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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지대] 대구, 한국 성악의 미래

2024-09-23

[단상지대] 대구, 한국 성악의 미래
임진형 (음악인문학자·대구챔버페스트 대표)

제42회 대구국제성악콩쿠르 본선 연주회가 지난달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특히, 대구국제성악콩쿠르가 국제음악콩쿠르 세계연맹(WFIMC)에 최종 가입 승인을 받으면서, 이 콩쿠르는 한국을 넘어 국제적으로도 주목받는 무대로 자리 잡았다. 객석에 앉아 본선에 오른 20명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감상하면서, 나는 저절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어린 시절, 나의 꿈은 성악가가 되는 것이었다. 당시 효성여대 성악과에 수석으로 입학한 막내 이모가 핑크색 드레스를 입고 대구시민회관에서 이탈리아 아리아와 박목월 시, 이수인 곡의 가곡 '그리움'을 부르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그 무대를 보며 성악에 대한 동경과 사랑을 품게 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목소리라는 것이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감정을 전달하고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힘을 지닌 것임을 깨달았다. 이후 열심히 연습해 이모 앞에서 '등대지기'를 불렀지만, "피아노에 더 소질이 있는 것 같다"는 한 마디가 돌아왔다. 그럼에도 성악에 대한 미련과 관심은 내 안에 여전히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3년 전, 계명대 대학원 수업 중 외국 학생들이 내게 '한국 사람들은 왜 그렇게 노래를 잘하나요?'라고 물었던 일이 떠올랐다. 당시에는 선뜻 답하지 못하고, 다음 주에 알려주겠다고 한 후 리서치를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하버드대학 니콜라스 하크니스(Nicholas Harkness) 교수의 연구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1)한국인은 타고난 음악적 재능을 지니고 있으며, 태어날 때부터 노래를 잘한다. (2)민간 전승의 노동요는 물론, 교회 찬송가 문화와 같은 노래 경험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노래 실력을 키워왔다. (3)한국과 이탈리아는 감정 표현이 풍부하고 자신감 넘치는 성악가들을 많이 배출하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 성악의 저력은 단순한 기술의 산물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문화적 배경과 정서의 결합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성악에서 중요한 요소는 타고난 재능, 감정 표현력, 그리고 끊임없는 연습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자산은 독창적이고 고유한 목소리이다. 레비나스는 '얼굴이 존재의 계시'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목소리는 우리 존재를 드러내는 진정한 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 목소리는 인간의 역동적인 생명 리듬과 개인의 삶을 담아내며, 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을 초월하게 된다. 목소리는 보이지 않는 마음을 형상화하며, 무한과 유한을 넘나드는 예술적 경지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목소리와 음악성이 결합될 때 인간(성악가)의 아름다움이 진정으로 드러난다.

릴케는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에서 노래는 '현존재(Dasein)'라고 부르며, 진실 속에서 우리가 노래하는 것은 '다른 숨결'이라 말한다. 오르페우스는 그의 노래로 지하세계의 하데스 왕을 감동시켜 사랑하는 에우리디케를 구하려 했으며, 영국의 시인 스윈번은 노래를 '온 바다의 헤아릴 수 없는 전율'로 비유하며, 노래가 무의식의 비밀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이렇듯 노래는 인간의 내면과 외부 세계를 연결하는 중요한 매개체이며, 노래를 통해 스스로의 삶을 더 아름답고 온전히 표현할 수 있다.

대구국제성악콩쿠르는 단순한 경연을 넘어, 대구 시민들이 만들어낸 소중한 문화적 자산이자, 대구의 목소리와 얼굴을 상징한다. 이 콩쿠르는 세계 무대에서 새로운 한국 성악가들이 탄생할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이며, 이를 통해 대구의 문화 예술과 그 유산은 더욱 깊어지고 풍부해질 것이다. 대구 시민들이 일궈낸 아름다운 목소리는 대구의 자부심이며, 한국 성악의 미래이다. 저만치 가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임진형 (음악인문학자·대구챔버페스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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