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미 변호사 |
어쩌면 우리 모두 위로가 필요한 사람인지 모른다. 씩씩하게 걸어 다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사실은 조금 더 힘이 필요한 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린 서로를 잘 알지 못할지라도 조금씩 보듬어 주면서 살 필요가 있다. 다들 사는 것이 녹록지 않은지 서점에 가면 온통 마음을 다스리고 위로하는 글과 책이 넘쳐난다. 각종 바람직한 말과 예쁜 말이다. 나는 그런 글과 책도 좋아하지만, 특별히 일시적인 위로에 그치지 않고 때로는 나에게 실행력까지 준 말과 글들이 있다.
1. 아무도 그의 구두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출근하면서 정장 밑에 어느 구두를 신을지 고민하며 두 개의 구두를 계속 번갈아 신어 보았다. 두 개 다 발이 편해서 자주 신는 구두였는데, 묘하게 다리가 짧아 보인다거나 옷과 안 어울리는 것도 같아서 어느 구두를 신어야 덜 이상해 보일지 조금 더 예뻐 보일지 선택에 갈등이 되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어떤 구두가 더 나은 거 같아?라고 물었다.
그러자 남편이 쇼생크의 탈출에서 주인공인 앤디 얘기를 했다. 앤디가 탈옥하는 날 저녁, 교도소장은 앤디에게 자신의 구두를 닦아놓으라고 명령하고 퇴근한다. 앤디는 탈옥 후 그 구두를 신을 계획을 세운다. 앤디는 자신의 방까지 교도소장 구두를 들고 갈 수 없으니 자신의 구두를 벗어놓고 교도소장의 구두를 신고 나간다. 앤디가 교도소장의 구두를 신고 방까지 가는 동안 교도관도 만나고 동료 수감자 레드도 만나지만 아무도 앤디가 죄수는 신을 수 없는 범상치 않은 구두를 신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아무도 앤디의 구두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남편이 "아무도 그의 구두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라고 말했고 갈등이 사라진 나는 늘 신던 구두를 신고 다람쥐처럼 집을 나갔다.
2. 아무도 안 읽을 거예요.
내가 어느 법조지에 소논문을 제출하는 것을 두고 읽는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고민했다. 내 실력이 형편없다는 것을 누군가가 눈치챌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지만 한번 도전은 해보고 싶어서 계속 갈등했다. 남편이 말했다. "걱정 말아요. 그 논문 아무도 안 읽을 거예요." 남편의 말이 소설책도 눈에 잘 안 들어오는데 누가 남의 논문을 읽고 있냐는 것이었다. 순간 뚫어 펑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3. 어차피 인생은 영업이야.
남편의 고등학교 친구 7명은 해마다 1박으로 가족모임을 한다. 남편의 부인들도 모두 결혼 전 연애시절부터 남편 친구의 여자 친구로 서로 잘 알고 지냈다(다행히 모두 연애 당시의 여자 친구와 결혼). 어느 해, 펜션에서 남편들은 친구들끼리 밖에서 이야기를 하고 펜션 안에서는 부인들이 모여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당시 맥주를 마시며 인간관계의 어려움에 대해서 토로하고 서로 위로도 하고 있었다. 누구는 회사에서의 인간관계가 어렵다고 하고 누구는 시어머니나 동서와의 관계가 어렵다 하고 각자 그들을 대할 때마다 가지는 마음의 묵직함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때 남편 친구 부인 중 제일 나이가 많고 결혼을 가장 일찍 한 언니가 있었는데, 우리의 대화를 말없이 듣던 언니가 혼잣말처럼 "어차피 인생은 영업이야."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자 묘하게 개비스콘을 먹은 듯 막힌 속이 뚫리는 기분이었다. '그래, 인생 어차피 영업이다.' 당시 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 모임에 분위기를 주도하는 몇 명이 있었는데 왜인지 모르게 나는 그 모임에 나갈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런데 영업하러 나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이은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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