾸려 엘리트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것을 천편일률적으로 지향한다. 많은 이들이 이 '정상'의 삶에 자신을 맞추어 살아가고 또 자식에게도 그 가르침을 전수하려고 애쓴다. 우리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동의한 이 정상의 궤도에서 이탈한 자에게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부모가 평생 학습했기 때문일 것이다.
줄리아 길라드 전 호주 총리는 미혼 시절 동거했던 파트너가 4명이었고 국가원수인 총리 재임 시절에는 아이가 셋인 남성 미용사와 동거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영부인이 스물네 살 연상에 나를 가르쳤던 선생님인데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지 않느냐"고 친구에게 질문했는데 "그게 대통령이 되는 것과 무슨 상관이야?"라고 친구는 대답했다. 우리 사회였다면 어땠을까. '애 딸린 남자와 동거하는 비혼 여자'라는 수식어와 유튜브 가짜 뉴스의 홍수로 정계 입문조차 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우연한 기회로 위안부 할머니들의 생전 모습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이분들은 해방 후 한국에 돌아와서도 주변의 차가운 시선이 두려워 위안소에서 당한 사실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숨어 지내셨다고 한다. 세상이 그녀들을 할퀸 상처와 그럼에도 억척스럽게 견디고 인고한 세월을 그들의 얼굴에서 읽었다. 남편이 도망간 이후 타지에서 자녀 둘을 키워내며 살았던 긴 세월 동안 할머니들을 가장 아프게 한 것은 이웃의 차가운 시선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낮은 출산율로 집집마다 자녀가 한 명 많아봤자 두 명이다. 아이들의 경쟁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영어 유치원에서부터 시작된다. 대한민국 1% 엘리트 집단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 아이들이 탄 급행열차는 잠시 옆을 돌아볼 틈이 없다. 최선을 다했다는 변명조차 용서가 되지 않는 경쟁 사회에서 '정상적' 궤도에서 벗어나 있는 이웃을 돌아보고 대화나 소통할 겨를은 없다. 혹여라도 본인이 궤도에서 벗어나 탕자가 되는 순간 그 추락에 날개가 없다. 할머니들이 모진 일을 겪고도 침묵했던 것처럼 이들도, 그리고 그 부모도 입을 다물게 된다.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기 위해서 모두가 조금 더 너그러워졌으면 한다.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다름으로 인정할 때 우리 사회는 앞으로 한발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배우 나문희가 출연한 영화 '아이캔 스피크'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본다.
I can speak.
Also, you can speak.
곽현지 (곽병원 홍보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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